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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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힘의 직선
힘의 직선 장석원 추억도 회한도 못 되는 과거의 습격에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으므로 패배를 자인했기 때문에 웃어도 이빨이 보이지 않는다 캐럴이라도 부르고 싶다 변기에 앉아서 한국을 읽는다 역사는 박장군이 죽은 후로 주무를 수 있는 반죽이었다 (Superman returns) 1979년 이후로 역사는 물질 명사가 됐다 기억하려는 듯 찍는 방점이 효모 같다 꼬리를 물고 불꽃이 되는 글자들 속에서 혼란 속에서 나의 사랑은 절박하고 멀어지는 당신도 잠깐의 착각 사랑은 착란 미래와 실패와 백혈구가 들끓는 혈관까지 우리들 모두는 피곤하다 눈으로 불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옛 거리에도 기억에도 일찍이 없었던 빛이었기에 미녀대회의 왕관을 쓴 처녀처럼 나는 즐겁고 거리의 변화는 황홀하다 스스로 약을 주사하는 쾌감까지 아는 나는 분연히 달라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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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인장印章
인장印章 강지혜 가을이 깊어지면 바닥에는 납작한 뱀의 매듭 꿈의 구덩이로 채 파고들지 못한 죽음의 전언 여기에 삶이 있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가뿐하게 눌러진 바퀴는 무심하고 무거우며 새카맣다 여름이 뜨거웠듯이 압력의 순간에 뱀은 어떤 온도였을까 변온동물의 죽음은 차가울까 두려울까 길을 헤매던 하얀 개가 뱀의 사체에 코를 댄다 개는 아마 많은 것을 읽어낼 것이다 내가 알 수 없는 것 알지 못하는 것 감히 알려 하지 않는 것까지도 긴 동물의 킁킁 짧은 생애와 킁킁 그 새끼의 킁킁 더 짧은 슬픔과 킁킁 혼란 속에서 킁킁 떴다가 지는 태양 킁킁 먼 바다에서 킁킁 떠밀려와 킁킁 빈 허물에 부서지던 킁킁 잔인한 포말까지 나약한 존재는 편지를 쓸 뿐 하얀 손을 들어 봉투를 닫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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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빛의 탄생
언니는 구슬을 꿴 실로 빛을 예쁘게 묶었지만 나누어 앉은 우리의 방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고 우리의 아가는 여름에 태어났으므로 이마에 낙인이 있었다 나는 그걸 손톱으로 벗기고 긁어내고 울고 소리를 지르고 원망을 하고 그랬지만 아무튼 한때 태어나곤 했던 것들이 이 세계에서는 흔들리고 죽곤 하니까 우리 아가 너는 언니가 사서 비닐봉투에 담아 왔었지 검은 입구에서 머리를 빼쪽하게 내민 너를 보며 나는 그 모양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생각했어 조금 징그러웠던 것 같아 우리를 닮았어 언니는 나의 기분과 언니의 목소리를 아가에게 비추어 보았다 끊임없이 성실하고 잔인하게 베고니아 화분을 아가의 머리맡에 두기도 했다 베고니아의 꽃말은 사랑을 주는 꽃이라는데 쉼없이 꽃을 피우는 화분을 보면서 아가의 성장이 계속되었다 사랑과 혼란 아가가 자랄 때마다 왜 언니는 우는 걸까 아가가 다 자라서 집을 사주면 좋은 일이잖아 나는 언니가 묶어 둔 빛을 풀었다 그만 자러 가자,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