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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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오염, 오류, 오독
오염, 오류, 오독 - 소설이 수행하는 ‘다시’ 황유지 마들렌을 먹으며 과자 부스러기와 차 한 모금이 어우러진 달콤한 환기 속에서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일은 마르셀에게 행복을 준다. 그러나 발벡의 호텔방에서 신발을 벗으려다 문득, 할머니가 신을 벗겨 주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은 그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죽은 할머니를 떠올리는 일, 그것은 “고통스러운 소멸”을 확인시킬 뿐이다.1)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이 일화는 과거를 부르는 일이 각기 다른 정서를 환기함에 대한 예시로 내밀어지며 ‘기억’에 착종되는 다양한 감정이 주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넌지시 묻는다. 소멸의 확인도 그렇지만 미완, 불완전, 불만족인 채로 내버려둔 사건에 대한 기억의 소환 역시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인데, 그건 엄연히 그 일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라 모종의 감정적 자원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 이런 ‘다시’는 레트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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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비평 당신을 위한 서바이벌 키트 ― 윤고은론
당신을 위한 서바이벌 키트 ― 윤고은론1) 황유지 1. 사는 게 모험 한 사회의 거대 서사를 함께 체험하고 그로 인한 공통감각을 형성한 청년 집단을 ‘세대’로 정의한다면, 한국 근현대사에서 세대는 굵직하게, 전쟁 세대와 민주화 세대 그리고 그 민주화의 주축이던 386 집권 이후 세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 후로는 문화 향유의 습속에 따라 X 세대, 세기의 변화에 따라 밀레니얼, 그로부터 뉴노멀에 대한 새로운 감각세포를 지닌 최근의 세대를 아우르는 MZ 세대가 있다. MZ라는 세대 용어가 고안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곤두박질치는 사회적 조건은 88만 원, N포 등의 세대를 생산해냈는데, 1997년의 경험은 이 세대들의 중심축에 있다. 주지하듯, 국가부도 이후 사회 체제는 전면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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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비평 비주류 생존기― 여성의 호명과 자리들
비주류 생존기 ― 여성의 호명과 자리들 황유지 들어가며 : 너의 이름은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거리 두기’를 요청한다. 침방울이 튀지 않을 거리 감각은 생존법인 동시에 프리즘으로 작용하며 그간의 일상을 한 발짝 떨어져 보게 한다. 이 상처적 기회는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많은 것들이 실은 편의주의와 관습의 산물임을 적나라하게 들추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변할 수 없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의 경계는 해체되고 있다. 경계는, 비자발적 기회를 빌려 기성의 공고함을 흔들고 억압된 것들의 틈입을 허락하며 제 몸을 지워나간다. 욕망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 저마다 기입될 때 우리 사회는 재배치의 가능성을 향해 열리기도 한다. 재난 이후의 삶은 지속되는 현실을 직시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 숱한 이름들은 남성의 것으로, 여성에게 지워진 경계는 그들을 정확한 이름 없이 비주류로 포괄하곤 했다. 가령, 남성 이미지가 우세한 ‘청년’은 절반이 다른 절반을 지우는 방식으로 전체를 대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