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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대담 7회 — 문단권력과 익명의 평론가들

  • 작성일 2019-07-08
  • 조회수 2,793

[익명대담]

 

 

익명대담 7회
— 문단권력과 익명의 평론가들

 

 

ㅇ 기획 :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김남숙 소설가, 양안다 시인)

 

 

 

이번 익명대담에서도 앞서 말했듯이 문단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신인 작가들이 대담에 주로 참여했다면 이번에는 신인 평론가들을 모셨다. 할 말이 많을 것을 예상했고 정말로 그간 익명대담과 비교하여 가장 긴 시간 동안 대담을 나눴다. 전문을 실을 수는 없었지만, 김남숙과 양안다는 적절히 덜어내는 것으로 그들의 발언이 잘 전달되기를 바랐다.

 

이번 대담 역시 지난 대담처럼 시간적 순서대로 옮겨 놓았다. 섭외부터 일정 조율, 그리고 수정까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평론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익명대담은 다음 회가 마지막이다. 이제까지 익명대담이 많은 분에게 어떻게 읽혔는지 모르겠다. 익명이라는 장점과 익명이라는 취약하고 불투명함 속에 상처를 받으신 분이 있다면 이 기회로 사과드리고자 한다. 익명대담이니만큼, 목소리를 수정하기 어려웠다. 상처 받은 분이 계신다면 다시 한 번 죄송한 마음이다.
다음 회차는 마지막을 맞이해, 처음 대담을 진행했던 것처럼 재미있고 쓸모없지만 어쩌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가벼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안경 : 제 주변의 동료 작가들에게도 저번의 익명대담이 많이 화제가 되었더라고요. 나에게도 종종 물었어요. 평론가도 각자 자신만의 취향이 있잖아요. 그리고 평론가들이 현재 발표되는 모든 작품들을 모조리 다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중에서 평론을 쓰는 입장인 저 또한 문단권력과 관련해서 말하고 싶은 점은, 저와 같은 신인 평론가의 입장에서 특정 작품의 해석이나 서평이 들어올 때 종종 안 맞는 작품이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 작품의 취향이 나에게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청탁받은 작품의 작품성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어요. 이거 거절하면 다시는 청탁이 안 오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글은 나중에 흑역사로 남을까 봐 걱정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 글을 쓴 평론가가 이런 작품을 선호하는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할까 봐서.

 

열쇠고리 : 지난 익명대담을 보면 권력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그들이 말하는 권력이라는 게 사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문단권력이 있다, 라는 것을 실체처럼 여기고 그걸 마치 권력을 실제로 행사한 것처럼 나오는데 말 그대로 권력이라는 것은 관계에서 오는 것이지 돈처럼 가지고 있어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게 보일만한 사례들도 있지만, 익명대담에서 얘기했던 비평가들의 집단 자체가 추상적인 것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러한 비판이 정확한 실체가 아니라 본인들의 상황을 통해서 비판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공감 가는 측면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어요.

 

안경 : 네, 맞아요.

 

열쇠고리 : 가령 비평가들 비판할 때, 출판 권력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작가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는데,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안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출판사와 밀접한 사람들은 사실상 소수에 불과하잖아요. 물론 그분들이 전부 다 권력을 행사하는지 안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저 그리고 저번 대담에 '손톱깎이'님이 말씀하신 것이 궁금해서 말씀 드리는데요. 우리가(비평가들이) 누구를 호명했는데 그 호명이 잘못되었다고 자신들이 스스로 반성하는 뉘앙스로 쓰신 글이 있다고 했는데 어디에 발표하셨는지, 혹시 읽어 보신 분 계세요?

 

안경 :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열쇠고리 : 저도 소설가 분들이 볼 만한 잡지들을 살펴봤는데 제가 대충 봐서 그런지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많이 분노를 하셨던데.

