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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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꿈
꿈 서수찬 언젠가 아빠가 내 꿈을 물어봐서 나는 커서 아빠의 우렁각시가 되는 거라고 크게 말한 적이 있다 아빠는 우리 딸의 꿈이 집을 잃어버리지 않고 돌아오는 힘이라고 말했다 먼 바다에 나갈 때 배 한 쪽에다 집을 잃어버리지 않게 내 꿈 한 쪽을 묶어서 걸어 둔다고 했다 꿈이 풀려서 팽팽하게 당길 때까지만 나갔다가 꿈을 잡고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아빠를 위해서 나도 내 꿈을 바꾼 적이 없다 될 수 있는 대로 왜소하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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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꿈 이야기
꿈 이야기 임유영 사월의 한낮이었다. 벚꽃이 절정이라기에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가벼운 옷을 입고 나들이를 나가려니 기분이 좋았다. 걷다가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둘러 가기로 했다. 여학교를 지나 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감색 세일러복을 입고 달려가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 시각인데 아이는 멀리 공원 쪽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나중에 보니 역시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자전거를 대고 기다리다가 여자 아이를 뒤에 태우고 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사거리에서 그만 사고가 났다고 한다. 사고가 나서 여자 아이는 죽어버렸다. 나는 그날 꽃은 못 보고 돌아가던 길에 교복집 하는 늙은 남자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죽을 징조를 벌써 보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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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무서운 꿈
무서운 꿈 강백수 애원하다 소리치자 끌어냈다 흐느꼈다 젊은 은행원이 띵동 소리로 미소를 수습하고 삼백구십번 고객님을 부르자 전대를 맨 아줌마 한 명을 뺀 나머지들의 시선은 일제히 다시 테레비를 향했다 혼자 사는 서른 몇 살 연예인은 벤츠를 타고 정신병원을 찾아가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었다 삼백구십이번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주택청약 좀 해지하려구요 곧 있으면 이 년 채우시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처음도 아닌걸요 사십이만 원에 삼만 원을 보태 집주인에게 보냈다 끌려 나온 노인이 보도블록에 앉아 등이 굽은 담배를 태운다 소리를 치니까 끌려 나오죠 가만히 애원하다 흐느꼈어야죠 내게도 자네 같은 시절이 있었어 아유, 그런 소리는 마셔요 나도 나름 한다고 했다구 노인은 담배를 필터까지 태워먹고 신호도 안 보고 찻길을 막 건넌다 빵빵거리건 욕을 하건 그냥 막 건넌다 노친네! 뒈지고 싶어? 아니오, 저는 아직 오래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