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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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악기(惡記) 1~4
인간의 정신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추상적 형태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상적으로 존재하는 인체에 깃든 상태로써 자신의 정신을 추상으로 표상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이 추상적이라는 인간의 비극은 인체에서 탄생한다. 2 신은 인간이 가진 신에 대한 태도를 신적인 입장에서 관용하지 않는다. 거기엔 무엇보다 보다 물리적으로 인간에게 가까웠던 범죄와 패악과 슬픔이 있었다. 일의적 진실이 참을 수 없었기에, 모든 질문에 완벽한 한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었기에, 인간이 있었고 신이 있었다. 대답이 드러내는 방식보다 질문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더 많이 자기를 드러내야 했던, 맹목이라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좋은 목적으로 신에 대한 인간의 열정은 지속된다. 신이 잊힌 것처럼 우리의 입이 발설할 때 우리는 가장 견고하게 존재한다. 신은 복기된 것처럼 서기(書記)된다. 세계는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비롯되는 것이다. 아침에, 밤의 전역에서 인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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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조연호 시인과의 만남
시의 언어는 구상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근본적으로 추상적 언어예요. 사물화가 불가능한 언어이니 효율적으로 압축해서 사유할 수도 없고, ‘대상에 대한 재현’이라는 가치와 결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다른 어떤 장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의 아름다움, 예술의 아름다움이죠. 시적 대상은 우리 인식 안에서 사물화되지 않는, 혹은 사물화할 수 없는 모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대상을 말할 때의 예술가는 반드시 덜 말하거나 반드시 더 말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극히 비효율적으로 우리가 앞서 예를 든 ‘내년’을 규범적 의미이거나 통념적 의미가 아닌 것으로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술가의 이 기이한 언어는 사전적 의미로 비유와 상징 등의 기법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대상을 말하기 위해 그것을 직접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해 대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비유나 상징은 추상화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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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사랑의 상상력에 대하여
그러니 점점 더 인간의 상상력이 사물과 세계의 존재 상태로부터 멀어져 온갖 추상적 기호와 관념에 고정돼 가는 우리 시대의 지식이야말로 실체 없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어느 때부턴가 사물들의 표면을 주시하기보다는 그것을 화폐의 이름으로만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식의 무대 밑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사랑의 온기가 우리 자신, 그리고 사물들에서 빠져나가면서 우리가 상상력의 부채를 펼칠 기회 또한 점점 희박해져 가는 것 같다. 《문장웹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