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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말

  • 작성일 2019-03-01
  • 조회수 2,862

[단편소설]



건널목의 말



박솔뫼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올해 내내 말이 잘 되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 들면 마음이 무겁고 괴롭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 이전에도 그러기는 했지만 올해 들어 더욱 심해졌고 상대방의 질문이나 건네는 말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엇나가는 느낌이었고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고 그런 표정으로 대꾸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음은 소극적인 사람의 표정으로 고개를 젓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말 역시 불신하게 되고 고민의 말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마치 나 자신이 리트머스 종이처럼 온도계나 기타 기기처럼 말을 들으면 수치화할 수 있는 것처럼 무게 없는 말 본뜻이 아닌 말이라고 저건 아니야 저건 아닌 것 같아, 라고 역시 소극적인 사람의 표정으로 다른 이들의 말들을 거절하고 있었다.


지난달에는 부산에 가서 바다도 잠깐 보고 골목의 바에서 술도 마시고 시장에서 포도 한 상자를 사와서 숙소에서 3일 동안 묵으며 다 먹기도 했다. 첫날밤 도착하여 해운대 근처 비즈니스호텔에 짐을 풀고 밤바다를 보고 해운대구청 근처 바에서 위스키를 마셨다. 바의 자리는 ㄷ자였는데 혼자 온 사람들이 각각 한 자리 건너 한 자리 이런 식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관심이 없는 표정을 하고 생맥주를 마시듯이 위스키와 칵테일을 세 잔 빠르게 마시고 나왔다. 계산을 할 때 칵테일을 만들어주시던 분이 왜 이렇게 빨리 마시고 나가시는 거예요, 라고 물었다. 내가 술을 휙휙 급하게 마신다고 했다. 위스키를 두 잔 마시고 올드 패션을 한 잔 마셨는데 둘 다 아주 맛있었고 일상적으로 말을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서 비롯된 잔뜩 긴장된 상태에서 풀려나서인지 기분이 좋아져서 맛있어서 그렇다고 말하며 웃었다. 잠시 근처를 돌아다니다 해운대 시장으로 가서 치킨 한 마리와 막 문을 닫으려는 과일가게에서 포도 한 상자를 샀다. 한 상자라고 해봐야 작은 상자라 8송이쯤 들어 있는 정도였다. 어깨에는 가방, 한 손에는 포도, 한 손에는 치킨을 들고 약간 취했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하는 생각과 약간 취한 기분에 타고 올라 계속 흔들거려야지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며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러닝 쇼츠와 티셔츠를 입은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백인 남자가 건너편에서 가볍게 뛰어오고 있었고 왼쪽 편 고가도로 아래에서부터 머리를 짧게 깎은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다.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운동방향을 유지한다면 둘 다 나를 스치고 백인 남자는 내 뒤로 자전거를 탄 남자는 내 오른 쪽으로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둘은 나를 사이에 두고 세 걸음쯤 남겨 두고 그 세 걸음 정도는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고 멈춰 서서 인사를 했다.


- 안녕.
- 운동하러 가는 거야?
- (고개를 끄덕) 그냥 좀.
- 내일은 뭐 해요?
- 내일은 뭐 회의 있어요. 어학원 선생님들 회의.
- 못 쉬겠네?
- 음 뭐. 할 수 없어요.
- 또 나중에 봐요.
- 네. 고마워.
- 잘 가요.
- 네. 잘 가요.


