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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죄의식과 반(反)성장서사

  • 작성일 2020-05-01
  • 조회수 2,472

[문학더하기(+)]

2010 다시-읽기 Re-View
- 《문장웹진》에서 실시한 2010년대 문학 설문 결과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우리가 ‘다시’ 읽어봐야 할 작품에 대한 리뷰



그녀들의 죄의식과 반(反)성장서사1)

- 박정윤, 『목공소녀』(자음과모음, 2015)



전영규




박정윤의 소설 『목공소녀』(자음과모음, 2015)는 작가가 지금까지 출간한 4권의 소설 중 유일한 단편소설집이다. 『목공소녀』를 소개하기 전에 작가의 독특한 이력을 들여다본다. 200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바다의 벽」이 당선되었지만 정작 작가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그로부터 4년 뒤 2005년 「길은 생선 내장으로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한 번 더 수상하고 나서부터라고 짐작한다.(작가의 첫 등단작 「바다의 벽」이 소설집에 실려 있지 않은 것을 본다면) 이후 7년이 지난 2012년에 쓴 장편소설 『프린세스 바리』(다산책방)는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 되었고, 이어서 경장편소설 『연애독본』(나무옆의자, 2015), 장편소설 『나혜석, 운명의 캉캉』(푸른역사, 2016)을 펴냈다. 1권의 단편집과 3권의 장편소설이라는 이력. 시기상으로 봤을 때 『목공소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그의 등단작 연도를 봤을 때 비교적 늦은 시기에 세상에 나온 작가의 첫 단편소설집이기도 하다.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 자신의 첫 소설집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여기 묶인 단편들은 모두 장편을 쓰기 전에 쓴 것들이다. 오래된 것은 15년 동안 서랍에서 묵혀 문장이 눅눅해졌다. 새뜻한 바람이라도 씌어 줄까, 했지만 손을 대지 않았다. 촌스러운 것이 딱, 촌스럽게 느껴져서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293쪽) 이 단편들이 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세 편의 장편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셈이다.
1년 전, 정확하게는 2019년 11월에 발행한 반년간 독립문학잡지 ≪비릿≫ 2호에서는 박정윤을 주제작가로 다룬 적이 있다. "한국 문학에서 주목받은 바는 없으나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2)가 ≪비릿≫이 추구하는 주제작가의 선정기준이었으며, 그와 함께 작가에게 붙여진 부제는 "여성 화자의 언어"였다. 실제로 작가의 첫 단편집인 『목공소녀』는 "한 작품을 제외하고 모든 화자가 여성으로 제시되며, 장편소설 세 권 역시 모두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3)과 관련해서다.
자, 그렇다면 『목공소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본다. 『목공소녀』는 총 9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녀의 곁엔 늘 바다가 있었다. 어른이 된 소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바다가 펼쳐졌다. 들물과 썰물 사이에만 볼 수 있던, '풀등'이라고 불렸던 모래 언덕이 있던 곳.(「소요」) 초경을 치르기 전까지 비가 오는 날이면 할머니의 눈을 피해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던 그 시절의 우리. 할머니의 손으로 태어난 내가, 시간이 흘러 할머니의 뼛가루를 내 손 한가득 쥐고 뿌려 주던 바다.(「미역이 올라올 때」) 가파른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생선 비린내와 억센 물미역 냄새가 엉켜 있던 곳.(「트레일러 소녀」)
그러나 그녀들이 기억하는 바다는 늘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녀들의 바다는 평생 잊지 못할 유년의 사건과 함께했다. "자살한 엄마의 머리카락 같은 시커먼 미역이 내 발목을 휘감"는 바다.(「트레일러 소녀」, 60쪽) 새아빠의 폭력 때문에 이혼한 후부터 정신이상이 온 엄마가 종종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던 딸 미랑.(「미역이 올라올 때」) 아빠와 결혼하게 되면서부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섬마을로 들어와 살게 된 새엄마가 어느 날 바다로 걸어 들어가 자살하는 모습을 본 소녀.(「소요」)
왜 그녀들의 유년은 이토록 잔인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하는 것일까. 소설 속 주인공들은 슬픈 가족사를 지니고 있다. 「미역이 올라올 때」와 「소요」 속 주인공들처럼 그들은 편모나 편부, 혹은 재혼가정의 자녀들,(「기차가 지나간다」, 「파란 평행봉」) 고아 혹은 부모가 있어도 거의 고아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아이들(「내 곁에 있어줘」, 「초능력 소녀」)처럼 비교적 온전하지 못한 가정에 속해 있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거나,(「목공소녀」) 타인을 향한 병적인 집착이나 결핍을 보인다.
소년 혹은 소녀가 "성인이 되어 가면서 겪게 되는 내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 그리고 세계의 주체로서 정립되는 각성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는 작품들을 지칭"4)하는 것이 성장소설이라면, 박정윤의 소설에 나오는 소녀들은 과연 제대로 된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성장소설 초반부에서 인물들은 "대상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능력의 미숙이나 열악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인 능력의 결핍"을 보여준다. "고난 혹은 시련을 겪거나, 새로운 지혜나 능력을 탐색하기 위해 낯선 곳을 향하기도 하고, 일상의 세속 공간으로부터 분리"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성장을 열망하는 주인공들은 시련과 분리의 고통을 기꺼이 체험하고 스스로의 미숙이나 부족함을 극복하며 성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성숙한 인식적 능력 혹은 실천적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결핍에서 충족으로, 혹은 출발에서 귀환으로", 분리에서 결합으로, "전반부의 부정적 상황이 후반부에 이르러 긍정적 상황으로 변화하게 되는 구조적 특질을 보여주는 것"5)이 대부분의 성장소설이라면, 박정윤이 그려내는 성장서사는 그 반대다. 인물들은 여전히 결핍이 충족되지 못하고, 이곳이 아닌 낯선 곳을 향해 떠났던 자들은 이후에도 더 나은 삶마저도 살지 못하거나, 안정된 가족 구성원으로도 결합하지 못한다. 고난이나 시련 이후, 그들의 삶은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남는 건 죄의식이다.

