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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은 나와 춤을 추지 내 치마를 들추지 않지

  • 작성일 2022-12-01
  • 조회수 1,424

[비평]



언니들은 나와 춤을 추지 내 치마를 들추지 않지



성현아




“춤이 먼저 여자 해방의 길로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1949년, 여성에 관한 인식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시기에 정지용이 남긴 문장이다. 이 문장이 쓰인 그의 글 「사교춤과 훈장」은 2020년대인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성 인식이 뒤떨어지는 글이기는 하나, 법적으로든 관습적으로든 여성 인권이 지금보다 더 보장되지 않았던 시기의 글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있다.


실제로 훈장을 차기 좋아하는 여자를본 적이 없었으니 그것은 훈장적본능이 없어서 그런 것이아니라 애초에 체관적 단념으로 그러했던 것일가 한다.
그러나 춤추기 좋아하는 여자는 훈장을 욕망하는 여자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천문학적 숫자이상으로 많은 것이다. 여학교에서 무슨 발표회니 친목회니 하며 훗닥하면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춘다. (중략) 그후로 두고 두고 보아하니 내가 이햇성이 늦었던 것이 알어졌다.
워낙 남자 본위로 구성된 사회에서 본능과 충동과 욕구의 차이가 남녀가 그렇게 있을게아니고 보니 여자도 남자와 같이 자유 분방하기가 원인 것이다.
그런데 일례를 훈장으로 들어 말할지라도 여자도 훈장을 찰 수 있는 국가 사회적 인민 영웅의 권리가 아조 거세되고 단념한 남어지에 웅혼한 정치본능이 현란한 감각 본능으로 변질하여 그리하여 부지중 춤추기를 좋아하는 일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이 나도록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이 이 순간이상 없는 것이다.
담배를 먹여 꼴불견일 것이요 술을 먹여 남자 이상 해괴망측하게 미칠 것이라. 춤에 한하여 제 멋대로 해방할만한 것이다.

