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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 작성일 2013-02-01
  • 조회수 1,242

십년감수(十年感秀)_소설

 

 

날개

 

박형서

 

 

 

 


   대머리가 멋진 내 친구 K가 죽었을 때 못되게 생긴 노파가 어린 계집아이를 데리고 영안실에 찾아와 한바탕 곡을 하고는 자신은 O의 정부(情婦)라며 따라서 유족들로부터 마땅히 어른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엄포를 놓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팔을 잡고 이곳은 정부까지도 대접받는 위대한 O의 상가가 아니라 대머리가 멋진 내 친구 K의 상가이며 그는 대머리긴 하지만 이제 갓 서른의 총각이라고 일러주자 노파는 어디 두고 보자는 듯 노려보더니 육개장을 한 그릇 해치운 뒤 슬며시 가버렸다.
   아무튼 그 일과 상관없이 나는 미래를 볼 수 있다. 이제부터 내가 이야기할 미래는 170년 후, 그러니까 제정신인 사람들은 모두 태양계 밖으로 빠져나가고 지구는 방사능과 바퀴벌레와 프리메이슨의 소굴이 된 서기 2175년도다. 인류는 지구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그 실패를 교훈 삼아 맹렬한 속도로 우주를 더럽히는 중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그들의 행태를 볼 수 있지만 그들의 과학을 이해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과학은 언제나 극소수만을 위한 예술인 법이다.
   그들의 삶으로부터 170년 전인 서기 2005년 시월의 지구에서 나는 그들을 보고 있다. 가을이라 하늘은 파랗고 이따금씩 지나가는 바람에는 쥐포 굽는 냄새가 섞여 있다. 지금은 오후 네 시가 조금 안 된 시각이다. 이맘때쯤이면 나는 늘 심심하다.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혹은 고독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심심하다. 심심해서 책상 앞에 앉는다. 눈을 감고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헤아린다. 자꾸 K의 상가에서 본 노파가 튀어나오려 하지만 그녀는 영안실을 잘못 찾아왔을 뿐이다. 아니면 육개장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거나. 간신히 그녀를 몰아내고는 다시 시간을 헤아린다. 그렇게, 나는 170년 후의 미래를 본다. 미래를 본다는 게 이상한가? 뭐가? 그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어느 장소든 어느 시대든 갈 수 있다. 정말로 간절히 원한다면 말이다. 눈을 감고, 팔을 벌리고, 간절히.
   내가 보는 것은 저 먼 우주의 밖, 한 식민지 행성의 기초교육기관에 근무하는 여든네 살 먹은 여자다. 여자가 그렇게까지 나이를 먹어버린 건 내 책임이 아니다. 잠시 눈을 돌려 먼 미래의 가까운 과거를 보기로 하자. 여든네 살 먹은 여자는 당연하게도 84년 전에 태어났다. 여자의 아버지는 잘생긴 독신주의자였는데, 한 인공항성 의회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편안하게 알약을 먹고 누웠다. 그때 발정한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찾아왔고, 몽롱한 얼굴로 죽어가는 그를 강간했다. 죽음의 순간 그의 성기 끝에서 엄청난 숫자의 올챙이가 뿜어져 나왔다. 그중 한 마리가 훗날 여자가 되었다.
   이식용 장기의 눈부신 발달은 유산균 편이 아니었다. 요구르트는 인류에게 불필요한 음료가 되었고, 요구르트 판매에 목숨을 건 여자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 신세로 전락했다. 어머니는 여자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그녀를 멀리 떨어진 쌀알행성의 구호소로 보내버렸다. 그 조그마한 행성 표면의 20퍼센트는 고밀도의 물이었고 짙은 이끼 냄새를 풍겼다. 하늘에는 세 개의 달이 떠 있는데 광물 성분 때문에 각각 붉은색, 더 붉은색, 완전히 시뻘건 색이었다. 구호소의 직원들은 세 개의 달이 전해주는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값싼 7세대 프로작을 밥처럼 먹어댔다. 구호소의 수용자들은 늘 모자라게 배급되는 밥을 약처럼 꼭꼭 씹어 먹었다. 쌀알행성은 그만큼 가난한 곳이었다. 갓김치나 호박엿 같은 특산물 하나 없는 못난 별이었다. 다들 그 별을 우습게 봤다.
   성장하며 여자는 아름다워졌다. XY염색체를 가진 구호소의 직원들은 여자에게 자신들의 올챙이를 묻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여자는 구호소에서 자기 인생을 결정짓고 싶지 않았다. 하찮은 태생, 하찮은 신분이었지만 여자는 자신을 소중히 여겼다. 열여섯이 되면서 교사양성학교에 자원했다. 엄격한 곳이었으나 그나마 밥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휴일도 없이 하루에 열네 시간씩 꼬박 사 년 동안 과학사와 교사의 행동거지를 배웠다. 그러니까 삼백육십오 곱하기 십사는 오 사 이십에 이 올라가고 영 남고 육 사 이십사에 이 올라가고 아까 이랑 더해서 사가 남고 삼 사 십이에 아까 이랑 잘 합쳐서 십사 거기에 더하기 오 일은 오 육 일은 육 삼 일은 삼 이렇게 해서 사천구십, 여기에 다시 사를 곱하면 사 영은 영 구 사 삼십육 삼 올라가고 육 남고 사 영은 영에 아까 올린 삼이 슬며시 내려오고 사 사 십육 해서 만 육천 삼백육십, 어라 어디서 계산이 틀렸지? 어쨌든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동안 교육을 받은 것이다. 여자는 스무 살에 기초교육기관에 교사로 취직했다. 그곳에서 더 이상 호기심을 갖거나 시도할 필요가 없는, 완벽하게 입증된 과학적 사실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87퍼센트 이상 일치하는 한 쌍의 유기체를 조립해내는 건 불가능하다거나 유전학적·생물학적인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거나 등등.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보자기를 두르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빠르게 고등과학 체계로 접근할 수 있었다.
   여자가 스물일곱이 되던 해, 기관으로 스무 살 먹은 남자가 새로 배속되었다. 그는 인류공통어를 전공한 선생이었다. 쌀알행성의 중력과는 걸맞지 않는 거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업 시간에 정규 문장보다는 문장의 감정적 변용을 주로 가르쳤다. 거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사람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동료들은 그 느낌을 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었기에 적잖이 당혹감을 느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거인에게는 당대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여자에게 작동했다. 여자는 거인을 좋아하게 되었다.
   먼저 고백한 쪽은 거인이었다. 거인은 자기 고향별에서 전해 내려오는 괴상한 맹세의 문장을 몇 마디 중얼거린 후 여자를 껴안으려고 팔을 내리뻗었다. 여자는 조금 떨렸지만 물러서지 않고 순순히 자신을 맡겼다. 그렇게, 정확한 과학적 사실만을 가르치는 여자와 명료하지 않은 감정적 언어를 가르치는 거인은 사랑에 빠졌다. 둘은 미성년자에게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깊은 사랑을 나누었는데, 나는 수줍음이 무척 많은 사람이므로 그 낯 뜨거운 장면을 시시콜콜 늘어놓지는 않겠으니 알아서들 상상하시라.
