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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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아동청소년문학 「푸른 숲」외 6편
미움 씨앗 단계 배우기 선생님은 미움 씨앗을 심은 화분을 모둠별로 나눠주고 미움 화분 관찰 기록장을 쓰라고 했다 물은 주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라고 했다 2. 미운털과 눈엣가시 단계 배우기 미움 화분을 관찰할 때는 보호안경을 써야 한다 미움 씨앗에서 떨어져 나온 미운털이 눈에 잘 박히기 때문이다 티끌 같은 미운털이라도 눈에 박히면 눈엣가시만큼 자라기 때문이다 3. 관심과 무관심 단계 배우기 모둠별 화분마다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움 화분에 물을 주지 않았는데 싹이 나서 신기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미움 화분을 관찰하면서 관심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움 씨앗은 관심을 먹고 싹튼다고 했다 미움이 싹 터도 관심을 주지 않으면 미움은 서서히 시들어간다고 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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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조립
발가락 양말을 신은 기사 아저씨의 구두(자기만의 근성과 기질) 밑에서 오늘의 노동 역시 고될 것이다 3 손잡이가 없는 버스를 타고 우리는 상경하지 가지고 놀 것은 혀끝-연구개와 이빨 사이를 맴돌며 뱉어내는 낱말들-몇 걸음 앞으로 나갔다가 한두 걸음 뒤로 빠지듯, 바람을 밀어 넣는 장난 톨게이트, 를 지나기 전 으레, 으레, 화장실, 으레, 으레 휴게소, 그렇듯이, 으레, 으레, 샛바람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카드가 담긴 지갑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약정이 다 된 스마트폰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4월의 하늘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검열되지 않은 문자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안전벨트와 안전수칙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기대-기만-기표-기술-기절-기억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미지-미련-미움-미비-미디어 톨게이트, 를 빠져나온 그녀의 낡은 삼선 슬리퍼-슬슬-슬픔을 이끌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지 손잡이가 없어서 빠져나오지 못한, 바다 속에 침몰한 세월,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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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눈송이가 찢어버린 늙은 맹수처럼
저녁의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미움 받는 아이처럼 발길질하고 살얼음 낀 수족관에 손을 집어넣어 미동 없이 떠 있는 물고기의 감촉에 소스라친다. 죽어버린 걸까. 잠자는 걸까. 아님 우리처럼 죽지 못해 희미해지는 중일까. 나는 밤새 골목을 도망 다니던 아이.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집이 있고, 뜨거운 국물에 숟갈을 담그기도 전에 눈물을 쏟고 말겠다. 엄마의 말처럼 나는 영영 착한 아이가 되지 못하였고. 이 지리멸렬한 천사들이라니. 이 무모한 눈가림이라니. 나는 밤의 무뢰한처럼 납득할 수 없는 쾌활과 분방을 껴입고 무정한 아이의 몸짓으로 돌아다닌다. 좁은 길을 지나쳤는데 더 좁은 길이 생겨난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형체를 지워 줄 우정을 가질 수 있을까. 어쩌면 눈송이가 지워버린 다른 길을 찾아나서야 할까. 아무렴 어때. 어차피 눈 뜨면 막다른 길. 그 끝에 다다르면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을 보는 거야. 폭격에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는 홍학이라도 떠올리면서. 그게 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