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귀비(楊貴妃), 배꽃에 지다
저희 호인(胡人)들은 어머니를 앞세우는 게 전통이나이다. 그 말을 듣고 난 황제는 웃으며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었다. 하지만 그가 귀비를 배알하는 절차 같은 것에 대해서는 황제가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그는 처소 문밖에서부터 연신 어머니를 외쳐 부르다가 귀비를 만나면 두 팔로 덥석 껴안아 들어올리곤 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내려놓는 일이 없이 춤을 추듯 방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귀비도 그걸 말렸다. 하지만 안록산은 그때마다 자신이 아들이며 귀비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 귀비도 점차 그걸 마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기다리는 날이 많았다. 그의 두터운 허리춤에 두 허벅지를 착 감고 높이 안긴 채 드넓은 처소 이곳저곳을 오락가락하는 놀이는 사내들의 말 타는 재미 따위가 흉내낼 게 못 되었다. 게다가 그는 그 정도 놀이로는 그치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 어머니를 이제야 만났으니 지금이라도 젖을 좀 주셔야지요.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에세이] 오래 외면 받고, 때로 외면하는 글쓰기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술과 담배로 한 번뿐인 생을 소비했으며 집 밖에서는 호인, 집 안에서는 폭군을 자처하셨다. 당연한 듯 집안일 따위 돌아보지 않으셨다. 아버지에게도 부성이란 게 있긴 있었을까,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문득문득 드는 의문이다. 안팎의 모든 일은 어머니 차지였다. 어머니에게 결혼은 사막을 건너는 일이었으며 당신은 늘 목마른 낙타였다. 혹 안에 저장된 에너지를 믿고 낙타가 사막을 건너듯 어머닌 당신의 혹인 자식들을 믿고 견디셨다. 아버지가 술을 과하게 드시는 날, 사막엔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쳤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한바탕 회오리가 집 안을 휩쓸었다. 그렇게 삶을 낭비하던 아버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불쑥 생을 빠져나가셨다. 삶이 생각대로 짐작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아버진 모르고 계셨던 걸까.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새터마을 마이크
그의 성질은 대쪽처럼 올곧고 급하기는 하지만, 어떠한 일을 당하든지 마음속에 꽁 하고 담고 있는 것이 손톱만치도 없는 호인 중에 호인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고 어떤 종류의 호인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일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그는 꽃사장과 친히 살았다. 꽃사장이라 불리는 남자는 해남이 고향인 육십 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인데, 서울 강남 꽃시장에 꽃 도매 상회를 운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분용 꽃나무와 꽃꽂이용 재료를 여기저기에 납품하고 있는 대단한 부자였다. 거기다가 강진 영암 보성 장흥 순천 등지에 수많은 논밭을 가지고 있었고, 그 논밭에는 화분용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농수로의 갈대들, 야산의 억새풀꽃, 오리나무의 꽃망울, 사철나무의 잔가지, 고사리 잎사귀, 사철나무 가지들이 일단 그의 손에 들어가면 모두 돈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근동에서 팔겠다고 내놓은 논밭들을 거침없이 사들여 꽃나무를 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