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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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7월_생활글_비] 이상한 습관
이상한 습관 박이나 나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빗소리는 너무도 싫어하지만, 먹구름이 잔뜩 낀 탓에 가려지는 햇빛과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맞는 것을 좋아한다. 형광등 불빛처럼 일상생활에서 꼭 접해야 하는 약한 불빛마저 눈을 찌푸리며 싫어할 정도로 나는 빛을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햇빛을 가려줄 무언가가 있는 날인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날이면 움직이는 것조차도 싫어하는 내가 운동장에 나간다. 학교 체육 수업 때는 뛰라고 해도 뛰지 않던 내가 운동장에서 비를 맞으며 천진난만하게 뛰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들께서는 말을 걸고는 하신다. 우산을 쓰고 밖에 나가면 교복이 빗물에 젖을 일은 없다. 하지만 빗물을 직접 맞을 때의 시원함과 비오는 날 특유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우산을 쓰지 않은 채로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한다. 비오는 날이면 유독 심해지는 아스팔트 냄새와 땅 내음이 내 코를 찌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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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武川
武川 박정대 그곳은 오랑캐들이 사는 나라 두 개의 달과 천 개의 별이 뜨고 단 하나의 심장을 지닌 바람이 부는 곳 우리는 하나의 태양이 질 때까지 술을 따르고 천 개의 태양이 다시 뜰 때까지 술을 마시지 生은 우리들의 취미 취미가 아름다워질 때까지 우리는 술잔에 삶을 따른다 술잔에 담긴 삶을 마신다 사랑은 우리의 습관 노동은 우리의 사랑 우리는 습관처럼 사랑하고 사랑만을 노동한다 그곳은 영혼의 동지들이 모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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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보행 신호 시 유턴
보행 신호 시 유턴 이병국 좁은 길 안쪽, 숨어 있던 걸음이 머뭇거리면 생선 굽는 냄새가 저녁놀처럼 퍼졌다 희미한 술렁거림이 낮게 가라앉고 먼 데서 바람은 투명했다 속수무책으로 나는, 길을 망설였다 골목을 메운 거짓이 한 무더기의 불빛을 비껴가고 흰 종이를 채우는 하루가 밀려나고 주린 말을 돌이켜 문장 속에 밀어 둔다 목차가 순서를 잃었다는 듯 폐허가 된 도시의 그림자처럼 깊게 새겨진 우연의 습관 계속된 기다림 곁으로 누군가 빈 걸음을 짓는다 비스듬히 흐른 것들을 피해 몸을 옮긴다 어떤 차이가 군중의 환호가 되는지 낮달의 밀도만큼 낯설게 다가오고 뒤늦은 서지(書誌)가 구겨지고 조각난 말들이 한숨에 부드럽게 박힌다 땅을 짚고 겨우 일어서도 나는, 갈피를 깁지 못한다 허공을 맴도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디뎌야 할 저만치의 고요 보행 신호가 떨어져도 길 복판에 선 허기가 지고 가쁜 책을 펼치듯 좌우로 갈라진 말이 느릿한 발치에 머뭇거린다 골목으로부터 비롯된 발자국처럼 나는, 얼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