신호등은 바뀌고 나는 먼저 지나가고 내 뒤로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가벼운 가을 바다 바람이 불고 있었고 말에 말을 들어야 하고 말을 해야 하는 일과에 잔뜩 긴장하고 있느라 지쳐 있던 생활에서 벗어나서인지 편한 상태였고 씻고 치킨을 먹고 포도를 먹으면 더 좋을 것이다. 백인 남자가 한국어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해운대에는 외국인들이 많았고 몇 년씩 영어 선생님을 하다 보면 그 정도 한국어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역시 신선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자전거를 탄 사람 쪽이 영어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정작 외국어를 해야 하는 쪽이 어떤 부담을 가졌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외국인들이 자주 쓰는 제스처나 표정이 거의 없었고 표정 없이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나를 지나쳐 뛰어갔다. 나는 영어를 할 때 부담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가 크게 부담을 느꼈을까, 조금만 잘해도 나처럼 놀라고 칭찬해 줄 테니 별 부담이 없을까. 어쩌면 매일 만나야 하는 사람들에서 놓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어쩐지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혹은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것 이상으로 아무 말도 지껄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해운대를 굴러다니는 모래처럼 가볍다고 느껴버리는 지금의 나처럼 가벼운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 모래밭으로 가 모래알을 헤아려 보면 모래는 알맹이가 각각 뚜렷할 것이다. 당장은 나의 마음과 존재가 바닷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듯했지만 그게 다는 아닌 무언가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배경화면처럼 틀어 놓고 치킨을 먹으며 인터넷을 하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 뒹굴다 메일 확인을 하다 다시 채널을 돌리고 CSI를 봤다. 배가 부르자 포도를 먹고 포도를 두 송이 먹고 화장을 지우고 이를 닦고 샤워를 하고 욕조에 물을 틀어 놓은 채 붉고 동그란 배를 보았다. 목 아래부터 배꼽까지가 술 때문에 붉어져 있었다. 휴가가 끝나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닥쳐오는 질문들에 어느 정도의 정확한 답을 해야 하는가 정확한 답을 하지 않고 적당히 말을 하는 것을 묻는 사람도 그 외 주변 모든 사람들도 원하지만 그렇게 적당한 말을 하고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다시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은 말을 하였다고 그것은 달갑지가 않았고, 달갑지 않은 사실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분명. 이런 것으로는 누구와도 싸울 수가 없는데 달갑지 않은 것들을 작은 것부터 쌓아올리면 말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그것이 어떤 식으로 달갑지 않음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나 그럴 리 없을 텐데. 한숨을 쉬니까 입에서 포도 냄새가 났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밤에는 걱정을 미리 사서 했다. 전전긍긍하였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마음은 평안해지는 듯했지만 아주 잠깐 2초쯤 회사가 너무 가기 싫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빼고는 그 시간은 빼지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긴장을 풀고 편한 마음이었다.
어디에 무언가 남아 있는 감각 잔잔한 표면 아래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고체들을 나는 생각했다. 씻고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웠을 때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침대 머리맡 옆에 놓인 서랍장 위에는 호텔 입구에서 가져온 신문이 있었고 그 위에는 뱉어 놓은 포도 껍질로 바닥이 신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고개를 돌리면 포도 냄새가 났고 이불을 머리 위로 덮으면 멀어졌다. 방은 건조하고 포도 껍질도 말라 갈 것이다. 울긴 울었지만 부산에서는 잘 쉬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시간은 흐르고 하던 것을 하고. 그런데 자꾸만 부산에 다시 가고 싶었다. 거기서 잘 쉬고 여기로 돌아와 일을 열심히 하고 마음을 다잡아먹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경마장의 말처럼 달리는 사람이 될 수가 없나 나는?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데 쓸 힘이 없었고 점심을 먹고 저녁에 뭐 먹지 생각하는 것처럼 가을 이후로 한동안 부산에 갈 기회를 살피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말을 하기 싫을 때 자꾸만 말을 의심하게 될 때 다시 부산에서 쉬고 싶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했다. 부산이 무슨 말의 고장인 것도 아닌데. 아니아니 말에서 자유로운 공간인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여기가 아니면 아무데라도 상관이 없어서 부산에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부산이어야 했는데 부산으로 정해버린 것이 조금 우습다 생각할 뿐이었다.


