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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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불긋불긋 〈문장〉에게
에 시 세 편을 올려 주 장원을 하고 월 장원을 하고 연말 장원 그러니까 문장 청소년 문학상 2등을 수상했으니, ‘글틴’에서 활동하던 문우들은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나는 그때 등록금 압박에 대한 약간의 안도감과 단 세 편으로도 수상할 수 있다는 통쾌함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종국에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아르코미술관에서 시상식이 열렸을 때 수상소감으로 부끄러움을 늘어놓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무엇 무엇을 하려고 문학을 해왔는데, 이 상을 끝으로 이제 문학으로 무엇을 하려는 생각은 버리겠다고, 나를 좀 돌아보는 시를 쓰겠다고. 뭐 그런 맥락이었다. 물론 나는 대학에 가서도 대학 문학상을 휩쓸었다. 또 변명하자면 학교를 다녀야 했으니까. 그 시절의 오기와 가난과 호기 등등은 ‘대학 문학상’에 그대로 들어 있다. 어쨌든 모두 부끄러운 고백이다. 새 〈문장〉에게 바란다, 라는 산문 청탁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 왜 내게 이런 청탁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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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게으른 상점 1호점
OO에게, 라고 쓰는 엽서의 시작을 엽서 만들기로부터 출발해 보면 어떨까 했던 생각은 지금껏 살면서 찍은 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엽서로 제작했고 작년 연말 만난 사람들에게 직접 쓰고 줬다. AYAF 행사 때 사은품으로 내걸기도 했고, 남은 엽서는 방에 붙여 놓았다. 한글 레터링에 관심이 많았다. 영어로 된 레터링은 대부분 예쁜데 한글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좋아하는 단어를 곱씹다가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채소들이 떠올랐고, 같은 색상의 종류를 묶어 디자인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방형의 디자인 안에 3-2-4의 안정감 있는 단어 배치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 피망이나 당근이 들어갔지만 초록색 버전과 주황색 버전이 완성되었다. 사실 가방을 만들어 메는 일도 좋지만, 이 과정이 즐겁고 흥미롭다. 무언가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고, 엎질러진 것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일, 그걸 실행하는 것 역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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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김치
다나까에게 김치를 팔아야만 내 마음은 물론이고 연말 결혼식도 평화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다시 다나까를 만나러 가려고 자료관 문을 밀었다. 안에서 들리지 않던 빗소리와 바람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빗물에 젖어 흘러내리는 마스크를 끌어 올리고 김찬미 씨와 차를 세워 둔 곳으로 뛰어갔다. 그때까지 나무는 치워지지 않고 도로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운전석에 끼워 둔 수건을 빼서 김찬미 씨에게 주고는 호텔로 차를 돌렸다. 수건을 빼낸 문틈으로 빗물이 들이쳐 젖은 어깨를 또 적시는 것도 모르고 김치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