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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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너란 너
너란 너 최규승 봄볕 쏟아지는 계단 끝 고양이는 비둘기의 머리 귀퉁이를 씹어 먹는다 미처 버리지 못한 시간에서 고양이 냄새가 난다 너는 계절을 지우는 시선을 떠올린다 어떡하니 자꾸 너를 까먹는다 꽃은 아름다움을 잊었고 하늘은 파란을 잊었어 물속에서도 갑갑하지 않고 밥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 숨 쉴 수 없는 곳에서 숨을 쉬고 숨 쉴 곳에서 숨을 멈췄어 그것은 너의 운명 봄은 말하고 너는 듣겠지 꽃은 고개를 젖히고 너는 뒤돌아설 거야 하늘은 벽 속으로 사라지는 너의 뒷모습을 보겠지 하늘이 다시 파란이 되면 너는 돌아서겠니 등을 맞대고 물속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으겠니 너는 너를 너와 너로부터 너에게서 너인 너다 봄이 왔다 봄을 생각하는 너는 이미 봄을 버린 사람이다 봄이 왔다고 말하는 순간 봄은 봄이 아니다 물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은 이미 봄이다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봄이 피어난다 침대에 봄을 두고 너는 버스를 기다린다 봄 없는 봄과 보는 봄을 생각하느라 너는 걷지 못한다 장의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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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울고 있니, 너?
“너, 외롭구나. 그치?” 내 말에 그 애는 처음으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매우 낯이 익었다. 아, 저 눈은 내 눈이랑 아주 비슷하네. 그런데 그 눈이 금세 그렁그렁해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눈물은 그 검은 나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울고 있니, 너?” 물어볼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애를 바라보았다. 왜 우는 걸까? 쟤는 정말 외로웠던 모양이야. 슬프고 힘들었나봐. 아무도 없이…… 그러는데 어느 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슴 밑바닥에 뭉쳐 있던 무엇인가가 왈칵 치솟아 올랐다. 우리는 거울처럼 마주본 채 울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그 애는 바로 나였다. 내 속의 또 하나의 나, 내가 계속 무시해온 아이, 남들만 보느라고 한 번도 안아주지 못했던 아이, 그것은 바로 내 자신이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외로웠다. 나는 배려심 깊고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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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궁금한 건 @너말고 '너’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궁금한 건 @너말고 '너’ 배연주 대화하다가 들으면 좋은 말 중 하나는 이거다. “요즘 읽은 책 중에 좋았던 거 뭐야?” 그 말을 들으면 30분은 떠들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질문 받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기보다 먼저 보여주고 싶다. 내가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청소년 장편소설 <고요한 우연>과 단편소설집 <나주에 대하여>다. ‘가장 좋다’라고 무언가를 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것에 순위를 매기고 기준을 정하는 건 힘들다. 그럼에도 두 책이 바로 떠오른 건 다시 읽고 싶어져서였다. 직장 동료들과 2~3주에 한 번 모여서 점심 독서모임을 하는데 같이 읽을 책을 내가 정할 차례였다. 나는 <고요한 우연>을 골랐다. 나도 다시 읽고 싶었고,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