지난주에는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자꾸 미루게 되었다. 일기를 습관을 들여 쓰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할 말이 있으면 일기장에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딴생각을 하다가 청소를 해버리고 청소를 하고 나면 졸려서 자버리거나, 그 외에도 할 일은 많았다. 줄곧 쌓여 있는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게 뭐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뭐가 안 되더라도 그냥 두고 싶기 때문에. 일기에 쓰려고 한 것은 동면에 관한 것인데 술을 마시다 어떤 사람이 동물학자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 동물학자는 먼 조상들은 동면을 했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말을 시작할 때 이것은 가설이라고 하지만 하고서는 시작했다. 옛날에는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동면을 했다는 것인데 현재 주변에서 겨울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먼 조상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수면과 동면의 차이도 이야기해 주었는데 수면은 뇌가 정리되는 과정이고 동면은 아무것도 없는 ------------의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수면 상태에서는 어그러졌던 기억이나 정신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정리된다고 했다. 반대로 동면은 멍한 상태. 그래서 실제 동물들도 동면중이라도 깨어났다가 다시 수면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수면에서 깨어나서는 다시 동면을 취하는 곰을 생각했다. 나는 겨울이 힘들었기 때문인지 그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그런 가정은 낭만적이기도 했고 내가 겨울에 힘든 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남 탓을 할 수도 있었다. 동면을 취하는 사람들, 예전의 사람들, 앞서간 사람들. 먼 조상이라고 해도 아주 여러 명을 거쳐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조상은 당연히 한국 사람이겠지? 아닐 수도 있지만 우선 한국 사람만으로 가정하면 5000∼6000년을 60살로 나눈 정도가 아닐까. 아니면 옛날에는 더 일찍 죽었을 것이니 40살 정도로 나눠 보아도 된다. 내 앞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많지만 아주 엄청난 수는 아니다. 세 자리 수의 사람들일 것이다. 혹은 위험을 피해 장수한 조상들이 많다면 두 자리 수의 사람들. 거기서 앞에서 몇 번째 몇 번째 몇 번째까지는 동면을 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은 곰처럼 배를 채우고 추위가 몰아치기 전에 동면을 했을 것이다. 동면을 하다 잠시 깨어 수면을 취하고 다시 깨서 동면으로 들어가고 그런 시간들을 지나 봄이 오면 잠에서 깨어 다시 생활을 해나갔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로빈이었는데 로빈은 자는 것이 특기라고 했다, 나도 거기에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닌가 나는 자는 생각을 하면 좋았다. 재능이 잘 발휘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하루 중 어느 시간이 가장 좋은가 하면 잠들기 위해 침대로 가 이불을 덮는 시간이었다. 마음속으로 <동면하는 로빈>이라는 제목을 생각해 두었다. 나는 그것을 꼭 쓰고 싶다. 일기처럼 미뤄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했는데 그 이야기가 끝나자 누군가 요새 사주를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저요 저요 하고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어 생년월일과 일시를 부르는데 왠지 속으로 나는 지금 추운 사람 나는 추운 게 싫은 사람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아무튼 여름 사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당신은 열심히 노력해서 서울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네요. 그런데 북쪽이 맞지 않아요. 남쪽으로 가야 해요. 꼭 아주 남쪽이 아니더라도 서울 안에서라도 남쪽으로, 아니면 대전이라도 아무튼 되도록 남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을 했다. 당신은 추우면 안 되는 사람이네. 나는 맞아요 맞아요 했다. 동면을 하는 사람은 추위를 피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 안 추운 데서 사는 쪽이 나은 걸까. 나는 추운 것이 힘든 사람이라고 여기저기서 나를 인정해 주었다. 나는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생각했다. 당신은 태양을 받아들여야 하니 붉은 옷을 입으세요, 라는 조언을 들었다. 나는 정말 붉은 옷이 없다. 옷을 사야 한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많은 말들을 땅에 묻는 것을 실제로 그 행동 자체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데 그런 식으로라도 몸을 쓰지 않으면 몸을 쓴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나는 어딘가에서 울어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 머리카락에 얼음이 달리고 콧물이 얼어붙은 사람을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을 가여워하며 보았다.
땅에 묻힌 말은 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선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고 말들은 흙과 섞여 거기서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 머릿속 그림으로는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런 일을 하면 겨울이 끝이 날 것이라고 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면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겨울을 어떻게든 나야 하며 나는 늘 후회할 말들을 많이 해버린다. 아니 후회할 말들이라기보다 말이라는 것이 어떤 말이라는 것이 마음만 먹으면 나를 불안하게 할 수 있었다. 내뱉은 말들에 대한 불안들, 나는 그것이 실제로 내 방문을 두드릴까 봐 불안해하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타당한 생각임을. 그래서 나는 겨울날 삽을 들고 산으로 가 말들을 묻는 나를 떠올린다. 말을 묻고 돌아와 걸친 털옷을 벗지도 않고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방에 누워 잠을 잡니다. 나는 동면을 하는 것은 아니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사과를 먹고 차를 마시고 다시 말을 묻으러 갑니다. 왜 자꾸 묻어야 하는지 왜 그럼에도 자꾸 묻는 것에 관해 써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나는 그 생각한 내용을 일기라고 여기고 우선 이곳에 잠깐 써둔다.