 

WD-40 : 정확한 글의 제목은 잘 모르겠는데 그런 글을 읽었다더라, 하는 말을 예전에 들은 적은 있어요.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문단 내 성폭행 사건들이 주로 남성시인들 관련 언급이 되었고, 아마도 그 차원에서 기존의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탈을 한 행동을 한 사람도 시적 기행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기여한 게 아닌가, 반성한다는 식으로······. 그런 맥락이니 최종적으로 권력이 있었던 것을 다시 발화하는 것으로 느껴졌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부분이었어요. 저도 정확하지 않은데, 아마 그런 이야기였지 않나 하는 추정이······.

 

열쇠고리 : 그리고 계속 문단권력 이야기가 나오는데, 문단권력 자체는 사실 기원이 굉장히 오래되었잖아요.

 

WD-40 : 그렇죠. 제가 들은 것도 상당히 오래되었고요. 그런데 그걸 계속 들었을 때 어떤 부분들이 자꾸 섞이느냐면, 문단과 출판 내에서 비평가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 비평가에게 부여된 자리,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의 비평가가 혼동된 채로 계속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지난번에 있었던 익명대담에서 비평가들은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도 있지만, 한편으로 이 권력을 행사하는 너의 감식안을 신뢰할 수 있느냐, 그런 내용이 섞여 있는데. 사실 비평 내에 감식안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문단권력에 대한 비판과는 사실 다른 얘기거든요. 다른 층이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 혼동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문단권력과 비평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계속 이야기가 공회전하는 요인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물론 분명히 도드라지게 행동하는 비평가들이 있고, 그 도드라진 비평가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면 비판하는 작가들의 입장에서도 대상이 명확해지고 설명하기 편리해지는 감이 있으니까. 그래도 명확하게 구분을 해놓고 구조 기능이나 개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열쇠고리 : 아마 작가들 입장에서 평론가에게 선택이 되면 마치 흥행 보장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식의 혼동이 쉽게 일어나지 않나 싶기도 해요.

 

WD-40 : 실제로 문단의 권력이 작동한다고 했을 때 이때 권력은 시스템의 문제일 텐데, 시스템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이 눈에 띄잖아요. 그리고 보통 우리의 문단 시스템 자체가 몇몇 평론가들로 대표되는 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의 연장에 있기 때문에, 그 시스템 자체를 대표하는 역할을 개별 평론가들이 가시적으로 하는 측면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야기가 뒤섞이는데 사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다시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 두 가지를 띄워 놓고 분리해서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안경 : 비평가의 영역이 있고 편집자의 영역이 있잖아요. 이 두 영역에 대한 경계가 없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든다면 평론가 분들이 편집자 일을 겸하는 경우.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WD-40 : 편집으로 이야기가 넘어갔을 때는 논점이 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데요. 한국에서 편집자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잖아요. 전문성을 기르면서 일을 하신 분들이 실질적인 작업을 할 때, 특히나 문학 분야에서는 자기의 목소리가 파기되는 것을 많이 봐서요. 잡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편집위원에 편집자가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오히려 편집자의 역할이 축소되어 있기에 생기는 문제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리고 평론가들은 독서시장보다는 대학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평론의 다양성이 조금 축소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전에 어떤 평론가가 그런 글을 썼거든요.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평론가와 비평적 시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런 밑바탕을 편집자들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글이었어요. 그 글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요. 연배가 높은 분들 중에는 편집자의 역할을 너무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분들도 있어서 그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그렇게 독자 반응에 민감한 편집자들의 위치가 축소되는 게 비평가들한테도 썩 좋은 조건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핫도그 : 저는 잘 아는 게 없어요. 주변에 평론가도 저밖에 없고 다른 평론가나 편집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요. 그런데 저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왔어요. 평론가는 평가를 잘 안 받잖아요. 하지만 작가들은 일방적으로 평가를 받는 입장이다 보니까, 그래서 평론가라는 직업이 작가보다는 권력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계약과 밀착되어 있는 것도 권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은 강의도 그렇고 평론가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직업군에 속하기 때문에 강의를 따오는 것에 있어서 평론가가 더 쉽고, 그래서 저는 그런 면에서 작가들이, 제 개인적인 경험 안에서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 부분들이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평론가는 없는데 작가들은 조금 있거든요. 그런데 작가들에 비해 제가 보이는 권력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왔어요. 그래서 작가들이 의문을 갖는 것도 당연하고······. 작가들이 자신의 시집 해설도 본인이 고르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 부분에서 충분히 불만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구조적 측면이 아니라 직접적인 권력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권력을 행사 받은 적 있는가, 하는 질문. 저는 있거든요. 글을 그렇게 쓰면 안 된다, 라고 편집부에서······.