-정지용, 「사교춤과 훈장」(《신여원》 창간호, 1949.3) 부분


정지용은 “훈장을 차기 좋아하는 여자”가 드물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성에게 훈장을 수여하지 않기도 하지만, 여성들 또한 훈장을 욕망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춤추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많기에, 그는 의아해한다. 남들 앞에 자신을 뽐낼 수 있는 ‘훈장 차기’에는 무관심한 여성들이 나서서 춤추는 일에는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들이 왜 훈장이 아닌 ‘춤추기’를 욕망하는지에 관해 고찰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낸다. 여성들에게는 사회적 영웅이 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에 “정치본능”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춤추기’라는 “감각 본능”으로 그것이 표출된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가 사용하는 “변질”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해 춤을 정치와 견주어 격하시키고 그것을 감각의 영역으로만 국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도 춤추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여전히 전제되어 있기는 하다. 다만,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해본다면, 이 해석은 비교적 진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춤과 여성의 역사를 잠깐이라도 들여다보고자 글의 시작을 정지용의 글로 삼았다.
1949년, 한국의 여성들은 흥겹게 술에 취하거나 자유로이 담배를 피우기 어려웠으며, 사회의 장에서도 배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넘치는 에너지를 마음껏 표출할 창구도 없었으며, 국가의 일에 참여하는 데도 많은 제약이 따랐기에 여성들은 춤을 통해 잠시나마 해방된 기분을 누렸던 것 같다. 춤이 여성들에게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한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춤과 여성의 독특한 관계성은 여성 댄서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던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연상시킨다. 이 프로그램은 2021년 8월 24일부터 10월 26일까지 엠넷에서 방영한 여자 댄스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연일 화제를 일으키며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다. 당시 활약했던 여성 댄서들이 여전히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화제성이 현재까지도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줄여서 <스우파>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범박하게는 여성 출연자들의 ‘정정당당한 경쟁’과 ‘따뜻한 연대’를 주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주최 측에서는 서로를 물어뜯는, 자극적인 경쟁 구도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승한이 지적한 대로, <스우파> 방영 초기에는 “출연자들이 기 싸움을 하며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듯한”1) 장면들이 주로 편집되어 전파를 탔다. 방송에서는 서로에게 적대적인 듯 보이던 여성 댄서들이 사적인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이 개인 SNS를 살펴 알아내야만 했다. 신경전을 벌이기보다 서로 돕고 존중하여 좋은 무대를 만들려는 출연자들의 태도 또한 그들이 자발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방송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스우파>에 출연한 여성 댄서들이 보여준 것은 기 싸움, 질투,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성차별적 표현)의 구도가 아니라 전문적인 댄스 기술과 개성이 돋보이는 다채로운 스타일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개성과 전문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춤에 있어서는 지고 싶지 않다는 욕구 또한 그대로 표출한다. 여성이 추는 춤은 자주 대상화되어 왔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댄서들은 춤을 이성을 향한 유혹이나 성 상품화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치부하지 않고 춤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춤을 좋아하고, 더 잘 추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자기 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여성들에게 춤은 자신의 전문성이자 정체성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춤을 사랑하는 경쟁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잊지 않았다. “멋지다 우리 언니”,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등의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스우파>의 댄서들은 여성들의 춤, 여성 간의 경쟁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나아가 이들이 춤을 통해 전달한 평등, 여성 해방 등의 주제 의식은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라치카는 하이힐을 신고 춤추는 가수 ‘조권’, 댄스 크루 ‘커밍아웃’과 함께 꾸린 무대를 선보였으며, 팀의 리더인 가비는 이 무대가 “세상의 모든 별종이라고 불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만든 퍼포먼스”임을 분명히 했다. 프라우드먼은 질 스콧의 노래 ‘Womanifesto(여성 선언문)’를 무대 곡으로 선정했다. 이들은 성별 전형성을 없앤 의상을 입고 “나는 엉덩이가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뇌와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강한 여성”이라는 가사에 맞춰 춤췄다.2) 출연자들은 자발적으로 댄서들 간의 연대를 더 많은 이들과의 연대로 확장했다. 이들의 춤은 1940년대 여성들이 그랬듯, 여성 해방으로의 몸짓이 되었고, 나아가 더 많은 이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독려하는 기능을 했다.
아쉽게도, <스우파>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 8월부터 방송 중인 <스트릿 맨 파이터(이하 ‘스맨파’)>는 방영도 전에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8월 23일에 열린 <스맨파> 제작발표회에서 권 CP는 “여자 댄서들과 남자 댄서들의 춤은 확실히 다르다”며, “여자 댄서들의 서바이벌은 질투,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들은 의리, 자존심이 많이 보였다”3) 고 전했다. 그의 발언은, 여성 댄서들이 보여준 전문성과 열정, 연대 의식을 통해 여성과 여성이 추는 춤에 관한 인식이 이전에 비해 약간 개선되기는 했으나 잔존하는 차별적 시선에 의해 여전히 왜곡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 해방의 길은 다소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수많은 ‘언니들’의 존재 덕분일 테다. 넓은 의미에서 ‘언니’는 여자들 사이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따라서 ‘언니’는 여성들이 태어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여성이라면, 누구든 누군가의 언니가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들은 여성 해방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이들은 다음 세대의 여성들, 동생이자 후배들, 혹은 딸들, 손녀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기를, 조금 덜 위험하기를 바라며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보다 먼저 투쟁하던 언니들이 있다. 이들은 부당하다 느끼면서도 미처 지각하지 못했던 미묘한 불평등에 관해 공부하고 그 감각을 언어로 구체화하여, 다른 여성들에게 알려주려 한다. <스우파>의 멋진 언니들이 그랬듯이.
이는 Mnet Asian Music Awards (일명 ‘MAMA’) 최초의 여성 호스트가 된 가수 이효리가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이자 후배 댄서들에게 전하는 말에서도 살필 수 있다. 이효리는 2021 MAMA에서 <스우파>의 리더들과 합동 무대를 꾸렸는데, 이때 부른 노래 의 노랫말은 아래와 같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야 날개옷을 다시 찾아버렸어
다시 High high 하늘 위로 아름다운 다운 다운 밤이야
Hey girl that that that that girl 아님 Bad bad bad bad girl
뭐라 불러도 좋아 어차피 너는 나를 잘 몰라
인형 같대 마네킹 같대 Oh my god, Who told you that?
그건 절대 나는 반대 우린 살아 움직여
Everybody do the dance Do do do the dance
Everybody body body body do the dance
이렇게도 할 수 있잖아 좀 더 솔직해도 괜찮아
(중략) 이건 우리만의 무대야 다시 Spotlight 나를 감싸네
절대로 절대로 끝이 없네 Round and round
(중략) 글쎄 그딴 거 난 잘 모르겠고 그냥 우리가 즐거우면 된 거야
글쎄 다른 사람은 잘 모르겠고 그냥 내가 제일 멋있으면 된거야 Uh
Just follow me Just follow me 내가 뭐랬니 Can't nobody bother me
틀리든 맞든 잘하든 말든 내 맘대로 Let's move