   만민평등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옥수수행성에서 나고 자란 거인은 자기보다 일곱 살이 많은 여자에게 말을 놓았다. 자기보다 백 살이 많은 높으신 분에게도 말을 놓았다. 높으신 분은 평소부터 ‘모두가 똑같은 옥수수 한 알’ 따위의 싸가지 없는 구호나 외치는 옥수수행성 사람들을 싫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인은 진도를 맞추지 못했다는 죄명을 달고 행성 내 다른 교육기관으로 보내졌다. 가장 빠른 교통수단으로도 이동하는 데만 하루가 걸리는 곳이었다. 둘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 거인은 여자를 만나자마자 팔을 내리뻗어 껴안았고, 여자는 속으론 되게 좋으면서도 숨이 막혀 헉헉거리는 시늉을 냈다.
   어느 날 여자는 눈앞에 나타난 거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참 헉헉거리고 나서 어떻게 온 것인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평소대로라면 둘이 만날 수 없는 날이었다.
   아니, 하고 거인은 대답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네가 보고 싶었어. 꼬마들을 가르치면서도 널 생각했어. 일이 끝나 책상에 앉았지. 눈을 감고 팔을 벌린 채, 네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몸이 서서히 떠올랐어. 그렇게 하늘을 날아 나는 네게 온 거야.
   말을 마친 거인은 다시 여자를 껴안았다. 못마땅한 건 아니지만, 거인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할 때면 여자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심지어는 이십여 년 전으로 날아가 구호소에 있던 어린 시절의 여자를 만나고 왔다고 한 적도 있었다. 겁먹은 듯한 얼굴은 파랬고 몹시 야위었다고, 그때 거인은 여자를 껴안으며 슬픈 목소리로 속삭였었다. 당신은 참 모르겠어, 하고 여자는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면 거인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는 것이었다. 이상해? 뭐가?
   그들의 사랑은 만 시간가량 지속되었다. 만 시간 후에 거인이 죽었다. 그의 죽음은 확인되지 못했고, 높은 확률로 추정되었다. 왜냐하면 쌀알행성의 쌀눈지역에 있는 심연에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에 학생들과 함께 소풍을 갔다. 그중 하나가 위험지역에서 까불다 넘어졌는데, 재빨리 달려가 도와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구하지 못했다. 문제를 일으킨 장난꾸러기는 즉각 관리요원에게 처형당했고 자전거를 탈 만큼 고도로 훈련받은 원숭이 구조대가 출동했다. 거인이 가라앉은 곳은 심연의 바닥이었다. 그곳의 수분은 밀도가 너무 높아 생명체가 들어갈 수 없었다. 물에 잠기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일제히 작동을 멈추면서 즉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원숭이 구조대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갔다.
   이틀 후 여자가 도착했다. 여자는 울지 않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거인이 빠졌다는 곳으로 다가가 물을 만져보았다. 밀도 높은 물의 피부가 손끝에서 춤을 추었다. 바람은 없고 끝내주게 붉은 달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여자는 물의 피부를 힘껏 들어올려 보았다.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여자가 슬픔에 잠긴 것이라 생각했다. 사고지역 부근의 대기는 음파 손실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일단 발생한 소리는 거의 사라지지 않고 이틀 간격으로 심연을 한 바퀴 돌아 진원지로 되돌아왔기 때문에, 도떼기시장이 되지 않도록 지역의회에서 일주일마다 대칭음파를 쏘아 깨끗이 상쇄시키곤 했다. 이제 여자는 가만히 연못의 가장자리에 앉아 이틀 전, 거인이 물에 빠지던 순간의 소리를 들었다. 장난꾸러기들의 끊임없는 재잘거림, 쉴 새 없이 주의를 주는 주임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사이로 갑자기 왁자지껄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붉은 달빛 아래에서 그녀가 들은 건 아이가 울먹이며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물의 피부가 들어올려지는 소리, 다시 물의 피부가 짓눌러지면서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 깊이깊이 삼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건 그저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거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느닷없이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날씨의 신이 붉은 달빛 탓에 살짝 돌아버린 것이다. 안개에 가려진 여자는 길고 긴 불행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했다.
   거주지로 돌아온 여자는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만약 거인이 거기 있다면, 밖으로 꺼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럴 힘을 가진 유일한 존재는 의회였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의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독립된 전력회사도, 지하철공사도, 방송국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법정이라는 장소도 판사라는 직업도 사라졌는데, 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류가 이미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누가 잘못했으며 어떤 보상을 해야 하는지는 의회에 보관된 엄청난 분량의 디지털 판례 정보를 열람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건 이 소설과 관련이 없고, 어쨌든 여자는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누구나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여자는 교사, 즉 의회 소속기관의 직원이었다. 두 시간 후에 여자는 거절의 통지를 받았다. 여자는 납득했다. 거인을 꺼내는 건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다. 내가 아까 말했다시피 심연의 엄청난 밀도 때문이다. 여자는 그래도 울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는 울지 않고 오십 년을 지냈다.