1) 이 글은 반년간 독립문학잡지 ≪비릿≫ 제2호(2019.11)에 실린 졸고,「바다가 되어 돌아온 그녀들: 박정윤론」의 일부와 관련한다.
2) 곽연주 문학잡지 ≪비릿≫ 편집위원,「날 것의 거친 호흡으로부터」,『작가와 사회』, 2019년 겨울호, 138쪽. 이와 관련해 ≪비릿≫이 추구하는 슬로건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과 사회에 고착화되어 있는 메이저리티와 마이너리티 사이의 경계를 응시한다." 등단자와 비등단자의 구분 없이 대부분의 원고를 독자의 투고작으로 모으는 방식으로 잡지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3) 「박정윤 인터뷰」, ≪비릿≫ 앞의 책, 38쪽. 덧붙이자면, 이 인터뷰 코너에서는 작가가 왜 이 소설집을 늦게 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가 자세히 나와 있다. "단편소설은 결국 발표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요, 젊고 실력 있는 작가들은 계속해서 등단을 거치면서 늘어나고, 청탁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인정해 버렸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니 언제부턴가는 굳이 많은 에너지를 들여가며 단편소설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반면에 장편소설은 제안이 먼저 오기도 하고, 써두었거나 쓰고 있는 작품을 출간해 주겠다는 곳도 있으니까."(34쪽) 바로 이런 이유로 『목공소녀』는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아야 할 가치가 있으며, 문단 내 시스템의 문제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본다.
4) 최현주,『한국 현대 성장소설의 세계』, 박이정, 2002, 28쪽.
5) 최현주, 위의 글, 46-47쪽.


무엇을 보았니, 무서운 것을 보았어요, 그건 꿈이란다, 어서 꿈에서 빠져나오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요, 저기 무리에서 벗어나 천천히 날아가는 새가 보이니, 저기 뒤처진 새가 나쁜 꿈을 몰고 날아갈 거야, 새에게 말해버려, 그리고 잊어라, 아니요, 어떤 것은 잊히지 않아요, 잊지 않도록 오래 기억해야 해요, 여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어요,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으니깐, 네 명의 섬 여자들이 여자 곁으로 다가갔어요, 한 명이 여자의 어깨를 밀쳤어요, 여자는 바람에 날리듯 옆으로 쓰러졌어요, 섬 여자들이 여자를 둘러싸고 머리칼을 휘감아 잡아당겼어요, 여자가 결심한 듯 일어나 섬 여자들을 뿌리치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어요, 섬 여자들은 팔짱을 낀 채 여자를 바라보았어요, 휘청거리던 여자는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구덩이에 빠지듯 바다에 휙 삼켜졌어요, 여자의 가늘고 하얀 팔이 파닥거리며 파도 위 공기를 움켜잡고 할퀴어도 섬 여자들은 팔짱을 풀지 않은 채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듯 서 있었어요, 일렁거리던 바다 표면이 잠잠해질 때까지 여자들의 단단한 등은 움직이지 않았어요.

