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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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당신의 끝
당신의 끝 이영광 당신은 끝났습니다 아니, 당신은 정말 끝났습니다 그래서 나도 끝이 나 갑니다 나는 염려할 후사가 없고 당신은 내가 매달렸던 마지막 사람이었으므로, 이제 나는 정말 끝이 나 갑니다 끝이라는 목소리 또는 의미의 동심원이 무심히 건드려 놓는 이 시간을 어떤 시작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다시 시작되지 않는 어떤 것으로서 나는 함부로 먹고 마시고 떠들 수 있으며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할 수 있으며, 당신은 내 꺾인 걸음을 풀어 주기도 멀쩡한 호흡을 한참, 끊어 주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의 끝을 잊거나 안 보려 할 만큼 똑똑하질 못합니다 한 해 또 한 해, 당신의 끝을 방치함으로써 서서히 옥죄어 오는 나의 끝, 끝나 가는 나를 굶주린 벌레처럼 탐닉하며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이 시간이, 망국처럼 해방처럼 피로합니다 당신은 지금 나의 길 없는 나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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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이야기의 끝
이야기의 끝 홍지흔 작가소개 / 홍지흔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리며, 독립출판으로 직접 책을 만들기도 합니다. 장편 〈건너온 사람들〉, 〈한 걸음 더〉 단편 〈다른 날의 기억〉, 〈재구와 콩나물〉Instagram | @tabletoday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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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파티의 끝
[단편소설] 파티의 끝 이승은 식탁 한편에는 은수와 민용이 앉았다. 가운데에는 은빛 펄로 무늬가 그려진 구 모양의 초를 켜두고 맞은편에는 지영과 동철이 앉았다. 작은 평수의 투 룸이지만 테이블 위의 음식과 촛불 덕분에 아늑해 보였다. 처음부터 커플 모임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여자 친구들끼리 연말 모임을 계획하다가 민용과 동철이 합류했다. 유일하게 싱글인 수미는 회계 담당이라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고, 결혼한 지 삼 년이 된 성희는 연락이 없었다. 은수와 민용은 한 면이 벽에 붙어 있던 식탁을 가운데로 옮기고 상앗빛 식탁보를 씌웠다. 그릇을 꺼내 놓고 냉장고에 술과 음료수, 과일을 채워 두었다. 둘은 모든 준비를 함께했고 평소보다 자주 입맞춤을 했다. 신혼 집들이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이런 모임은 내년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한 신호탄이 될 것 같았다. 네 명뿐인데도 은수는 실속 없이 분주했다. 혼자 분주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