   그동안 인간들이 갈 수 있는 세계는 넓어졌고 비용은 더 싸졌다. 여자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씻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돈이었다. 여자에게는 돈을 모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구호소에 있던 때처럼 홀쭉해졌다. 옷은 모두 낡아버렸다. 몸에서는 안 좋은 냄새가 났다. 이제 XY염색체를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여자에게 올챙이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예쁜 인공지능 로봇들이 가랑이를 벌리고 지천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최신형 로봇은 가슴에 모니터가 달려 있어 성교 중에 오목을 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로봇은 되게 비쌌다. 하지만 녹말구역에서 마그네슘 광맥이 발견된 이후로 쌀알행성은 유례없는 호황이었다.
   여자는 휴직계를 낸 후 보다 정교하게 작성한 탄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마침내 의회로부터 약간의 지원금과 유해 발굴 허가를 얻어냈다. 여자는 짐을 꾸려 쌀눈지역으로 갔다. 반세기 전에 거인의 고함 소리를 들었던 바로 그곳에 캠프를 설치했다. 좋은 보수를 약속받은 작업반이 물의 피부를 도려내고 튼튼한 합금로봇들을 내려 보냈다. 로봇들의 촉수 끝에 부착된 고감도 마그네슘 렌즈 덕에 어렵지 않게 유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해를 고스란히 지상으로 꺼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심연의 압력과 밀도는 예리한 다이아몬드 칼이 도처에 숨어 있는 형국이었다. 거인의 엄청난 덩치를 지상으로 데려오려면 백 년은 앞선 합금 기술이 필요했다. 낙담한 여자는 스크린을 통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옛 연인의 유해를 보았다. 물의 밀도 덕분에 조금도 상하지 않은 상태였고, 살짝 옆으로 돌린 얼굴에는 반세기 전에 자주 지어 보이던 저 꿈꾸는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덕분에 여자는 비로소 사랑하는 거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자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입을 벌리는 순간 울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얼굴을 움직이는 순간 울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울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한번 울면 죽을 때까지 울 것 같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여자는 결정을 내렸다. 표 나지 않게 살을 조금 떼어올 것. 다이아몬드 칼날 사이로 들어가야 할 운명에 처한 로봇들이 고주파 비명을 지르며 지랄했지만 여자는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는 값비싼 합금로봇 일곱 대를 찢어발긴 후 거인의 팔뚝 살점을 진짜 쌀알만큼 얻을 수 있었다. 여자는 살점을 들고 의회 병원으로 갔다. 추출한 DNA를 자궁에 부착했다. 중력에 힘겨워하지 않도록 쌀알행성 일반인들의 체격을 선택했으며, 성별은 남자로 정했다. 아이는 열 달 후에 태어났다. 지금으로부터 165년 후인 서기 2170년도의 일이다.
   그렇다, 아이는 태어났다. 그때 여자의 나이는 일흔아홉이었다.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한테 ‘너희 어머니는 일흔아홉 살이란다’라고 알려주면 확 돌아버리겠지만, 이 당시엔 아이를 기르기에 결코 늙은 나이가 아니다. 참고로 그녀의 어머니인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의회의 프로그래머를 덮칠 당시 아흔셋이었다. 그나저나 여자는 이제 자기 삶의 주파수를 아이에게 맞추었다. 더 이상 거인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이 시대엔 죽은 자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 영적인 진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거인의 연못에서 예감했던 불행의 시간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학교로 돌아갔다. 사랑에 빠지기 전에 하던 대로 어린 학생들을 엉뚱하고 쓸모 없는 상상으로부터, 신화와 전설과 로망스와 백일몽으로부터 보호했다. 급료는 전부 아이와 자신을 위해 썼다. 옷을 사고, 목의 주름을 폈다. 여자는 다시 아이들과 XY염색체를 가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가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대류측정기를 사서 아이의 방에 설치했다. 그것은 물체가 움직일 때 미세하게 흐르는 주위 기체의 유동량 변화를 측정하여 삼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장치였다. 흑백이었지만 제법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영상의 용량이 아주 작아 메모리를 교체할 필요 없이 백년만년 저장이 가능했다. 수신기로 데이터를 재생시키면 거기에는 방 안의 공기를 움직이는 물체, 즉 아이의 모습이 머리카락 한 올까지 또렷이 나타났다. 직장에 있을 때에도 틈만 나면 수신기를 꺼내어 아이의 영상을 보았다. 점점 누군가를 닮아가고 있었다. 여자는 기뻤다.
   네 살이 되면서 아이는 예비교육기관에 입학했다. 여자가 일하는 기초교육기관의 하급학교였다. 생글생글 잘 웃는 아이는 교사들에게도 인기였다. 아이는 클론답지 않게 영리했다. 쌀알행성에는 클론이 많았는데 대부분 심각한 발달장애를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군용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결같이 만성적인 공감각에 시달렸기에 사지에 몰아넣을 군인으로 써먹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리와 냄새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빛깔과 맛을 거의 동시에 느꼈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발달장애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공감각적 특성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아이가 크고 예쁜 눈을 빛내며 질문할 때면 교사들은 말을 더듬었다. 너는 좋은 선생이 될 거야, 하고 한 교사가 아이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여자는 기뻤다. 여자도 아이를 교사로 키울 작정이었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아이는 지나치게 신화를 좋아했다. 전설에 집착하고, 능청스러운 마그네슘 탄광의 광부들이 꾸며낸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곤 했다. 때로는 묘하게 변용된 언어를 말하여 여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몇 년 지나 정규교육을 받기 시작하면 그것들은 잊고 싶은, 부끄러운 추억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아이가 다섯 살이 되는 해, 즉 2175년이 되었다. 여자는 여든네 살이 되었다. 여자가 그렇게까지 나이를 먹어버린 건 내 책임이 아니다.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해에 여자는 탈이 난 오른쪽 다리 관절과 왼쪽 눈을 교체했다. 췌장은 아직 삼 년가량 더 쓸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속으로 이물질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며칠간 불쾌해했다. 하지만 시간에는 저항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차라리 익숙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이었다. 쌀알 옆구리 지역에서 한 노파가 방문을 신청했다.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방문신청 데이터를 보며 여자는 이 노파가 왜 잔뜩 화가 나 있는지 의아해했다. 여자는 방문자의 정보를 훑었다. 그리고 노파가 자신을 찾아올 만한 이유를 검색했다. 단 하나의 이유가 추출되었다. 노파의 어린 클론이 자기 아이와 같은 반이었다.
