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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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벚꽃 사이
벚꽃 사이 박유하 벚꽃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빛이 드러났다, 서서히 그 빛은 나를 응시하며 어느 한구석을 증명했다 그러한 구석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으며 맨들맨들하다 그때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그 구석을 콕, 콕, 부리로 쪼았다 구석이 터질 것 같았다 한 번도 태어난 적도 없이 구석은 잔뜩 알을 배고 있었다 나는 새를 쫓아내다가 균형을 잃고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빛을 어지럽게 받아냈다 어디선가 구석의 알이 쏟아지고 있다는 듯이 나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빛 속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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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오늘은 벚꽃」 외 6편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시] 오늘은 벚꽃 문성해 봄이라고 공원인데 오늘은 외할머니가 내 안에 큰 키를 웅크리고 들어와서는 그 볼 넓은 발을 내 오목한 발에 접어 넣고 난분분 벚꽃길을 절뚝절뚝 걸으시나 오늘은 암만해도 꼿꼿한 허리로 마실 벚나무 공터에서 장구 잘 치던 외할머니의 덩더쿵 덩더쿵 거리던 눈 속만 같아라 정자나무 곁 팽팽한 벚꽃들 아래 그보다 더 늙음이 팽팽한 외할머니며 외할머니 친구분들이 장구며 꽹과리로 낮술에 묵은 흥취 깨워 낼 때 삼수갑자 돈 벚꽃들 한 올 한 올 배추 흰나비인 양 펄럭거려 어린 나는 자꾸 팔을 훼훼 내저었지 장하디장한 그 벚나무들이 경북 상주에서부터 경기도 북부하고도 먼 이곳까지 날아와 헐떡이는 오늘은 내 여섯 살 어린 방에서 산발한 채 눈 뜨고 돌아가신 그 외할머니가 들어앉아 자꾸만 이쪽으로 저쪽으로 가자가자 해쌓는다 장정 서넛은 일궈야 하는 스무 마지기 밭뙈기를 한나절에 다 멘 그 큰 손으로 내 머리채를 휙 휙 잡아채며 벚꽃들 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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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그루밍 선데이
그루밍 선데이 최규승 까슬까슬한 햇살 한낮을 늘이며 하늘 꼭대기에서 밀려온다 두꺼운 유리창 사이에서 고양이는 햇살을 등지고 눈을 감고 존다 푹신한 방석 위에 하루를 뒤집어쓴 여자 말려 올라간 티셔츠 여자의 허리를 드러낸다 눈을 감고 고양이와 여자는 제 몸을 핥는다 고양이는 혀로 여자는 손톱으로 벌떡벌떡 일어서려는 쩍쩍 갈라지려는 쭈글쭈글 접히려는 하루 햇살과 혀와 손톱에 쓸려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창밖, 벚꽃 잎 흩날린다 벚꽃 잎 날린다 벚꽃 잎 떨어진다 벚꽃 잎 진다 벚꽃 잎 벚꽃 잎 꽃잎 잎 잎 잎 돋는다 잎 움튼다 잎 파랗다 봄날은 간다 날 간다 봄날 핥는다 날 핥는다 혀 베인다 피 닦는다 피 밴다 붉지 않다 생긴다 기다린다 아프다 떨어진다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