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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습적인 세계를 넘어서

  • 작성일 2006-01-26
  • 조회수 3,800


 

대담 이제하(소설가)

진행?정리 윤성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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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카페 … 마리안느

문학 청년 시절

다양한 장르에 대한 열정

소설 속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다양하고 변화하는 것이 예술

후배 작가들에게 들려주는 소설 이야기




근황, 카페 … 마리안느


윤성희 : 안녕하세요. 사이버 문학광장 <작가와 작가> 시간입니다. 오늘은 이제하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제하 : 대학로에 있는 카페에 나오는 게 일과지요.「마리안느」라는 카페입니다. 가수인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사는 집 근처인 평창동에 있었는데 작년 봄에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며 하루를 보냅니다. 틈틈이 홈페이지에 글을 쓰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올려놓기도 합니다.

윤성희 : 카페를 개업하던 날이 생각나네요. 선생님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어떤 이유로 카페를 차리게 되었는지요?

이제하 : 사람들이 왜 카페를 하냐고 물어보면 농담처럼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노후대책이라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노후가 불안하잖아요. 연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원고료  만으로는 살아가기에 벅차니까요. 그리고 73년 초에 이대 앞에서 까치라는 카페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 카페를 했던 경험이 있고 해서 다시 카페를 열게 되었나봅니다.

윤성희 : 카페에서 영화 상영도 하고 음악회도 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하 :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는 자주 영화 상영을 했습니다. 주로 극장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영화들을 상영했는데, 찾아와주는 관객이 많지 않다보니까 지금은 거의 상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에 일본의 독립영화를 하는 청소년들이 찾아와 그 친구들의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습니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영화를 상영하고 싶습니다.


문학 청년 시절


윤성희 : 선생님의 약력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주로 외지로만 떠돌던 아버지와의 사이에 개숫물통 사건이 일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증세에 걸리다.” ‘개숫물통 사건’이란 무엇인지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선생님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이제하 : 아버지는 늘 외지를 떠돌아다니셨는데 어쩌다 한번 집에 오시면 낯설어서 곁에 가질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오시면 늘 골목으로 나가 놀 궁리만 했지요. 네 살 때로 기억합니다. 울음을 그치지 않던 저를 아버지가 설거지통에 집어넣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싫어하고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반목은 중?고등학교 때까지 계속되었지요. 그러다가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문학으로 옮겨가고, 정치현실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성년이 되어서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정치현실을 보다보니까 비로소 아버지는 약한 분이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재들이 자연스럽게 제 소설에 녹아들게 되었구요.

윤성희 : 중?고등학교 시절『학원』이라는 잡지에 많은 글을 투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팬레터도 많이 받으셨다는데요.

이제하 : 『학원』은 학생 잡지였지만 10만부 이상 나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학생들의 갈증을 풀어줄 매체들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학생들의 감수성이 잡지 하나로 표출되던 시기였죠. 학원 출신의 문인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황동규, 마종기, 김화영 등. 대구 피난 시절이었는데 종종 글을 투고하곤 했습니다. 꽤 많은 팬레터를 받기도 했지요.

윤성희 : 그렇게 많은 청소년들이 문학을 꿈꾸었다니… 요즘 시대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이제하 : 지방이라 그런지 더욱 잡지를 읽는 일에 열렬했습니다. 요즘에는 매스미디어가 다양해지니까 사람들의 갈증이나 농도도 희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윤성희 : 홍익대학교 다니시던 시절이 궁금합니다. 학점이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내셨다는 걸 듣고 웃었던 적이 있는데요.

이제하 : 2학년 끝나고 나서야 학점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저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될 학교에 갈 자신도 없었고요. 오직 문학에만 관심이 있었죠. 그런데 김환기 선생님께서 홍익대학교에서 학장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홍익대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조각과 쪽이 지원자가 적어서 조각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군대에 다녀와서는 서양학과로 과를 옮겼습니다.

윤성희 :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각과도 4학년 1학기까지 다니셨는데, 졸업장은 하나도 없으십니다. 

이제하 : 사회에 대한 인식이 그만큼 어눌했습니다. 저는 문학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에는 졸업을 하면 평범하게 살 것만 같았고, 그러면 안온한 소시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졸업을 못한 것이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역시 고생은 문학의 좋은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윤성희 : 솔직히 저라면 기를 쓰고라도 졸업을 했을 겁니다. 그만두는 게 다니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약간 겁쟁이 이기도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 작가들은 스스로 자기 길을 잘 찾아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제하 : 지금의 사회는 그런 현실을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문학과 연애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그런 열정이 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게 좀 아쉽습니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열정


윤성희 :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시는 것 같습니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이십니다. 게다가 음반을 내신 적도 있는 가수이기도 하시고요.

이제하 : 재주가 많은 게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즉,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70년대 말 유류파동이 나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적이 있었어요. 그림이라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될 것 같아서 첫 전람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수라고 부르기에는 좀 쑥스럽습니다. 음반은 아는 분들이 환갑 기념으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동물원의 유준열 씨 스튜디오에서 공짜로 녹음을 했고요. 제가 워낙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니까 그냥 재미삼아 만든 것이지요.

윤성희 : 혹시 영화를 만들고 싶으신 생각은 없으세요? 영화에 대한 열정도 남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하 : 한때는 비디오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게 소문이 났는지 영화 평론을 써달라는 청탁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다보니 영화 평론에 관한 책도 내게 되었고…… 실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긴 합니다. 디지털로 영화를 만들면 그다지 경비가 많이 들 것 같지는 않거든요. 저렴하게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배급을 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꿈일 뿐입니다.