   두 시간 후 현관검색대가 신호음을 냈다. 여자는 문 옆에 달린 스크린을 보았다. 온몸을 값싼 플라스틱 장기로 이식한 노파였는데, 겉옷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색대가 추측한 노파의 예상 나이는 200살이었다. 그렇다, 기특한 검색대가 제대로 추측했다. 그녀는 200살이 맞다. 그리고 170년 전인 2005년에는 서른 살이었다. 서른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내가 사는 정릉 풍림아파트의 바로 아래층인 1001호에서 소음성 히스테리를 부리며 살고 있었다. 솔직담백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녀를 물어 죽이고 싶다. 그녀의 히스테리는 정말 끔찍하다. 나는 다음주에 있을 내 고양이의 생일 선물로 그녀가 투신자살해주었으면 딱 좋겠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처럼 온몸의 장기를 바꿔가면서 서기 2203년, 술 취한 부랑자의 이빨에 물려 죽을 때까지 그 개 같은 목숨을 이어간다. 그 부랑자는 한 천재 때문에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전직 치과의사였다.
   아무튼 노파는 2175년에 거기, 여자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옆구리에는 지저분한 상처가 얼굴에 가득한 클론 계집애가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데, 똥이라도 쌀 것 같이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여자는 문을 열었다. 흥분한 노파가 삿대질을 하며 들어섰다. 여자는 당황스러웠다. 노파는 아이를 자기 앞에 ‘갖고’ 올 것을 요구했다. 여자는 응접실로 가서 먼저 사정을 듣고 싶다고 정중히 말했다. 노파는 서기 2005년에 정릉 풍림아파트에서 위층에 사는 순박한 나에게 했던 것처럼 무례하게 굴었다. 그러나 여자도 수많은 거친 사람들을 상대하며 84년을 살아온 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저 참혹했던 구호소에서의 십 년도, 한 남자의 시신만을 생각하던 저주받은 반세기도 견뎌낸 바 있다. 결국 노파는 응접실로 갔다.
   의자에 앉은 노파는 조금 진정된 듯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파는 자기 클론을 데리고 영안실을 찾아가 무작정 울음을 터뜨리는, 어느 시대나 한두 명 쯤은 종사하는 그런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는 게 버릇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노파가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휴지를 건네주었다. 노파는 더러워진 휴지를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오염물질을 포착한 벽에서 자동으로 음이온과 살균제가 뿜어져 나왔다. 노파는 적당히 뜸을 들인 후, 자신의 방문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벽에서 구취제거제와 방향제가 뿜어져 나왔다.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여자는 노파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파는 막무가내였다. 아이를 당장 ‘갖고’ 오라고 요구했다. 노파를 간신히 제지한 후 노파의 클론, 그 작고 멍청하게 생긴 계집아이에게 물었다. 정말 우리 아이가 그랬니? 계집아이는 노파를 한번 보고, 여자를 보고, 그리고 다시 노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모니터를 꺼내더니 여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반쯤 파손된 손바닥만 한 혈류정화장치의 이미지가 떠 있었다. 호들갑 떨 만큼 비싸거나 중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망가졌다면 새로 사주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남의 것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그랬다면, 꾸중을 할 수밖에 없다. 여자는 플렉시블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났다.
   아이는 곤하게 자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여자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 오십 년을 바쳐 얻어낸 존재였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남은 시간도 모두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확인해보아야 했다. 여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아이의 숨결은 달콤했다. 눈을 깜빡거리며 일어났다. 예, 엄마. 아이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예, 엄마.
   여자가 데리고 나온 아이를 보자 노파는 더욱 성질을 부렸다. 가만히 계세요. 여자는 명령하듯 말했는데, 그건 평소에 남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여자는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여자는 탁자에 놓인 플렉시블 모니터를 아이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 나타난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망가진 거 보이지? 네가 그랬니? 아이는 눈을 깜빡거리며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이걸 만지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들은 노파는 더러운 냄새가 나는 입을 활짝 벌리면서 미친년 널뛰듯 소란을 부렸다. 음이온과 살균제와 구취제거제와 방향제를 한꺼번에 뿜어대느라 벽이 고생했다. 노파는 아이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삿대질을 하며 모진 소리를 뱉었다. 여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아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아이한테 똑같은 애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여자는 탁자의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자꾸 소란을 피우면 의회에 신고하겠다는 경고였다. 마침내 노파가 의자에 다시 앉았다. 여자는 노파와 자신들 사이에 투명한 전자기 커튼을 쳤다. 그리고 자기 의자를 아이의 정면을 향해 돌렸다. 심장이 몹시 뛰었지만, 당황한 기색을 아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맑고 평온한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자기 커튼 너머의 노파를 보았다. 노파는 씩씩거리며 아이를 노려보고, 자신의 클론을 한 대 때리고, 다시 아이를 노려보고, 자신의 클론을 한 대 더 때렸다. 클론이 울기 시작했다. 노파는 얼씨구나 하는 표정으로 한 대 더 때리고는 고함을 질렀다. 당신 아이가 얘를 쫓아 우리 구역까지 왔다고, 우리 구역 입구에서 얘의 혈류정화장치를 빼앗아 발로 밟아 부쉈다고 고함을 질렀다. 공감각 증세 때문에 노파의 클론은 고함 소리를 똥 냄새로 인식하고는 코를 틀어막았다.
