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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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어느 날
어느 날 황학주 고엽 깔린 어슬핏한 길을 내려오다 몸에 의자 하나를 놓는 상처 살그머니 가다만 상처 새소리가 되었을지 꽃도 야위고, 어린 새가 있었을까 몸 숙여 앉아 본다 마음을 얻으려는 엉성궂은 연인처럼 반날 사이 조심스레 우표를 붙이고 뗐던 흔적이 있는 숲길 혀를 차며 고엽 깔린 길을 내려오는 빈 의자 헐렁해진 목발 모서리 귀 기울이는 진흙빛 소리들 눈 글썽글썽한 일 뜸한 어느 가을날 다리 끌어간 자국에 맨손바닥을 내려놓는 갈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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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다른 하루
다른 하루 ─ 사이구란 사루니에게 황학주 누군가는 남고······누군가는 계속해서 떠나겠다······하루만 지나면 나와 당신이 역할을 바꾸느라 핏물 배는 허공의 무대에서 헤어지는 거 그래도 가끔은 나도 흑인이었으니까······당신을······초대하고 싶어질 것 같다 해 뜰 때 안녕이라 말하며 왔지 해 저물 때도 맨몸으로 안녕이라 말하겠지 그 사이에도 거리에는 뒤축 없는 구두들이 달리겠지 늙고 질긴 코끼리뼈를 부싯돌 삼아 지평선을 켜겠지 반대로 나는 검고······다음번엔 당신이 희었으면 좋겠다······당신한테는 그런 말을 안 하지만······ 메마른 진흙 술잔 동그란 눈동자에 우리, 무엇을 빠뜨렸나 인간의······거기에······하양만 있고 얼룩덜룩과 울긋불긋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나도 상처받은 거 맞다······그러니 내게 놀러 오라······여릿한 붉은 내 말소리 공기의 입자 속으로 가늘게 사라져 다른 하루로 스밀 때까지······ 나도 당신에게 놀러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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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그 해 여름
그 해 여름 황학주 멀리 간 날이었다 무서우리만치 많은 나무들이 몰려왔다 다함이 있어야 혼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물관 앞에서 여자를 처음 보고서 눈을 감았다 뜰 때 아주 먼 시간이 어둔 화덕에 피어 있었다 찌그려 신은 한 켤레 시간을 세족시키며 여강(驪江)가 꽃 피듯 일없이 여자가 앉았다 무슨 물고기를 먹은 그 오후와 저녁 사이 그 식당은 지금 없어졌다 침이 마르듯이 낌새가 없는 일이었지만 식당 뒤 공사장 붉은 흙더미와 고랑 건너 흑백 어딘가에 수줍은 중년이 어떻게 손을 들고 있었나 오색을 다 내줘버린 자작나무 몸 떨군 가장자리로 가만가만 가져가는 저녁처럼 여자 혼자 살고 있는 곳 이승에서 하루쯤이면 갈 수 있는 곳 요행히 떠나면 잊을 수 있을 듯도 해 그 한나절은 기념이 되었다 알 수 없었지만 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걸 여자가 눈짓해 준 그 해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