- 「소요」(148-149쪽) 중에서


새엄마를 죽게 한 건, 자신의 남편과 "붙어먹었다"고 오해하던 섬마을 여자들이었다. 처음부터 섬사람들은, 붉은 꽃이 그려진 양산과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소녀의 아버지와 함께 섬마을에 들어온 새엄마를 아니꼬워했다. 새엄마는 소녀와 같은 나이인 자신의 아들 '소요'도 함께 데리고 왔다. 난생처음 살아 보는 섬에서 여자는 늘 혼자였고, 여자가 섬 사내들을 유혹한다는 소문이 돌자 아버지는 여자를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소녀는 여자가 자신의 멍든 팔다리를 드러낸 채 바다를 내려다보며 술을 마시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여자가 섬마을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죽게 되는 그날의 광경까지도.
자,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그 지경까지 되도록 여자의 가족은 여자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 소녀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잊지 않도록 오래 기억해야 하는 그날의 사건에 대해. 「트레일러 소녀」와 「소요」 속 그녀들의 죄의식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과연 누가 그녀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죄를 짊어지게 한 것일까.


재판 날 엄마에게 사기죄뿐만 아니라 간통죄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사는 아빠의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엄마의 죄를 낱낱이 파헤쳤고 까발렸다. 아빠는 간통을 고소한 여자를 찾아가 합의했다. 아빠와 함께 엄마에게 면회를 갔다. 아빠는 엄마에게 아픈 곳이 없는지, 밥은 괜찮은지, 춥지는 않은지, 기다리겠다고, 힘을 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나는 아빠를 먼저 면회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엄마한테 말했다.
"죽어버려."(50쪽)


엄마는 우리가 면회를 갔던 다음날 새벽에 죽었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뽑아 타래를 만들어 목을 친친 감았다고 했다. 나는 내 혀가 뱉어낸 말 때문에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자살한 엄마의 배 속에 12주 정도 되는 태아가 있었다. 엄마는 내 말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었다. 낙태도 불가능한 그곳에서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54-55쪽)

- 「트레일러 소녀」 중에서


"엄마가 어떻게 아빠처럼 속없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했고 결혼까지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젊은 욕망을 채우기 급급해서 서로에게 빠져들다 내가 생겨버렸는지도 몰랐다."(「트레일러 소녀」, 48쪽)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들의 삶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애초부터 자신을 어쩌다 생겨버린 아이라고 여기던 소녀. 소녀가 바라보는 엄마는 무능한 아빠 때문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신이 다니던 필리핀 어학원과 캐나다 어학연수 비용까지 내주던 여자였다. "우리가 쓰고 다니는 돈을 벌기 위해 너무나 바쁜 사람"이었던 엄마는, 어느 날 해외 골프장 건설 투자 사기를 당했고, 그 과정에서 간통죄까지 걸리게 되며 감옥에 가게 된다.
소녀의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소녀의 혀가 뱉어낸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배 속에 덜컥 생겨버린 태아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묻기 이전에, 그녀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의문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묻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 지경까지 되도록 그녀의 가족이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 에 대해.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성장담이 기존의 것과는 조금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는 건 이것 때문이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 '여성이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가족이 여성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인가'라고 묻는 일. 이 의문을 가지고 작가가 그려내는 여성 인물들을 바라보아야지만이 그녀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이기에 겪는 어린 시절의 잔인한 통과의례이자 트라우마, 집착, 결핍, 죽음, 죄의식을 말이다. 같은 고난이나 시련이라 할지라도 왜 남성이 아닌 여성이 겪는 고통은 결코 회복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고통 이후 왜 여성의 삶은 이전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나아지지도 않고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 것일까. 이는 여성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 세상과 관련한 게 아닐까. 제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질문에, 작가는 "소녀들"이라고 대답한 적 있다. 왜냐하면 소녀들이야말로 "너무 많은 폭력과 비인간적인 생활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그녀들 주변에는 "끔찍한 현실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박정윤이 그려내는 소녀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전영규

작가소개 / 전영규

문학평론가.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등단.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


《문장웹진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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