-이효리, 〈Do the dance〉(2021.12.11) 가사 부분


1) 이승한, 〈<골때녀>와 <스우파>, 경쟁하되 연대하고 싶은 시대의 욕망〉, 《황해문화》 2021 겨울호, 309쪽.
2) “여성들의 리더십, 열정, 의리… 떠나는 스우파가 진짜로 남긴 것들”, 〈경향신문〉, 2021.11.4.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111041015001
3) “"첫 방송부터 불매?"… ‘스맨파’ CP, 무슨 발언했길래”, 〈MoneyS〉, 2022.8.24. https://moneys.mt.co.kr/news/mwView.php?no=2022082409071935541



〈Do the dance〉는 원곡자인 이효리와 이 곡의 작곡가 심은지가 공동 작사했다. 가사를 살펴보면, 우선 “날개옷을 다시 찾아버렸어”라는 가사가 눈에 들어온다. ‘무대에서 날아다니다’라는 표현은 완벽한 무대를 선보인 것에 대한 찬사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오랜만에 신곡을 발표하는 이효리가 그동안 서지 않았던 무대에 올라 자신의 재능을 뽐내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 다음 구절이 “다시 High high 하늘 위로”인 점을 고려하면, 이 ‘날개옷’은 누구나 내용을 아는 설화 <선녀와 나무꾼> 속 ‘선녀의 날개옷’을 상기시킨다. 설화의 내용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살피면 이러하다. 천상에 살고 있던 선녀는 아무런 이유도 잘못도 없이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강탈당한다. 그 날개옷을 빌미로 나무꾼의 아내가 되기를 강요받으며 아이까지 낳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날개옷을 되찾아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돌아가는 선녀와 연결 지어보면, 이 가사는 가부장제의 포섭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설화 속 ‘선녀’는 아름다운 심성과 외모를 소유한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남성들의 욕망이 투영된 성녀 표상으로 볼 수 있다. 이 노래는 그 표상을 경유하되 그것이 가진 선입견에서 벗어나 이에 입체적인 시각을 부여하고자 한다. “Hey girl that that that that girl”이라며 다른 이들이 자기 자신을 부르는 명칭을 제시한 뒤, “아님 Bad bad bad bad girl”이라고 또 다른 호칭을 제시한다. “뭐라 불러도 좋”다고 말함으로써, 어떻게 불리든 개의치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bad girl(나쁜 여자)”로 불리었던 경험도 함께 이야기한다.
이는 여성을 성녀 아니면 창녀로 구분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분법적 시선을 상기시킨다. 하늘에서 온 성스러운 존재로 찬양받던 ‘선녀’는 남편을 떠나자 지아비를 저버린 나쁜 부인으로 그려진다. 이는 욕망의 대상이자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존재일 때는 칭송받으나 그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좇는 주체가 될 때는 언제고 비난받게 되는 여성들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제나 비난받을 존재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여성은 이미 죄의 성질(죄가 될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4) “뭐라 불러도 좋아 어차피 너는 나를 잘 몰라”라는 부분에 이르러서 화자는 그러한 비난과 낙인에 개의치 않는 주체로 전환된다. 주체로부터 호명 당하는 대상에서 그러한 ‘부름’의 행위를 허용하는 주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어차피 무엇으로 부르든 그 명칭이 ‘나’를 결코 담아낼 수 없다는 선언은 명명의 허위까지 지적해낸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노래가 대상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겠다는, 한 사람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이 저항의 움직임에 다른 여성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인형 같대 마네킹 같대 Oh my god, Who told you that? 그건 절대 나는 반대 우린 살아 움직여”를 보면, 가사가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따라붙는 “인형”, “마네킹” 등의 수식어에 대해 재사유하는데, 이는 혼자만의 성찰이 아닌 여성들 간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말을 들은 동생에게 이를 먼저 사유해 본 여성이자 언니로서, ‘누가 그런 황당하고 무례한 말을 했느냐’라고 묻고, 그런 말에 “반대”하며, “우린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고 정정해준다. 찬양을 가장하여 이상적인 여성상을 재생산하던 표현은 이제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이후 여성들이 마네킹처럼 정적이거나 인형처럼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명백히 살아 움직이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춤이 기능한다. 멈추지 않는 춤을 추자고, 모두가 해방의 춤을 출 수 있다고 제안하는 이 노래는 1세대 아이돌이자 선배 댄서인 이효리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다. 그는 여성들이 모든 평가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독려한다. 노래의 랩 파트에는 “그냥 우리가 즐거우면 된”다는, <스우파> 방영 당시 무대를 마친 ‘가비’가 했던 말이 인용된다. 노래는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 멋지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무대라면, “좀 더 솔직”하게,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준다. “틀리든 맞든 잘하든 말든 내 맘대로” 움직여보자고 제안하며, 누구도 우릴 방해할 수 없다고 하는 멋진 언니들은, 그저 따라오라고(“Just follow me”) 손짓하며 우리를 이끈다.
아주 작은 파이를 두고 싸우도록 내몰린 여성들은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더 큰 파이를 욕망해도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끼리의 다툼이 아닌, 서로 먼저 배운 것을 나누려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들은 마주 보며 해방의 춤을 춘다. 이들은 어떤 방향으로 춤을 추어 해방되어야 할지를 함께 도모하며, 서로를 마주 본다.
이러한 여성들의 마주 봄을 좀 더 세밀하게 살피고 의미화하는 희음의 시를 보자.