   네가 그랬지? 왜 그랬니? 여자는 하기 싫은 말을 하기 싫은 방식으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노파가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마치 아이의 죄를 모두 알고 있으며, 기꺼이 그 죄를 용서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면서 여자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여자는 아이를 껴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흥분한 노파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아이의 어깨를 잡고는 조금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왜 그런 거니?
   아이는 노파를 보고, 노파의 클론을 보고, 다시 여자를 보았다.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아이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하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오늘 그쪽으로 가지 않았어요. 기관에서 나와 녹말구역 쪽으로 갔어요. 거기서 집에 왔어요.
   여자는 고개 돌려 창밖, 시들어가는 가을의 정원을 보았다. 25제곱미터에 불과한 정원은 그러나 광선 조작에 의해 엄청나게 넓어보였다. 훗날 아이가 크면, 그곳에서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노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노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다. 여자는 노파에게 말했다. 두 아이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그렇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여자는 가방 속에서 대류측정기 수신기를 꺼내 왔다. 우리 아이는 늘 대류측정기를 달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우리 아이가 어느 길로 왔는지 알 수 있겠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자는 수신기를 노파와 함께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여자는 자신의 아이를 믿었다. 아이의 존재를 믿고,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믿으며, 아이의 모든 말을 믿었다. 하지만 매사에 조심하려는 그녀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의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여자는 아이가 가리키는 녹말구역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알레한드르라고 불리는 맘씨 좋은 사나이가 살았다. 삼십대 초반인 그는 이달 말에 결혼하는 내 대학 후배 성범수와 꼭 닮았다. 범수야, 결혼 축하해. 그런데 내 대학 후배 성범수와 꼭 닮은 알레한드르는 전생에 이집트의 석공이었다. 그 다음 생인 1890년대에는 독일의 광부였고, 그 다음 생인 1970년대에는 북한의 아오지 탄광에서 일했다. 이제 그는 쌀알행성의 마그네슘 탄광에서 자신의 네 번째 생을 즐기는 중이다. 이 이야기와 전혀 관계없지만, 알레한드르는 진폐증으로 마흔세 번이나 폐를 바꿔가며 열심히 일하다가 서기 2522년에 돌아가신다. 그리고 쌀알행성 북쪽 녹말구역의 마그네슘 탄광 수호신이 되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마그네슘 귀신으로부터 가녀린 광부들을 지켜주신다, 콜록콜록 기침하면서. 범수야, 결혼 축하해.
   그나저나 여자는 아이가 알레한드르라는 사나이를 좋아한다는 걸, 그리고 자주 그를 보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모든 종류의 차별은 죄악으로 간주되는 시대라 만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폐의 안전을 위해 대기정화장치를 부착하라고만 일러두었다. 아이는 녹말구역 방향으로 갔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대류측정기로 확인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여자는 고주파 커튼을 홀로그램 모니터로 변환한 후, 수신기의 기록을 송신했다. 영상이 흑백으로 복원되어 나타났다. 처음에는 일인칭 시점으로 아이의 행보를 관찰했다. 아이는 확실히 녹말구역 쪽으로 걷고 있었다. 여자는 으쓱해졌다. 반대로 노파는 실망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노파를 빨리 내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여자는 재생 속도를 올렸다. 시점도 삼인칭으로 바꾸었다. 이제 아이는 황야와 과수원과 낮은 건물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작은 점이 되었다. 보폭이 일정했고 중간에 쉬지 않았기 때문에 점의 움직임은 무척 우아해 보였다.
   노파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인 것은 그 점이 두번째 사라질 때였다. 노파는 아이가 사라진 부분과 다시 나타난 부분 사이에 공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거긴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대류측정기가 스스로 작동을 멈춘 것일 뿐이다. 여자는 노파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드를 조정해놓음으로써 대중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지만 노파는 수긍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에게 죄가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양 거세게 여자를 몰아붙였다. 노파는 그렇게 매너 좋은 대류측정기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물건이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1001호 여자만 보면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말을 들은 여자는 개인 측정기의 화상정보 말고 그 공공장소의 대류측정 기록을 찾아보면 아이가 이러이러한 곳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사실이 증명될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의회에 접속하기 위해 수신기를 조정했다. 곧 연결되었다. 여자는 노파가 잘 볼 수 있도록 천천히 포인터를 이동시켰다.
   바로 이 순간이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래를 볼 줄 안답시고 책상에 앉아 170년 후의 이야기를 그저 옮기기만 해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건 일곱 살인 내 조카도 할 줄 안다. 그 애는 며칠 전 울면서 내게 안기더니만 미래엔 치과가 깡그리 없어져버릴 거라고 예언했다. 그 애가 옳았다. 2027년도에 태어난 한 천재 때문에 치과의사들은 모조리 알거지가 되었다.