일단 묻는 것에 관해 말을 하겠다. 나는 벌벌 떨지 않기 위해 얼지 않기 위해 두꺼운 옷을 입고 삽을 들고 땅을 파서 흙을 쌓는다. 그러면 몸이 뜨거워지고 땀이 난다. 내가 묻는 것은 말인데 나는 말을 하는 것이 말이라고 하는 것이 대개의 경우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때라도 말을 하고 있는데, 나는 한편으로는 너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그냥 싶은 것이라고 해야 할지, 단순한 감정으로는 하고 싶지 않음에 훨씬 더 가깝지만 그중 어떤 감정은 말하고 싶음 써두고 싶음 외치고 싶음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게 말이 아니어도 좋고, 말이 아닌 형태로 유리병을 손에서 놓쳐서 그것이 바닥에 깨진다거나 옆에 있는 사람의 볼을 물거나 뺨을 때리거나 그런 행동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 그리고 그런 강하게 튀어나간 마음은 사실 말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나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눈치만 보다가 꾸역꾸역 쌓아 두는 짜증 속에서 모두 다 그만두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것 아닌가.


아무튼 간에 여기에 쓰는 것은 일기에 가까운 것인데 무엇이라도 우선 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말을 하고 싶다고 그 말이 행동이든 소리든 간에 있긴 있다고 그것도 아주 강한 형태로 있다고 써둔다. 그 마음에는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도 있다고도 쓴다. 그리고 따라 붙는 말에 대한 불안들도 일단은 간단하게나마 나는 이런 것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어, 라고 쓰고 그래도 왜인지 떨치지 못한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말을 땅에 묻는 것을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쓴다. 의문과 불안과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장면들에 대해서 말이다. 말을 땅에 묻고 그 말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낙엽이 썩어 사라지듯이 그렇게 사라집니다. 나는 그와 비슷하게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나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볍게 해줄 것이라고 내가 진정으로 믿는 것들을 몇 가지 더 생각해 보고 쓰기로 한다.


1. 산으로 가 말들을 묻고 돌아와 숙면을 취한다.
2. 같은 말을 반복한다.
3. 원하는 미래를 쓴다,
4. 원하는 모든 것과 원한다고 쓴 모든 것을 믿는다.


지금은 우선 부산에 가고 싶었다. 서울은 너무 춥고 나는 회사에 가기가 싫고 부산에서 묵었던 숙소는 모든 저렴한 호텔처럼 약간 싸늘한 공기에 건조한 방이었다. 히터는 돌아가고 두꺼운 오리털 이불 안으로 몸을 넣고 눈을 깜박이면 김이 서린 창이 보였다. 어떤 곳은 뜨겁고 떠도는 공기는 서늘해. 나는 말이라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는 수건으로 감싸고 벗은 몸으로 이불 속에서 눈앞의 벽을 보고만 있어. 하지만 동면에도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동면에서 깨어 수면으로 들어가야 할 때 수면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수면 후에 동면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동면을 취할 식량이나 공간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동면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시중을 들게 하고 자신은 지금의 호텔 같은 넓고 쾌적한 곳에서 동면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동면의 시작은 공동생활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한 마구간 같은 곳이나 동굴에서 모두 나란히 누워 동면을 취하다 동면-수면 사이클 변화 시 눈을 떠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고 다시 동면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동면 공간을 갖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텔과 시중 그 사이에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나에게도 멀리 있는 나라고 잠시 믿어 보는 나에게도 동면의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고, 혹은 동면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온 어느 날의 나 그러나 지금과 아주 다르지는 않은 나를 생각해. 먼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살지만 동면을 하는 나. 여전히 말을 하고 싶지 않고 일기를 쓰려고 하는 동면을 하는 나. 가을부터 음식량을 늘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음식도 저장해 두고 깨끗이 정리와 청소를 끝낸 방에 누워 눈을 감고 긴 겨울잠을 잡니다. 내 옆에는 지금 내 옆에는 없지만 동면을 하는 내 옆에는 다른 동물이 한두 마리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다람쥐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혹은 그곳의 나는 그해의 나는 돈을 많이 벌어 작고 조금 낡은 방이지만 호텔을 예약해 3개월여를 따뜻하지만 건조한 호텔방에서 보낼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보다 힘든 상황들도 떠오르지만 오늘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동면을 하고 스스로 정한 기간에 눈을 떠 과일과 차를 마시고 고기를 먹고 잠시 스트레칭을 했다가 다시 과일과 차를 마시고 이를 닦고 숙면을 취한 다음 다시 잠에서 깨어 동면 상태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때의 나는 봄이 되면 동면 기간 동안 꾼 꿈들을 하나씩 기억하여 기록해 둘 것입니다. 2월 말부터 3월을 지나 4월 초까지 나는 꿈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들과 잔잔한 사투를 벌여 나갑니다. 나는 노트에 꿈을 기록하는 일기를 쓰고 가끔 그림과 사진을 덧붙이고 책꽂이의 책을 뒤지며 기록을 보충합니다. 이것은 나만 하는 일은 아닙니다. 드물지만 동면자들은 꿈을 기록하고 정리하는데, 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진 시간들을 복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기에는 잠이 다이기 때문에 꿈의 흔적을 좇아 동면의 시간으로 떠난 자신이 실은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음을 그 떠남을 떠올리고 더듬어 나가며 자기 자신과 또 어딘가에 있을 자신에 대해 이해해 가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꿈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나는 적어도 나는 내가 있었으면 내가 했으면 좋았을 것에 대해 그것은 허황된 꿈과 바람이지만은 않고 사실 했을 법하지만 왜인지 아련한 것들에 관해 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4월이 오면 나는 일을 하고 걷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갑니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은 꿈을 기록하는 것과 늘 연결되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것도 아니고 몇 번 반복해 가다 보니 알게 된 것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일을 하고 저금을 하고 옷을 정리하고 세탁소에 가고 시간을 내어 바다를 보러 갑니다. 차를 마시고 장마의 날들을 빗소리를 들으며 보내다 보면 쨍한 하늘과 더위가 찾아옵니다. 그때는 7월이 지난 날들입니다.