4) 이에 관해서는 필자의 글, 「죄성罪性을 극복하는 비인간의 ‘나’들-포스트휴먼 시대 시와 젠더」(성현아외 5인, 「아직 오지 않은 시」, 소명출판, 2022)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말들이 우글거리는 입속
말들이 자라났다 사라지는 입속
쉬이 죽었다가도
이내 다시 태어나는 말들의 붉은


입속은 그 스스로를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축축한 속살로 스스로를 두르고


태어나라 꺼져라 다시 일어나라
말하지 않고 모르는 얼굴로
얼굴 없는 그 명징한 얼굴로


뜨거워졌다가 식었다가
밤과 낮과 시침 사이와
오후의 모든 틈들에 있다
저곳과 여기와 아무데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듯
폭 넓은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입속 깊이까지 줄 서 있는
말들을 향해 인사 건네는


도처의 치마 안쪽에서
지치지 않고
마중 나오는 눈빛들


한 줌의 낭비도 없이
공중에서 만나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희음,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5) 전문


하고 싶은 말들은 “입속”을 “우글거리”며 “자라”나지만, 적절한 기표를 얻지 못하고 곧바로 “사라”진다. 이때 여성의 입가를 맴도는 “말들”은 규범의 언어로는 결코 발화될 수 없는 “틈”의 말일 것이다. 어떤 것으로도 제대로 규정될 수 없는 잉여의 감각이기에 “쉬이 죽”어버리지만, 말이 되지 못할 미묘한 감각은 토로할 수 없는 기이한 감정을 유발하므로 “이내 다시 태어”난다. 그러므로 이 말들이 지닌 ‘얼굴’이자 그 말들을 품고 있는 여성들의 “얼굴”은 “없”지만 “명징”하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발달한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소수자들의 감정과 감각은 없는 것으로 치부되지만, 그 체험만큼은 분명히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 못할 “말들”을 품은 이들은 “치마들”로 치환된다. 치마가 관습적으로 여성의 의복으로 인식된다는 점과 그 불편함에 대한 고려 없이, 일터에서 여성들에게 입도록 강요되기도 했던 옷차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는 ‘차별받는 여성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치마”는 “치마와 치마와 치마와 치마”라며 ‘와’로 연결되어 시의 한 행을 이룸으로써 여성들이 나란히 서서 서로의 손을 맞잡은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들은 들추는 행위로 서로를 모욕주지 않는다. 그저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고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할 뿐이다.
“치마들”, 즉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의 “입속 깊이까지 줄 서 있는”, 그러나 좀처럼 형체를 얻지 못하는 “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다. 그것이 말로 표현되지 않고 쉽사리 사라질 때도, “지치지 않고” “마중” 나간다. 이들이 채 말해지지 못하는 경험과 감정, 감각을 듣기 위해 동원하는 것은 “눈빛”이다. “눈빛”은 시각으로만 정의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선다. 이는 어떤 기색이나 기운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서로 건네주는 “눈빛”은, 토로할 수 없기에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면서도, 그것이 터져 나올 수 있도록 끈질기게 시선을 보내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토록 따스한 여성들의 연대는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는 바꿔 말하면, 무엇까지 될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말이 된다. 가늠해볼 수 있는 한계가 없다는 뜻이다. 말이 되지 못 할 말들은 오늘도 태어났다 쉬이 죽는다. 그럼에도 그 소멸을 지켜봐 주고 다시 살아나기를 응원해주는 언니들이 있기에 그것은 사라지더라도 서로의 마음에 기록된다. 언어가 없는 이들은 애정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치마를 들추지 않고 함께 춤을 춘다. 이들은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만나 새로운 무엇이 되려 한다. 해방으로의 몸짓은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우리에게 있어주었던 언니들이 그랬듯, 우리도 누군가의 언니가 되어줄 수 있다. 말이 되려는 몸짓을 오래도록 들여다봐주며 그것이 죽어갈 때도,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그런 언니 말이다. 언니들이 나와 함께 춤을 춰주었던 것처럼, 나 또한 언니가 되어 춤추는 법을 알려줄 차례다.


