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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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만 원, 봄 봄
만 원, 봄 봄 함순례 봄비 내리는 날이었어요 회의가 끝나고 어느 길을 찾든 欲의 숲에 닿을 수 있는 일이어서 삼겹살 소주로 뒷속을 달래었는데요 오랫동안 핏줄로 흘러온 이름이 바뀐들 그대론들 중심에 묻은 뿌리 쉬이 흔들리겠느니 봄비는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피가 뜨거워 아프고 아파서 차가워진 주름살들, 누구도 자릴 뜨지 못하고 탱크 호프집으로 이어져 밤은 깊어졌구요 그만 일어서는 날 잡아끈 문 시인이 불쑥 바지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찔러주었어요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서울의 불빛은 표정이 살아나 출렁였는데요 종일 내린 봄비가 새순 틔워내는 눈물 아니겠어요 네 번 접혀진 만 원의 주유로 심야버스에 올라앉은 봄 기운, 뼈를 추스르는 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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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봄 편지
봄 편지 박금아 "어느 날, 종가댁 맏며느리 같은 분이 다가와 삼 년 동안 일 천여 통의 편지로 저를 붙잡아 앉혔습니다."* 지인이 보내온 수필집의 서문을 읽다가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수신인과 발신인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해지면서 1천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인연이 부러웠다. 문득 지난 한 해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속을 드나들던 손 편지 한 장이 생각났다. 몇 번이나 미룬 끝에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매번 그쪽에서 날짜를 잡았고, 취소한 쪽은 나였다. 후일 연락하겠다고 해놓고도 하지 않았다. 손주를 돌보느라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지만, 나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말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날은 일방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알려왔다. 그녀는 점심을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 당신으로서는 조금 불편할 수 있는 일을 다시 떠올리며 몇 번이나 고마워했다. 그러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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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봄 멸치잡이
봄 멸치잡이 최지안 2월 바다는 숨이 막힐 듯 차다. 아직 미명. 남해, 홍현의 새벽 바다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멸치를 들어 올린다. 인부들이 그물망을 좁히자 청동빛 몸을 뒤치며 꼬리지느러미를 파닥인다. 모여든 멸치는 점멸하는 전구처럼 반짝인다. 불빛보다 환하다. 필사적으로 파닥이는 멸치와 안간힘을 쓰며 끌어올리는 인부들. 몇 그램도 안 되는 작은 생선의 무리를 끌어올리는 일은 커다란 돌덩이를 들어 올리는 것만큼 버겁다. 천천히 양망기를 감아 돌리는 인부의 팔이 천하를 들어 올리듯 무겁다. 돈이 되고 가족의 밥이 되는 삶의 무게를 인부들은 불평 없이 끌어올린다. 들어 올리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그물에는 멸치가 퍼덕인다. 끌어올리려는 자와 그물에서 튀어 나가고자 하는 멸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은 멸치나 인부나 마찬가지다. 타국의 새벽 바다에 나와 몸으로 버티는 작은 체구의 동남아 인부는 필사적으로 밧줄을 감는다. 사람과 멸치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