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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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바닷가 편지
바닷가 편지 이종암 바닷가 벼랑에 강단지게 서 있는 해송 한 그루는 우체국이다 파도와 바람의 공동 우체국 수평선, 지평선 너머의 소식들 푸른 솔가지 위로 왔다가 가네 영원한 정주(定住)는 없다는 걸 흔들리는 여린 가지 끝에서 나는 예감하네 물 알갱이 하나 햇살 따라 바람 따라 오고 가는 것 누가 여기 이 자리에 나를, 또 너를 비끄러매려 해도 소용없는 일임을 나는 알겠네 소용없는 길 위에 서서 내가 본 만큼의 내용으로 그만큼의 빛으로 편지를 쓰네 봄날 흙 속으로 내려가 앉는 물의 걸음으로, 숨을 놓으며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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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편지 한 장
편지 한 장 민영 목련꽃 필 무렵이면 온다고 했지 목련꽃 떨어져도 오지를 않고 개살구꽃만 산기슭에 붉게 피었네. 산에서는 뻐꾹새 애타게 울고 봄날은 속절없이 가고 있건만 목련꽃 필 무렵이면 온다던 사람 너 없이도 잘살고 있어야! 편지 한 장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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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에덴으로 보내는 편지
[제14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수필] 제14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 에덴으로 보내는 편지 김한세(김규리) 에덴으로, 딸에게 작년은 내가 처음으로 너를 자각했던 때란다. 지상에 떨어진 내가 낙원에 있을 너를 느낀다는 건 곧 내 존재가 그만큼 상처입고 불안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환경에 종속된 인간은 그를 둘러싼 세계가 위태로워지고 휘청거리는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 존재의 오롯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야. 용서를 하나 구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자각했던 그 순간에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 내가 두려웠던 탓이야. 그 어떤 생각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심지어 일종의 박탈감마저 느끼는 상황에서 내가 이성을 잃고 존재를 난도질할까 두려웠단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네게 편지를 쓰고 있지. 조금 모순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시간이 일정 지난 오늘의 나는 어느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