* 이 글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비평활동지원을 받아 집필하였습니다.














성현아
작가소개 / 성현아

2021년 《경향신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2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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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오염, 오류, 오독

오염, 오류, 오독 - 소설이 수행하는 ‘다시’ 황유지 마들렌을 먹으며 과자 부스러기와 차 한 모금이 어우러진 달콤한 환기 속에서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일은 마르셀에게 행복을 준다. 그러나 발벡의 호텔방에서 신발을 벗으려다 문득, 할머니가 신을 벗겨 주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은 그에게 행복감을 주지 않는다. 죽은 할머니를 떠올리는 일, 그것은 “고통스러운 소멸”을 확인시킬 뿐이다.1)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이 일화는 과거를 부르는 일이 각기 다른 정서를 환기함에 대한 예시로 내밀어지며 ‘기억’에 착종되는 다양한 감정이 주체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 넌지시 묻는다. 소멸의 확인도 그렇지만 미완, 불완전, 불만족인 채로 내버려둔 사건에 대한 기억의 소환 역시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인데, 그건 엄연히 그 일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라 모종의 감정적 자원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 이런 ‘다시’는 레트로로 나타난다. Retrospect, ‘추억’에 뿌리를 둔 이 말은 패션, 음악, 영상부터 먹거리, 금융상품에 이르기까지 그 반경을 확대하며 과거로 우리의 기억을 끌고 간다. 과거의 소환은 이 사회에 대한 일종의 환각제이자 자본주의라는 무한한 기계적 힘에 대한 제동, 그 중단의 본능적 발현이다. 이런 레트로는 과거에 대한 향수, 노스탤지어의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고대인들에게 노스탤지어란 ‘되돌아가는 일(nostos)’을 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아픔(algos)’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레트로는 돌아갈 수 없는(가본 적도 없는) 시절을 향한 자본주의적 환각제이다. 프루스트의 위대한 주제가 사물들을 처음 경험할 때의 무능력이라 파악하는 프레드릭 제임슨은 진정한 경험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다른 것을 의도하는 동안, ‘눈가’를 통해 온다면서 그 가능성을 글쓰기에서 찾는다. 기어이 돈을 주고라도 사겠다는 환각성 추억과는 달리 기억을 통한 글쓰기는 상실한 것을 복원하려는 고도의 정신 작업이랄 수 있다. At the corner of eye, 거기가 바로 진정한 경험이 되돌아오는 자리로 가장 의도적인 두 번째 경험, 글쓰기는 그 형식이 된다. 2) 글쓰기는 행해짐과 동시에 복수의 행위자를 탄생시킨다. 쓰는 자와 읽는 자,3) 이는 시차(時差)와 함께 탄생하며 텍스트가 현실과 맞닿은(혹은 결별한) 그 부위에 필연적으로 틈을 만든다. 대체로 모든 문제는 이 ‘틈’에서 태어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틈은 이미 분리, 분절된 것으로 존재하면서 거기에 무엇을 메우든 결코 원본의 형태를 완벽히 구현할 수 없다. 원본처럼 복원한 것조차 복사본일 따름이라 틈은 그 자체 오류가 되는 것이다(가령 원본이 틀린 것이라 할 때도 제대로 수정된 본은 오류가 된다. 틀린 원본에 대해 기어이 맞추어진 진실