 

열쇠고리 : 잡지 쪽에서요?

 

핫도그 : 그렇죠, 편집자 쪽에서 그렇게 된 거죠. 그런 상황에 대면했을 때는 직접적으로 권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열쇠고리 : 실제로 저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중견 평론가 분이 수정 지시를 받아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리고 신인 분도 있었고요. 얘기 들어 보니 잡지에 글을 싣기로 했는데 사인펜이 떡칠된 원고를 되돌려 받았대요. 소위 말하는 '스타 평론가'였는데도 그런 일을 겪었다니까, 좀 무섭긴 했죠.

 

안경 : 저도 이렇게 쓰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요. 결국 안 실렸어요.

 

열쇠고리 : 어디요?

 

안경 : 비밀이에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웃음)

 

열쇠고리 : 그런 경우는 진짜 드물어요. 저는 한 번도 없어요. 대신 저는 읽다가 못한다고 한 적은 있어요. 저는 그게 가장 궁금해요. 신작 시 세 편 혹은 다섯 편을 묶어서 평론가들에게 청탁을 하는데 어떤 잡지는 평론가와 사전에 상의를 해서 작품을 정하고 비평 원고를 싣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어떤 잡지는 편집부에서 미리 작품을 정해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후자의 경우 어떤 경위로 선정이 되었으며, 왜 그 평론가에게 그 평론을 맡기게 되었는지 불투명하거든요. 저는 그 부분이 궁금해요. 그래서 또 하나 얘기해 볼 만한 것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까 청탁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본인이 승낙을 하느냐, 안 하느냐와 별개로 지도교수의 소개를 통해서 원고청탁이 온 거잖아요.

 

안경 : 그것도 권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WD-40 : 이런 식으로 원고청탁이 이루어지는 게 비평가들에게는 대학의 사제 관계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두 개는 따로 봐야 할 것 같아요. 문예지의 비평 청탁 방식, 그리고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대학에서 지도교수와의 관계. 지도교수의 영향력 아래, 평론 활동이 대학 활동에 종속되고, 지속되는 측면도 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게 평론가들 내에서 보이는 문제점 중에 하나인 것 같고요. 이전 대담 때도 대학 얘기를 하더라고요. 평론가의 학벌을 이야기하면서 특정 대학이나 그런 곳에서 등단한 사람들이 누리는 유리함도 있었고요. 평론이 가진 문제점 중에 상당부분이 대학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요.

 

