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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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낱말 케이크
낱말 케이크 함기석 새의 생일이다 케이크에 촛불을 달고 소녀는 기다린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도 새는 오지 않고 노을이 번져 온다 소녀는 살짝 손가락으로 케이크를 먹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저녁의 눈동자를 조금씩 파먹는다 케이크를 뒤덮은 하얀 생크림 빛들이 없어지자 노을의 발자국만 남은 지평 끝에서 날아온다 가 먼저 날아온다 새는 아직 오지 않는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또 지나도 새는 오지 않고 어둠이 번져 온다 소녀는 왈칵 울음을 터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저녁의 눈동자가 꽃을 터트린다 소녀는 훌쩍거리며 반대편 손가락으로 케이크에 박힌 체리를 먹는다 건포도를 먹는다 새를 위해 배달된 접시 위의 구름을 먹는다 물병 속의 달빛을 마신다 그러자 새가 날아온다 하늘을 버리고 지평을 버리고 날개를 버리고 새는 새마저 버리고 어둠 속을 날아온다 소녀가 웃는다 촛불이 환하게 웃는다 반짝반짝 빙글빙글 식탁을 돌며 접시들이 춤춘다 술잔들이 춤춘다 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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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파도 무덤
그것은 우리가 언제나 같은 풍경에 대한 다른 표현인 수평선에 머무는 위태로운 불빛들 속에서 불완전한 어둠으로 떨리는 손상된 영혼들을 찾기 때문 실려 오는 어둠을 싣고 가는 파도는 자신의 종착지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마저도 모래 속에 스며들고 없음이나 마찬가지인 어둠만을 허공에 남겨 두는데 한 번뿐인 단 한 번의 파도는 누군가의 무덤을 세우려 다시금 바다의 저편으로 물러가기를 반복하는지 혼은 붙들린 자신을 기억하는 두 눈의 물러감과 다가감을 알고 있거니와 매 순간 시간에 스미는 모래의 생태를 반복 속에서 지켜볼 줄 안다 무너지고 흩어지는 무덤의 자연이 단지 우리 앞에서만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라면 애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혼의 모습을 파도에 빗대어 말할 줄 안다 섬광 번복된 빛의 표현이며 언제든 우리를 그 내부로부터 비출 섬광 속에서 해변의 물리가 차츰 장막에 가려지듯 둔해진다 뿌리를 드러낸 죽음이 우리를 그것이 처음 드러난 모래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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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달의 입술을 훔치다」외 6편
들길에 누운 채로 바람의 중심 흔들다가 지평 끝에 앉은 달 마음자리 엿보며 전생이 읽어 준 의미 귀를 열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