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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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하루의 인생
하루의 인생 김현영 태양이 뚝 떨어졌어요. 그리곤 와장창 깨졌지요. 오늘 아침 나는 분명히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타는 태양이 보였어요. 눈꺼풀을 덮는 것만으론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세계가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바로 내 집 천장에 말예요. 눈감았는데도 보이는 강렬한 그 빛을 피하기 위해 나는 잽싸게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그와 동시에 태양이 뚝 떨어졌어요. 나의 왼쪽 어깨와 흐트러진 머리칼을 살짝 건드리며. 순간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태양은 그대로 내 품에 안겼을 거예요. 나는 그대로 타버렸을 거예요. 곧이어 와장창 소리가 들렸고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내 오른편에서 자고 있던 남편도요. 희끄무레한 독일제 전구가 여전히 천장에 매달려 있더군요. 그이와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불을 밝히지 않았으니 당연히 전구는 버려진 아궁이처럼 차디찼을 테지요. 만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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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낙원으로 가는 인생
낙원으로 가는 인생 박판식 골목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였다, 마담k는 하루하루 희망 없는 날을 보냈고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이유를 몰랐고 물론 나도 몰랐다 여름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게 하고, 겨울은 사람의 마음을 보게 한다 하늘은 푸르다,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알약들이 목을 넘어가고 나는 꿈속에서 시원하게 군복을 벗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너는 죽을 거야 니 무서운 소원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너는 사람대접 못 받을 걸 네 가닥으로 찢어진 마음이 마취에서 풀려나 통증이 밀려왔다 니 아버지는 늙은 탈영병, 어둡고 께름칙한 깨달음을 어린 나에게 주었다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이 쉬운 질문 앞에 내가 날마다 엎드려 얼마나 절망하는지 너는 모르고 그렇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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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특별한 야미의 인생
[2011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 소설부문] 특별한 야미의 인생 장해림 나는 캄캄한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 울고 있다. 나를 감싼 건 검은 비닐봉투다. 뜨거운 날씨에 부글거리는 썩은 음식물 냄새가 하얀 찰흙으로 방금 빚은 것처럼 조그맣고 깨끗한 내 콧속으로 쉴 새 없이 기어 들어간다. 엄마의 자궁과는 다른 물컹거리는 공간이 기분 나빠 나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린다. 목이 쉬어라 운다. 나는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갓난아기다. 울다가 피곤해져 눈꺼풀이 서서히 감기려는데 갑자기 신선한 공기가 쏟아진다. 곧이어 나는 봉투째로 들어 올려진다. 나를 들어 올린 사람은 봉투 안에서 조심스레 나를 끄집어낸다. 그의 손은 거칠고 두툼하다. 그는 거의 한 손으로 나를 들어 올리다시피 한다. 불안함에 한순간 울음소리가 더 다급해지지만 오래지 않아 나는 그 사람의 손바닥이 적어도 비닐봉투보다는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