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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시_바람개비
[2013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시 바람개비 박원근 바람개비가 달음박질치면 하늘은 넓게 퍼져나간다 사연들이 포개질수록 바람의 언어는 부풀어 오른다 수수밭 저녁 무렵 노을빛 붉은 말言들 쏟아내고 싶어도 바람은 어깨뿐이어서 단모음만 긁어낸다 간혹 비밀들이 모질게 아려오면 바람은 회벽 물무늬로 들러붙어 기억들을 삭혔다 강기슭에 아이들이 소리친다 강은 떠밀려 가는 시선들 자갈밭에 시간의 빗장을 걸어 보아도 물살에 파인 상흔 속으로 계절은 요동쳤다 아이들은 강의 밑바닥이 왜 두꺼워지는지 알고 있을까 왜 울음들은 침잠하는 것일까 강 줄기 저편으로 수무지개가 피어나자 풀씨 회오리치는 들녘으로 젖은 발들이 몰려간다 강과 들의 잿빛 경계가 허물어진다 바람개비가 간지럽게 만진다 바람 속 메마른 목젖을, 강물 속 축축한 눈두덩을, 바람개비가 속살거린다 바람은 떨어져 나온 하늘 강은 흐르는 피안彼岸 길섶 여기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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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산문_나는 유쾌한 구두닦이
[2013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산문 나는 유쾌한 구두닦이 남궁용 1 내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는데, 밖에서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출타 중이었는데,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어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후에 밖에서 들어오신 어머니가 아직 잠자리에 들어 있던 우리 4남매를 흔들어 깨웠다. 빨리들 일어나서 밖으로 비켜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인부들이 집 안으로 몰려 들어가 가재도구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몇 가지 있지도 않은 방 안 가구며 이불, 옷가지, 부엌살림이 순식간에 밖으로 옮겨졌다. 인부 중 일부가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용마름과 삭아서 푸석거리는 짚으로 된 마름들을 걷어내고, 앙상한 갈비뼈처럼 드러난 서까래를 뜯고, 마룻대를 들어냈다. 순식간에 살고 있던 집이 철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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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장르_겨울날 초원에서 일어날 법한 일
[2013년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장르 겨울날 초원에서 일어날 법한 일 gozaus 초원 사람들이 하나이듯이 하늘도 하나고 태양도 하나다. 하나인 태양은 하지에 만물을 살리는 힘을 모두 쏟아내고 동지가 되면 죽어가지만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한다. 태양의 부활을 기다리는 사흘 동안 초원 사람들은 축제를 연다. 짧아진 해가 영영의 죽음이 아니라 사흘 뒤의 부활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축제의 이름은 동지 축제라고 한다. 초원의 겨울은 길고 추우며 건조하다. 테무게가 뿜어낸 하얀 입김이 하얀 하늘에 서렸다. 칸의 막내아들인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졌다. 모든 부족에서 가장 빼어난 말을 탔고, 모든 부족에서 가장 훌륭한 활을 쏘았고, 모든 부족에서 가장 살찐 양을 먹었다. 그의 몸을 감싼 값진 금 장신구도 그랬다. 그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올해의 동지 축제에서 칸의 후계자로 선포될 것이다. 그러려면 업적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