열쇠고리 : 그런데 지난번 대담한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들어 보면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들 자체도 사실 작가들 입장에서 '너희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다.'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요. 사실 비평가들은 청탁이 많이 올 때 안 왔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청탁이 안 오는 작가들한테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잡지사 쪽에서 보내는 메시지 자체가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고요. 갓 등단한 신인 비평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만약에 작품을 잡지사에 보내줄 수 없다고 얘기하면 너 이렇게 해서 작품 활동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고 해요. 그런 측면을 보면 아무래도 비평가들과 다른 소설이나 시를 쓰는 작가들이 놓인 환경이 다르니까 상대적으로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견해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WD-40 : 그리고 평론가가 현재 문단 시스템에서 기능하게 되는 건 매체의 조건과 떼어서 이야기할 순 없거든요. 종이로 만든 출판물이고, 지면 자체를 제공하는 것이 돈이니까 한정되어 있고, 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사실 권력이 자원의 분배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지금 평론가들이 속한 한국의 문학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문학에 맞게, 그리고 경제적인 것과 뒤엉켜서 만들어진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평론가의 위치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어떤 방식으로 작동시킬지 중간관리자 같은 느낌으로 계속 존재해 왔잖아요. 그게 점점 약해지면서, 시스템 자체가 약해지니까 문제가 커진 경우인데요. 이 안에서 보이는 시스템 관리자 같은 역할로 부여된 평론가의 위치가 계속 권력으로 이야기할 때 평론가 개개인이 더 부각되어 보이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곤란한 지점이 분명 있어요. 매체가 다른 형태로 옮겨가지 않으면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한정된 자원을 배분할 역할은 정해져 있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등단이잖아요. 지난 회에도 그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평론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등단제도의 대안이라고 얘기하는 투고제도 과연 이게 대안이냐, 오히려 한정된 지면을 누군가의 선발에 의해서 특정한 사람에게 배분한다는 점은 동일하잖아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히려 제한된 사람이 관여하고, 그리고 더 불투명한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고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지적하신 점이 있어요. 그런 문제들 또한 근본적으로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인데요. 이게 해결되지 않으니까 반복되는 지점이 있거든요. 이때는 사실 평론가 개개인이 좀 더 잘할 수 있겠죠. 그런데 잘할 수 있는 것이랑 사람들에게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랑은 좀 달라서, 저는 어디까지나 역할을 맡는 사람이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편집자의 역할이 커지거나 문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는 평론가의 목록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경 : 네, 맞는 말이에요.

 

WD-40 :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어느 시점에 일이 많아지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역할을 다 맡아버리니까 어느 지점에서는 잘하겠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전문성이 좀 떨어지고······ 그런 식의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니까 평론가에 대한 신뢰도가 자꾸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안경 : 그럴 때 정말 온몸이 소진되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남아날 힘도 없는 느낌.

 

열쇠고리 : 그렇죠, 평론을 하게 되면 월평이라든가 리뷰라든가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빠른 시간 안에 주어지는 것들, 많이 끊임없이 써내야 하는 시스템은 문학 시장이 데뷔하는 평론가들을 나름의 길들이기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저는 모임에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잡지에서 젊은 비평 같은 걸 하잖아요.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것도 나름의 성향에 맡게 재교육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런 모임이 많지 않고 한정적인 곳에서만 진행하다 보니까······. 그러니까 다양성이라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핫도그 : 다채로운 시각으로 비평을 써보는 것은 본인의 영역이 완성된 평론가라면 꺼릴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 것 하나 하나가 다 공부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서 제 방향성이 잡혀 간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평론 등단했을 때는 특별한 생각이 없었어요. 문학에 대한 관점도 없고······ 말하자면 평론가는 하나의 관점을 만들어 가는 사람인데 그 관점만 완성이 되면 어떤 주제가 와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의 관점으로 풀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싫어하는 시나 안 읽어 본 시가 왔을 때 공부가 많이 되고, 관점이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오히려 어떤 종류의 청탁이든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안경 : 평론 청탁이 자유 주제로 주어진다면 모를까.

 

열쇠고리 : 자유 주제라면 그렇죠.

 

안경 : 신춘문예 평론 부문 심사위원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M일보와 S일보 같은 신문사의 평론 심사는 심사위원 분들이 아예 정해져 있잖아요.

 

열쇠고리 :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됩니다. 아주 가끔 다른 분들이 하고······.

 

WD-40 : 심사위원이 물론 본인의 문학관으로 정당하게 뽑겠지만, 어쩔 수 없이 경직될 수밖에 없는 점이 있다는 거죠. 다양성도 줄어들고. 어느 글에서 봤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국문과에서 뽑히는 사람들이 대다수고 그 외에는 거의 전멸이에요. 서울의 몇 개 대학 국문과를 제외하고 전멸이고, 뽑는 심사위원도 국문과 교수를 빼면 없어요. 그 국문과 심사위원 교수들도 ○○대 출신 교수를 빼면 한 줌만 남고요. 다양하게 나올 수가 없어요. 문학평론에서는.

 

핫도그 : 원인이 뭘까요?