   아무튼 나는 이제 170년 후의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몇 마디 하겠다. 정확하게는 응접실에 앉아 있는 여자와 노파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나는 유명한 작가이므로 사람들의 심리를 읽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먼저 노파다. 노파는 현재 몹시 불안한 상태이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빌어먹을 자기 클론이 또 거짓말을 한 게 틀림없다. 게다가 앞에 있는 여자는 흥분해서 같이 드잡이를 하지도 않고, 차가운 기계로 자기 아이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차근차근 풀어놓는 중이다. 내 탁월한 능력으로 보건대, 노파의 마음속에선 이런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다─이년아, 우린 오늘 상대를 잘못 골랐어!
   여기서 ‘이년’은 물론 자기의 클론이다. 다음은 여자다. 여자는 피곤하다. 이런 노파를 상대로 결백을 증명해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고개를 숙이고 나가도 남들 앞에서는 자기 아이를 모함할 것이 뻔하다. 그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고, 조용히 배웅하는 것이 최선이다. 아이가 결백하다는 건 조금도 기쁘지 않은 일이다─자기 팔이 두 개라는 사실이 조금도 기쁘지 않듯이. 내가 굳이 이런 심리묘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순간 아이가 한 말 때문에 둘의 심리상태가 극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뭐라고 했을까? 저는 그 길을 통과해 오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포인터에서 손을 떼며 아이를 보는 여자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응? 그 길을 통과해 오지 않았다고? 그러면 어떻게 집에 왔니? 다른 길이 있니? 여자는 하나마나한 말을 조금씩 바꿔가며 반복했다.
   아니요, 다른 길은 없어요. 탄수화물터널을 지나는 길 말고는 없어요.
   사태가 이상하게, 그것도 난데없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노파가 자기 클론의 무릎에 손을 올리며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섣불리 행동하지는 못했다. 아직 확실한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모니터에 나타난 아이의 궤적은 불완전하되 분명히 자기 클론의 그것과 다른 방향이었다. 노파는 가만히 아이를 노려보았다.
   그럼 어떻게 된 거니? 여자가 조용히 물었다. 교양이 몸에 밴 선생이라 가능한 일이다. 노파였다면 당장에 두꺼비처럼 엎어놓고 궁둥이를 후려갈겼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인 그녀도 애가 타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니? 여자가 조용히 다시 물었다.
   저는 다르게 왔어요. 아이가 간신히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아이의 눈에 초조한 빛이 떠올랐다. 다르게 왔다고? 어떻게?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여자는 아이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분명 다른 방식으로 왔을 것이다. 당장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많이 있을 것이고, 방법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아이는 평소와 달리, 그 다른 방법 중의 하나를 택해서 집에 온 것이다. 그게 하필 오늘이라 얄궂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다른 방법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는 아이를 믿었다. 내가 돈의 힘을 믿듯이 아이를 믿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날아서 왔어요.
   여자는 눈을 감고 탄식했다. 짧게 두 번, 여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날아서 왔어요. 탄수화물터널을 지날 때 다리가 아팠어요. 다리가 아파서, 집에 가고 싶다, 엄마한테 가고 싶다 하고 생각했어요. 눈을 감고 그렇게 간절히 생각하는데, 몸이 둥둥 떠오르는 거예요. 그렇게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왔어요.
   화끈하게 뒤집어엎을 때가 왔다고 노파는 판단했다. 단전에 기를 모아 파괴력과 전투력을 극점까지 끌어올렸다. 얼굴이 붉어지고, 이두박근이 먹장어처럼 씰룩거렸다. 그 꼴을 본 여자는 기가 막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차분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저희 아이가 잘못한 것 같군요. 고장 난 물건은 더 좋은 걸로, 지금 바로 댁으로 보내겠습니다. 사과의 표시로 플렉시블 모니터도 하나 같이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이가 어려서 그런 것이니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이건 대단히 잘한 짓이다.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대들다간 나처럼 박살난다.
   노파는 당장, 자기가 보는 앞에서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170년의 세월 동안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여자는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파가 보는 앞에서 의회에 물건들을 주문했다. 아니 의회에서 주문을? 그렇다. 의회에는 마켓도 있다. 거긴 엄청나게 비싸다. 하지만 그만큼 신용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중요한 물건을 살 때면 의회 마켓을 이용한다. 의회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부분 마켓에서 얻어진다. 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아무튼 노파는 주문한 물건들의 가격을 유심히 보았다. 원래 것보다 세 배나 비싼 제품들이었다. 노파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판다를 빼앗긴 중국의 심정으로 노파를 배웅했다. 허리를 굽히고, 굽히고, 그리고 또 한 번 굽혔다. 응접실로 돌아오니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자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 네가 잘못한 걸 생각해봐. 아무와도 얘기하지 마. 아무것도 보지 말고, 어둠 속에서, 그래, 어둠 속에서.