윤성희 : 2001년에 소설집 『독충』을 출간하신 이후로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계십니다. 무슨 다른 이유가 있으신 건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출간계획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이제하 : 저는 원래 과작인 작가입니다. 거기에 카페를 하면서 다른 일이 신경을 쓰다 보니 문학에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책이 잘 안 팔리다보니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찾아오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위축이 되고요. 문학동네에 제 소설전집이 12권으로 기획되어 있는데 6권만 나온 상태입니다. 쓰다가 중단했던 작품들이나 중편을 장편으로 개작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어서 소설전집이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금년부터는 다시 의욕적으로 소설을 써서 차근차근 소설전집을 채워나갈 생각입니다.

윤성희 :「유자약전」을 처음 발표하신 게 1969년입니다. 이 작품은 『유자』라는 장편으로 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까지 이 작품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계신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이제하 : 이 소설은 이미지즘적인 소설입니다. 미술을 공부했기 때문에, 제 문학은 미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초현실적이고 이미지적인 서술을 시도해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시도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고, 저 또한 애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윤성희 : 「유자약전」도 장편으로 개작을 하시는 것처럼 「밤의 창변」도 장편으로 개작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제하 : 「밤의 창변」은 중산층의 죄의식에 관한 소설입니다. 70년과 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죄의식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처음 발표를 했을 적에는 단편이었는데,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성희 : 선생님의 작품은 흔히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립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명명을 하신 것인지요?

이제하 : 실은 미술에서 보면 그것은 그다지 이질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문학에서는 그렇게 쓰는 작가가 없었지요. 제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니까, 비평가들이 어떻게 현실과 환상이 공존할 수 있느냐고 반박을 하곤 했습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말이 난해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분석하지 말고 그냥 제 작품을 읽어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성희 : 의례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영향을 받은 화가나 작가가 있다면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제하 : 화가로는 뭉크, 베이컨 그리고 델보를 좋아합니다. 뭉크의 그림을 보면, 얼굴의 굴곡이 감정의 흐름에 따라 결이 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렁이는 것입니다. 베이컨의 그림을 보면 무너져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그림 자체가 문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델보라는 화가는 성적인 꿈만을 그리는데 묘한 느낌을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이컨이나 뭉크의 그림을 무서워합니다만, 그림 속에서 저항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대결하려는 태도 말입니다. 작가로는 카뮈를 좋아합니다.


다양하고 변화하는 것이 예술


윤성희 : 제가 선생님 소설을 읽다보니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뜻하지 않은 상황에 오토바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중 하나가 오토바이 뒤에 수녀 하나를 태우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라는 문장에서도 그렇고요. 

이제하 : 오토바이는 현대적인 상징물로 염두하고 썼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오토바이가 그다지 흔하지 않았거든요.

윤성희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작품에서도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전차에 받힌 듯한 얼굴” 이라고요. 전, 그 표현이 참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토바이나 전차나 아주 평범한 단어지만 뜻하지 않는 상황에 등장하면서 묘한 느낌을 주거든요.

이제하 : 요즘 문학을 하는 사람은 너무 언어가 제한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채만식, 현진건, 김동인의 작품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말을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성희 : 작가는 언어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하 : 이문구는 충청도 방언으로 충실한 작품을 썼습니다. 그런 작가들이 많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재미는 있지만, 문학공부를 소설을 읽어가며 한 것이 아니라 만화를 보고 영화를 보면서 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만화는 생략과 과장이 많아서 문학적인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퍼즐 풀듯이 스토리를 이어갑니다. 그것은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폐단이 있습니다. 또 영상 세대들은 이미지 위주의 소설을 많이 쓰기도 합니다. 영화적으로 이해가 될지 몰라도, 문학에서는 문학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어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윤성희 : 한국 남성 작가 중에서 선생님만큼 여성을 잘 그려내는 작가도 드물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제하 : 제가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생을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정착을 하지 않고 오직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여자의 이야기들이 그늘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여자에 대한 인식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제대로 여성들 이야기를 써내는 작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90년대 문학은 여성작가들의 공로가 많습니다. 남편의 존재에 대해 말하기 힘든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집 밖으로 나간 여성, 길 위에 서 있는 여성을 그렸습니다. 이제는 길 위에 서 있는 여성을 넘어서야 합니다.

윤성희 : 그렇다면 길 위에 서 있는 여성을 넘어서야 할까요?

이제하 : 최근 은희경의 『비밀과 거짓말』을 읽었는데 저는 굉장히 좋은 변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운영 작가의 글들을 읽어보아도 새로운 가능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성의 눈으로 사회와 세계를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는 남자를 인정하고 아버지를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것이 젊은 작가들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겠죠.

윤성희 : 선생님께서는 모든 작가들이 물을 원할 때 불을 이야기함으로 그 물에의 갈망을 없애주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배 작가들에게 들려주는 소설 이야기


이제하 : 저는 인습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 싫습니다. 글을 쓰려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과 많이 부딪혀서 격렬해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해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활발하게 글을 쓰던 7~80년대에는 다양한 세계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게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물을 원할 때 불을 이야기한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물이 필요하면 모든 작가가 물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직도 한편에는 그런 경직된 사고가 없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윤성희 : 따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마음으로, 후배작가들에게 따뜻한 충고 부탁드립니다.

이제하 : 현실에 안온하게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소설이란 현실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싸워야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패기가 없습니다. 부디 열정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윤성희 :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문장 웹진/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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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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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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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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