  • 관리자
  • 2024-07-01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어른들의 벤다이어그램 이소 1. 스무 살을 훌쩍 넘어 성인이 되어도 자신을 어른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뉴스를 보면 언제나 피해자의 억울함에 몰입하고, 많은 경우 나를 포함하지 않은 채 ‘어른들’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 2014년 4월 16일, 이 날 나는 처음으로 어른의 자리에서 사건을 경험했다. 아이의 자리가 아닌 해운회사의 직원이나 공무원이나 인솔 교사의 자리에 서 있었다. 항해사나 해경보다 교사인 나를 떠올리기가 더 쉬웠다. 누구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기억이 있으니까. 나는 전문가를 깊이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그 배에 탔다면 안내 방송을 충실히 따르며 어른들과 시스템을 믿으라고 아이들을 다독였으리라는 걸 알았다. 누가 보아도 나는 완벽히 어른이었다. 굳이 괴로웠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그때는 모두가 괴로웠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다음해 문학을 전공하러 대학원에 들어갔다. 누군가 공부라는 게 어떤 실천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런 답변도 떠올릴 수 없다. 나부터가 그런 희망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전처럼 살 수 없을 뿐이었다. 나는 어른이었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습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 소화할 수 없는 사건이었으며, 내게는 더 정확한 언어가 필요했다. 딱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 2. 지금도 교사인 나를 상상해 본다. 항해사나 해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교사라는 직업과 위치가 내게 어른이란 무엇인지 사고실험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과 달리 미성년인 학생들을 상대하는 교사는 흔히 이중적인 이미지로 재현된다. 전교조와 교총을 교대로 인터뷰하는 기사의 관례처럼, 전통을 수호하는 보수적인 교사와 변화를 추동하는 진보적인 교사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그려지는 건 흔한 일이다. 제도가 부여한 의무와 규범을 학생들에게 어디까지 얼마만큼 요구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한 명의 교사를 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이 경우에도 그의 심리적 갈등은 그의 교육방식에 딴지를 걸 더 완고한 교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전위적인 존재에 도달할 순 없지만, 마땅히 후위의 역할은 초과해야 하는 사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교사만 그럴 리는 없다. 모든 직업은 사회가 요구하는 허용범위 안에서 가까스로 변주를 시도하고, 모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며 유사한 딜레마에 빠진다. 교사는 자신의 의무를 익히 아는 어른의 상징이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점점 학생보다 교사에게 더 쉽게 이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문제는 오래되고 흔한 방식의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재현이 더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데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시대가 변한 줄 모르는 늙은 교사들은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없다. 보수적인 교사와 진보적인 교사의 대립은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가 갈등을 통해 사회를 혁신하는 재생산 메커니즘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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