   이 말을 하면서 여자는 놀랐다. 단 한 번도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이는 몇 번이고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어떠한 말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아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한참을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불공평했다. 잘못을 저지른 건 아이인데 괴로운 건 자신이었다. 아이를 방의 어둠 속에 놓아둔 건 누구에게 벌일까? 여자는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 잘못을 뉘우치고 있을까? 혹시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얼마나 지난 후에 아이를 안아주어야 할까? 내가 안으려 할 때, 아이는 조용히 안겨올까? 여자는 생각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아이 방 앞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응접실로 돌아갔다.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 애가 내게 이래선 안 돼. 여자는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어? 온몸에 힘이 빠져 가만히 앉아 있기도 버거웠다.
   그때, 여자는 아이가 뒤에 서 있는 걸 깨달았다. 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아이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고 있음을 알았다. 여자는 그 울음의 의미를 반성으로 생각하고는 잠시 갈등했다. 다시 들어가라고 해야지. 아니, 껴안아주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나 아이의 울음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아이는 여자 뒤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왜 안 믿으세요?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장마철의 밭고랑 같은 얼굴로 말했다.
   이상해요? 뭐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는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끔찍한 무기력감에 휩싸였다.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가 오래전 누군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여자의 가장 아픈 곳에 밀봉되어 있던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열어젖혀버렸다. 여자는 조금 전의 일처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반세기 전, 그를 만날 수 없는 날이었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사실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고맙고 반가웠기 때문이었다. 반세기 전, 거인은 너무 보고 싶어서 날아왔다고 대답했다. 날아왔다고? 그 덩치로?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은 처음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자기 가슴속에 영원히 묻혀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아이와 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든네 살 그녀의 시선은 이십대에 만났던 한 존재에 닿아 있었다. 여자는 오랫동안 거인을 잊으려 노력해왔다. 아까 내가 말했듯이 죽은 자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 영적인 진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한 미덕이었다. 여자의 정신 중 통제되지 않은 일부는 끊임없이 거인을 만지고, 듣고, 핥아왔던 것이다. 심한 혼란에 빠졌으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나이를 먹는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여자의 어깨에 자기 뺨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그 마지막 구절은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원으로 나가요, 엄마.
   여자는 허우적거리며 일어섰다. 아이에게 이끌려 정원으로 나섰다.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달의 황혼이 고요했고, 별빛의 응달로는 푸르스름한 대기의 가닥이 전설의 뱀처럼 흘러갔다. 마치 170년 전, 내가 이 소설을 쓰고 있는 북한산 부근의 초가을 저녁처럼 말이다.
   정원 한가운데서 아이는 여자의 정면에 섰다. 손을 놓고 정원의 끝까지 뒷걸음질쳤다. 여자는 어지럽고 메슥거려 아이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엄마, 하고 아이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외쳤다. 보여드릴게요. 날아서 엄마한테 갈게요. 여자는 현기증이 났다. 깊은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은 텅 비었고 그 자리로 비릿한 은하의 바람이 스며들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깜짝 놀라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어찌할 틈도 주지 않고 눈물이 흘러나왔다. 여자는 한숨을 쉬며 울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참아왔기 때문에 우는 게 아팠다. 얼굴을 가린 탓에 여자는 정원의 저쪽 끝을 보지 못했다. 거기 서 있던 아이가 사라진 걸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손길을 느꼈다. 그건 깃털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조용히 돌아섰다.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뻗어 나온 팔이 다정하게 감싸왔다. 여자는 순순히 몸을 맡겼다. 낯설지가 않았다. 엄청나게 큰 거인이 안아주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편했다. 행복했다. 하지만 그 느낌으로 충만했던 먼 저편의 시간을 생각하니 또다시 온몸이 아리면서 억울해졌다. 어떻게라도 하고 싶었다. 거인의 꿈꾸는 듯한 미소를, 넓은 가슴을, 저 괴상한 맹세를 돌려받고 싶었다. 그것들을 빼앗기면서 심연의 바닥에 갇혀버린 세월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그 마음만이 여자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았다. 감미로운 손길에 대한 판단도 거부했다. 자기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오랜 시간 그렇게 교육받았고, 더 오랜 시간 그렇게 가르쳐왔다. 하늘을 난다는 건, 다른 시대로 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왜 젊고 아름답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았단 말인가? 왜 반세기 전으로 날아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허락되었다면 여자는 저 멋진 거인과의 세월에 묻혀 절대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지 않았다. 여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가린 손을 내릴 수도 없었다. 불가능이라는 믿음은 너무 긴 세월 동안 여자를 간섭해왔다. 이제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의 망설임조차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 2006)에 수록