여름이라면 좋을 것인데. 그게 아니라면 여름이라면 좋을 것이다.
여름이라면 좋을 것이라는 말은 2번에도 3번에도 해당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4번에도 해당이 되었다.


8월 말 늦여름에는 부산에도 갔다. 해운대 바다를 따라 있는 버스정류장 유리가 연이어 깨져 있었다. 폭주족 같은 것이 있나요? 누군가 지나가며 휘두르며 깬 유리들이었다. 나는 왜인지 불안하지만 들뜬 바보 같은 마음으로 바닷가를 걸었다. 그 바보 같은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들뜬 해맑고 멍청한 마음, 혹은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 잔뜩 기대하지만 결국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결국에는 해맑고 멍청한 마음. 그런 식으로 조금 바보 같은 마음이었다. 무거운 바람이 흐르는 길을 따라 걸었고 바다는 잔잔하였지만 밤은 검고 깊었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인데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나는 해운대 시장을 지나 해운대구청 뒤편의 작은 바에서 하이볼 두 잔을 마셨다. 어떤 위스키로 만들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서 아무거나 추천해 달라고 했다. 다다음달 영화제가 열리면 지금보다 더 붐빌까? 아니면 8월 말이어도 여름이니 여름이 더 붐빌까 잠깐 생각하다 말았다. ㄷ자로 된 바에는 출입문 쪽에는 내가, 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한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내 오른편의 남자는 이곳에 자주 오는지 바텐더와 술 이야기를 친근하게 하였다. 하이볼을 한 잔 마시고 잠깐 나와 옆 편의점으로 가 담배를 사서 밖에서 잠깐 피우고 들어오자 바텐더는 안에서 피우셔도 된다고 말하고 나는 바람 쐬려고 나갔다고 말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 포도 한 상자와 사과 두 개를 샀다. 가만히 서서 걷다 보면 이미 익어 진해진 포도 향이 올라왔다. 얼른 씻고 내 몸을 씻고 포도도 씻고 침대에 누워 포도를 먹고 싶다 얼른 돌아가자 생각하다가 그러다가도 왠지 누군가 말을 걸면 그 사람을 따라가 그 사람의 집으로 가 포도를 씻어 먹게 되는 일이 생길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포도가 먹고 싶었다.


- 다음에 글을 쓰면 '동면하는 로빈'이라고 제목을 해.
- 동면하는 로빈?
- 그럼 내가 읽어 볼 거야.


동면자들이 기억하려고 애쓰는 꿈들은 가끔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을 때 그들을 찾아왔다. 실제 그들은 낯선 곳으로 가 다음 동면 전까지 조용히 거리를 걷고 생활을 하는데 그 때 누군가 옆으로 와,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담뱃불을 빌리며 이야기를 하였다.


