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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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습관적인 핑계
(未完)으로 돌려막는 만화책 더미 어머니는 꾸지람을 할 때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버릇이 있었네 부드러운 질 사이로 나온 머리통이 수술대를 두드리자 고민이 태어났고 고민은 딱 그만큼의 무게로 가끔 나의 배를 누르며 잠이 들곤 했고 온도 31, 습도는 70, 장마철에 젖은 국어교과서 73페이지 첫째 줄, 거기에 적힌 시를 외우며 나는 무지개, 나는 무지개 고민이 있던 저능아반의 이름은 무지개반이었다 그건 무지개를 노래했던 시인들을 죽이고 싶었던 이유 한 모금의 숨은 추락할 것을 예감하는 마지막 꽃잎이라고 쓴 멈춘 시간의 기록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쳐들었던 손이 침대 밑으로 떨어질 때 먹이로 특화된 저능아가 무지개를 잡으려던 손을 떨어뜨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을 때 육지는 위, 바다는 왜 아래쪽 같을까 하반신을 물에 잠그고 있는 나는 왜 그러쥐지 못한 마음 뒤에 울분이 생길까 파도는 해변을 꽉 쥐고, 손톱을 긁으며 비명을 지를까 들숨으로 피었던 꽃이 날숨으로 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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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커버스토리 7월호 지훈문학관과 지훈 선생
그런 의미에서 선생의 시 「낙화(落花)」는 여러 시인의 낙화 가운데서도 단연 압권이다. 유려한 시적 리듬과 자연에 대한 애수에 찬 늡늡한 서정, 시대와 존재의 환경에 대한 우수어린 시선 등이 이 시에서 서늘한 분위기를 얼러낸다. ‘…꽃이 지는 아침은/울고 싶어라’던 선생의 눈길이 머물던 마당의 환한 적막을 내 가슴에도 한켠 들여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외세의 침략과 수탈과 강점의 시대 속에서도 시인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과 지사적(志士的) 결기를 함께 지녔던 선생의 시는 그 가슴으로부터 울컥 토해 내지는 듯하다가 그윽한 정서의 체에 거른 듯 단정하고 담백한 선미(禪味)마저 감돈다. 그 울음은 강울음의 거짓이 아니요, 그 울음은 소멸과 생멸의 흐름 위에 놓은 모든 숨탄것들에 대한 연민과 그윽한 응시의 결과인 것이다. 즉 단순한 분노나 슬픔의 감정적 표출로서의 울음을 품고 넘어 선량하고 순수한 것들의 안타까운 운명에 대한 포월(抱越)적 사랑의 일단으로서의 울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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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보랏빛 소묘
나무 아래 무리지어 떨어져 있는 낙화(落花)도 그저 지나칠 풍경이 아니다. 원추리는 근심을 없애 준다는 꽃이다. 봄에 새싹을 살짝 데쳐 나물로 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에 향기가 감돈다. 볼품도 있고 생명력도 강해서 요즘은 도심의 가로변을 단장하기도 한다. 나리꽃이 피면 이미 여름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는다. 말나리, 털나리, 중나리, 하늘나리 등 여러 가지 나리꽃들이 다 특색이 있는데, 당당하게 서서 여름을 대변하는 것은 주황색 꽃잎에 주근깨처럼 점이 박힌 참나리라 하겠다. 우리 땅의 나리꽃들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어느새 가져다가 개량한 것을 우리가 들여오고도 있는 실정이다. 주황색이 아니어도 우리의 흰 백합꽃은 나리꽃의 중요한 한 종류로 세계인들의 칭송을 듣는다. 백합은 희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구근의 비늘이 백 개나 되도록 합쳐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흰나리꽃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여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