 

 

   추천하며


   박형서의 「날개」는 과학과 예술의 대립, 혹은 이성과 감성의 길항과 공존을 두고 SF적인 상상력을 추동해 나간 단편소설이다. 하나, 거창하고 진지한, 그리고 더없이 추상적인 갈등 구도만으로 그토록 활달한 이 소설을 제대로 요약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소설 위에 작가가 펼치는 상상력의 날개는 전혀 무겁지 않다. 작가가 펼친 언어의 날개는 언제나 대지에 붙들려 살아가는 독자들을 모두 공중부양시킬 만큼, 가볍고 유쾌하다. 작가가 던진 그 대립의 문제에 대해 독자가 자못 골똘히 궁리해 볼 만한 여유를 주지 않고 시종일관 가벼운 농담조의 문체로 판을 흔들어 독자들을 포복절도시키고야 만다. 가독성이 탁월한 소설이나, 행간에 나름의 문제의식을 내장했음을 알 수 있다. 박형서의 「날개」는 과학소설의 외피를 둘렀으되 망상가의 장황한 입담으로 그 형식을 재치 있게 비틀고 뒤틀어 살균된 이성의 세계를 따뜻하게 오염시킨다. 작가의 명랑 쾌활한 날갯짓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_편혜영/문학평론가_노대원, 양윤의, 조연정)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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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쓴 일기

[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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