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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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풍경을 건너가는 풍경
따뜻한 적막, 풍경을 건너가는 시간 김행숙 2005년에 나온 『파문』이라는 시집이 선생님이 출간한 마지막 시집인데, 이제 또 시집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김명인 시집 원고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출판사에 시집 문의를 하기도 했고요. 작년부터 내가 이상하게 좀 흐트러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절반쯤 정리를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다 정리가 되면 올해 안에 시집을 낼까 해요. 그렇게 된다면 4년 만에 나오는 시집이죠. 김행숙 『파문』은 시간에 대한 사유와 이미지가 유난히 많이 드러나는 시집이었습니다. 『파문』이라는 시집의 맨 마지막 시가 ?따뜻한 적막?인데요, 이것은 2006년에 간행된 시선집의 제목이기도 하지요. ‘적막’이나 ‘적요’는 선생님 시에 특별히 빈도수가 높은 어휘이기도 하면서, 특별한 세계이며 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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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글틴캠프 참가후기] 너희가 죽인 내세에서, 내가 죽은 중세까지
총에 맞아 파문(波紋)하는 물. 해가 있던 하늘의 언저리에서 그림자의 무늬를 수소문하는 달이 나를 어슴푸레하게 비춘다. 거대한 가로등처럼. ―가져가. 내가 너희에게 총을 건네며 말한다. 너희는 아무도 선뜻 총을 받아들려 하지 않는다. ―어서. 나는 너희 중 누군가의 손에 총을 쥐어준다. 그 애는 총을 쥐려 하지 않지만 총을 쥔다. 풀린 손. ―지금 너희 손끝에 장전되어 있는 건 총이 아니라 나야. 나는 이마 한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인다. ―여기야. 너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당겨봐. 나는 총구에 이마를 대고 총신에 한 손을 얹는다. ―자. 나는 방아쇠에서 망설이고 있는 아이의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얹는다. ―자. 너희는 눈을 감는다. 세계는 맑다. 나무는 몸 안에 생물들을 기르며 자신도 생물임을 증명했고, 꽃과 잎이 그 증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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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드라이아이스가 녹는 방식」외 6편
풀면 떠나지 못한 어제가 내일을 조립하는 오늘을 비웃었어요 불투명한 유리창 뒤로 감춰진 나와 행로를 이탈한 나를 보는 건 타인으로 묶인 잠들지 않는 겨울이에요 뾰족해진 밤이 수평을 집어삼켜서 나는 어둠 속 배경으로 존재하는 잠의 불안을 만지며 서성였어요 잠은 롤러코스터를 원치 않았을 거예요 잠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건너야겠어요 회전목마가 남긴 환한 웃음을 생각할게요 오르락내리락 천천히 눈을 맞출게요 잔잔해진 파문에 밤이 밤을 깔고 누웠어요 바람이 멈추고 출구가 보여요 생소한 내가 익숙한 나로 돌아와요 잠이 나란해진 나를 돌아봐요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거라며 빛을 여닫는 잠의 블라인드를 따라 걷을 수 있는 어둠이라고 밤은 오직, 지금은 봄비 흩어졌다 모이는 저녁으로 봄은 시작되는 거야 빨강과 파랑이 섞일 때 오래 기다린 너로 스며드는 거야 세상은 온통 보랏빛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