- 결국 오필리아라는 사람을 썼잖아요?
- 그것은 왜 어떤 사람이 그곳까지 왔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생각하고 있는 건데.
- (왜 그 사람은 거기에 있을까, 어떻게 그 사람은 거기에 있을까.)


숙소를 향해 가는 횡단보도 앞에 조깅을 하고 있던 키가 큰 백인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고 고가도로 아래에서 자전거를 탄 남자는 자전거를 끌며 횡단보도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고가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끄는 남자가 오는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면 나와 자전거를 탄 남자는 스쳐 지나가고 나는 다른 곳을 가려고 하지만 왠지 달맞이길 쪽으로 방향을 잡아 또다시 헤맬 것이고 자전거를 탄 남자는 바닷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자전거를 끄는 남자와 조깅을 하는 남자와 나는 모두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 어디 가?
- 집에 가는데?
- 다음 주에 부산 mbc 라디오 방송 녹음하는데.
- 그때 보겠네?
- 어. 끝나고 보든가 하자.


두 남자는 손을 잠깐 들었다가 내리고 나는 숙소를 향해 간다. 키가 큰 백인 남자가 한국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그는 표정 없는 한국인의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고 다시 뛰어갔다. 가방 안에서 카드키를 꺼내 문을 열고 가방을 바닥에 떨구었다가 다시 테이블 위에 놓고 얇은 린넨 코트를 옷걸이에 걸고 침대에 누워 바지와 티셔츠를 양말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서 보고 돌리고 엎드려 누운 채로 일기를 써야겠다고 잠깐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서는 맛있는 와인을 찾아 과수원 같은 곳을 헤매었는데 목적 없이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보람을 품은 채로 찾고 있었고 그러다 금방 다시 깨 욕조에 몸을 담근 채로 머리를 감고 포도를 먹고 나서 이를 닦아야지 생각했다. 꿈에서 와인을 찾아 헤맸던 것은 포도를 먹고 싶어서였을까 틀어 놓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소믈리에에 관한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일까 잠깐 생각했다. 혼잣말도 나오지 않아 에에 아아 몇 마디 소리를 내어 보다가 말았다. 몸을 닦고 머리와 몸에 수건을 감은 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여전히 건조한 방의 어느 쪽은 서늘하고 화장실 옆에서는 물기를 머금은 더운 공기가 머무는 방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회사에 가기 싫었고 회사에서 별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 가기 싫었고 비슷하게 말도 잘 되지 않았고 생활을 위해서라면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래도 겨울보다는 여름이 훨씬 나았으므로 여름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 바에서 만난 여자는 처음 본 나에게 털어놓을 것이 있는지 아무 이야기나 무작정 주구장창 쏟아내었고 나는 즐겁고 많이 웃었다. 그 사람은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19살에 뉴욕으로 건너가 십 년 넘게 불법체류자로 살았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신고할 경우 비자를 발급해 준다고 하여 그때 비자를 받았다고 했다. 그 이전까지는 가족들을 거의 못 보았고 가족들이 미국으로 한 번 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 아무튼 그 여자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멋있어요.
- 왜요?
- 투어 중에 죽었잖아요 호텔에서.
- 아. 맞다. 들어 본 것 같아요. 2002년인가 그랬었던 것 같은데.


겨울인 나보다 여름인 나가 훨씬 좋습니다. 나는 그러므로 불평하지 않고 정말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눈을 깜박이며 부산에서의 늦여름 밤을 즐깁니다. 겨울인 나 서울에서 겨울에 추워하는 나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은 나 동면을 하지 않는 나 기억나는 대화가 적은 겨울의 나는 어디에선가 조금 다른 나 자신이 건조하고 따듯한 호텔에 누워 동면을 한다는 생각으로 추운 시간들을 버티려 해보고 조언대로 붉은 옷을 사지 못한 나 조언대로 붉은 옷을 샀지만 여전히 추운 나. 동면자들이 기록하는 꿈에 관한 기록은 나 역시도 어디에 있든 조금 보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일기를 쓰려고 하고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지만 쓴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몸을 일으켜 포도를 씻고 포도를 침대 위에서 낮에 읽던 주간지를 깔고 먹고 다 먹은 포도 껍질을 주간지 위에 말리듯이 깔고 그걸 다시 테이블 위에 놓고 포트에 물을 끓이고 잔에 녹차 티백을 넣고 녹차를 우리고 녹차를 마시며 CSI를 봅니다. 마이애미에 가고 싶어졌고 거기서라면 동면을 안 해도 동면에 대한 생각을 안 해도 하지만 누군가의 동면의 기록이 될 가능성을 희박하게 품은 채로 살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를 닦고 침대에 누워 눈을 깜박이면 이전에 본 책의 페이지가 머릿속에서 마치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장면처럼 책의 표지가 크게 보이고 그 다음 장에는 작가 사진이 박힌 책날개가 보이고 다시 책 제목과 몇 장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이 보이고 그 페이지만을 천천히 더듬듯이 읽어 나갔다. 그때 나는 실제의 나보다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았지만 책만은 실제의 책보다 커져서 노력하지 않아도 글자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책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먼 별』이었다.


