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2)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이토록 자기중심적인 : 『참담한 빛』
(「북서쪽 항구」, pp.240~241) 늘 술에 취해 항구 주변을 배회했던 아버지의 첫사랑을 찾아 아들은 저 멀리 함부르크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파독 간호사의 딸(실은 아버지의 첫사랑이 아닌 다른 파독 간호사의 딸이었지만)은 그를 ‘이민자들의 해안’으로 데려간다. 평생 단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향해 절반의 화해를 시도하는 이곳은, 공교롭게도 곰리가 이민자들을 상징하는 저 유명한 100개의 신체 입상들3)을 처음 세운 장소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그 후 순회 전시되던 이 작품이 영구 설치된 장소가 「스트로베리 필드」에서 쥬드가 떠나온 고향, 알코올중독자 아버지를 남겨 둔 그 리버풀 해안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흥미롭게도, 바다 너머를 응시하는 곰리의 신체들은 「북서쪽 항구」에서 시작하여 「스트로베리 필드」에서 자리를 잡은 셈이다. 떠났으나 떠난 게 아닌 이들과 떠나고 싶었으나 남겨진 이들이 뒤섞인 그곳에.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옛날 아일랜드에
옛날 아일랜드에 유형진 옛날 아일랜드에 아름다운 노리호와 예이호 두 자매가 살았네 노리호는 수 잘 놓는 처녀 예이호는 춤 잘 추는 처녀 어느 날 바다 저 너머 범선을 타고 온 애꾸눈 잭이 예이호에게 반했네 예이호는 아름다운 처녀 노리호의 동생 예이호는 애꾸눈 잭이 무서웠네 애꾸눈 잭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 봐 밤마다 춤을 추었네 노리호는 그런 예이호의 춤을 수 놓았네 밤새껏 수 놓았네 애꾸눈 잭은 밤마다 항구의 술집에서 술을 마셨네 퍼 마셨네 모두에게 예이호는 내 꺼라 으름장을 놓으며 술을 퍼 마셨네 노리호는 수 잘 놓는 처녀 예이호의 언니 노리호는 예이호를 잃고 싶지 않았네 노리호의 방엔 밤마다 춤추는 예이호 열두 폭 광목에 하나씩 박혀 가는데 항구 술집의 등은 날 샐 때까지 꺼지지 않았네 드디어 애꾸눈 잭의 범선이 출항하는 날 노리호는 열두 개의 예이호를 완성했는데 예이호는 보이지 않았네 어디에도 예이호는 없네 애꾸눈 잭이 노리호와 예이호의 집에 들이닥쳤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옆자리 약혼자 키나
옆자리 약혼자 키나 주하림 베드로 성당 기둥에 발을 딛고 있는 천사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선 입장료를 내고 입국심사대를 거쳐야 하는데 인파 속 키나의 약혼자는 사라지고 키나는 하늘을 날기엔 너무 작은 날개들을 바라보고 있다 교황 방 치장을 위해 젊은 날을 석회벽에 그려 넣은 궁중화가 그가 매일 붓을 쥐고 올려봤을 천장의 암흑 그가 그렸던 마리아상은 전부 사랑하던 여자의 얼굴이었대 그녀 이름은 마르게리타 루티 나폴리 항구 레스토랑 키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마리게리타 조각을 집는다 버팔로 치즈 우유 비린내 키나의 약혼자는 약간 굳은 얼굴로 에스프레소잔 가라앉은 크레마를 젓는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나를 보며 윙크하는데 손등에 입맞춰 주는데 여름에도 가을에도 나폴리에선 아직 마피아들이 밥을 먹고 술을 팔고 키나는 그들을 피해 피자집에서 줄을 섰지만 호텔방으로 돌아와 그들에게 피자박스처럼 팔려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8월의 차가운 카푸치노,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