검은 하늘과 짙은 구름이 펼쳐진 책 표지에는 왼쪽에서 와 오른쪽을 향해 가는 작은 경비행기 한 대가 있고 그 경비행기는 길고 가는 바늘귀 속을 통과하려 한다. 바늘의 오른쪽 위에 책 제목인 먼 별이 쓰여 있다. 책장을 넘기면 로베르토 볼라뇨가 어째서 비더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는지 짧은 한 장 정도의 설명이 있다. (그는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에서도 비더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소설은 시작한다. 이때 『먼 별』은 한 권에서 두 권이 되어 첫 문장을 읽는다.


내가 카를로스 비더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1971년이나 1972년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남부의 수도라 불리는 콘셉시온에 있는 후안 스테인의 시 창작 교실에 가끔 드나들었다. 나는 그와 친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가 일주일에 한두 번, 시 창작 교실에 들를 때만 만났을 뿐이다.1)

1) 『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열린책들 p.11, 다음 단락은 1)에서 변형.


내가 처음으로 카를로스 비더를 알게 된 것은 1971년이나 1972년 무렵이었다.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던 바로 그 시기였다.
당시에 그는 자기 자신을 알베르토 루이스-타글레라고 했고, 가끔씩 후안 스테인의 시 창작 교실에 나왔다. 남부의 수도라고 불리는 콘셉시온에서 열리는 문학 창작 교실이었다. 내가 그를 잘 알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문학 창작 교실에서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그를 보는 게 전부였다.


두 번째 『먼 별』은 곧 책장을 닫고 첫 번째 책의 뒤로 합쳐진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친구는 『먼 별』의 첫 부분을 다시 번역하여 나에게 주었고 나는 그것을 『먼 별』의 앞부분에 꽂아 놓고 읽을 때마다 번갈아가며 읽었다. 『먼 별』은 『먼 별』대로 차례로 페이지가 넘어가고 나는 왼손으로는 『먼 별』의 페이지를 넘기고 만지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어느새 나타난 나의 일기장을 넘겼다. 어제의 일기. 어제의 일기는 없고 엊그제 그 전날의 일기도 없고 휘리릭 넘겨보면 뒤죽박죽으로 쓰다가 말다가 어느 부분은 수십 장을 백지로 건너뛴 오래된 노트가 거기에는 나도 기억 못 한 몇 달 전의 한탄과 감상이 한 줄로 끝이 나 있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땐 강가에 갔다.
온갖 곳에 이르러 강가에 갔다.


볼라뇨의 『먼 별』은 자주 읽어서 한 손으로 넘기다 멈추고 눈으로 훑어도 어떤 장면인지 바로 말할 수 있었다. 한 권으로 합쳐진 『먼 별』을 책상 위에 두고 일기장은 그 위에 두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박이다가 나란히 누워 함께 동면하던 사람들을 그려 보았다. 나와 손을 잡고 동면을 하던 사람들, 메마른 입술을 하고 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어느 날에는 지금의 나처럼 작은 방에서 혼자 누워 있기도 했고 다람쥐와 다른 작은 동물들도 함께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잘 되지 않는 사람들 잠을 자면 오랜 시간 해야 할 말들이 자기들끼리 흩어져 스스로 산속에 가 묻히게 될 것이다. 몸을 일으켜 베개를 안은 채로 CSI를 다시 보고 왜인지 늦여름의 부산은 아주 많은 여러 번의 수만큼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소개 / 박솔뫼

출간한 책으로는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 『인터내셔널의 밤』 등이 있다.


《문장웹진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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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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