 

WD-40 : 아마 그 글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 평론 등단한 사람 중에 프랑스 시인을 대상으로 써서 등단한 사람이 있대요, 보들레르로 90년도 초반에.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런 사람들이 다 사라진 거죠. 그리고 국문과 출신, 국문과 출신이 아니지만 국문과로 옮긴 사람 빼고는 다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핫도그 :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문학작품을 안 봐서 그런 건 아닐까요? 국문과 학생도 시는 안 봐요. 소설은 읽어도. 시에는 관심이 전혀 없고, 제가 시키면 읽지만······ 영화나 다른 장르에는 관심을 가져도.

 

안경 : 그런데 또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국문과용 평론'.

 

WD-40 : 사실 그런데 국문과용 평론 말고 다른 게 있나 의문스럽긴 한데. (웃음)

 

열쇠고리 : 국문과가 평론을 안 해야지. (웃음)

 

핫도그 : 다른 과는 문학에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문학을 따로 연구하는 경우가 없어요. 문화랑 융합해서 연구를 하는 편이에요.

 

WD-40 : 그게 적당히 섞여 있던 때에 문학 쪽에서 '국문과화'가 진행돼 버려서 괴리가 생겼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다음에 서로 놓여 있던 학문적인 조건도 이전 시기랑 많이 달라진 것도 있고요. 옛날 잡지들 보다 보면 재밌는 게 다른 학과 논문이 문예지에 실려 있는 것들을 보거든요.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문예지에 싣지 않고 등재지에 실어야 논문이 인정되니까. 90년대 이후에. 그러고 나면 당연히 그 사람들하고도 거리가 계속 벌어지게 되는 것 같고요.

 

열쇠고리 : 학계에서는 업적 평가를 등재지 위주로만 하다 보니까······ 그래서 아예 평론 활동을 접는 선생님들도 많이 봤어요.

 

WD-40 : 작가 분들이 가진 불만 중에 그런 것도 있잖아요. 꽤 오래 잘 써왔던 평론가가 있으면 이 사람이 대학에서도 같이 인정을 받게 되는데, 대학으로 인정받으면 대학의 평가 시스템에 종속되니까 더 이상 현장 비평을 할 여력이 없어서 다시 현장 비평에서 떠나버리는······ 그냥 문학 비평을 발판 삼아서 자리를 잡고 우리를 버리는 건가? 하고 보신다는 얘기를 어느 대담 같은 데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작가 분들의 불만이 나왔고요.

 

열쇠고리 : 저는 다른 얘기인데······ 월평 얘기하다가 떠오른 얘기예요. 사실 월평이나 계간평, 이런 게 사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문제는 잡지나 일반적인 인식의 수준에서 별로 중요하게 안 본단 말이에요. 그런 것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이루어져야 되는데, 항상 월평이나 계간평을 청탁 받으면 충분한 여유도 주어지지 않고, 원고료도 마찬가지고요. 항상 주먹구구식으로. 또 심지어 어떤 잡지에서는 "○○○ 잡지에서만 작품을 고르시오."라고 하는데 그건 너무 한정되잖아요.

 

핫도그 : 그건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WD-40 : 청탁 기간도 문제인 게 되게 짧잖아요. 예를 들어서 몇몇 작품들을 정해 놓고 하거나 기획이 있으면 거기에 맞춰 달라고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어떤 식의 리뷰를 써달라고 하는 건 미리 청탁해도 되는데 너무 여유 없이 줘요. 너무 짧은 기간 안에서······ 검토해야 될 건 많은데.

 

열쇠고리 : 그러다 보니까 검토하는 양도 줄고 대부분 안전한 것들 위주로 선택하게 마련이니까 악화가 이루어지는 거죠.

 

핫도그 : 마감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열쇠고리 : 월평 같은 경우는 한 달도 안 되죠.

 

핫도그 : 네, 그건 한 달마다 나오니까.

 

열쇠고리 : 계간평도 한 달 정도밖에 안 주지 않아요? 한 달 반도 많은 거고 한 달이 안 돼요. 그리고 월간지는 열흘 이내에 무조건 써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핫도그 : 열흘 이내요? 그건 너무 힘들다.

 

열쇠고리 : 예전에는 열흘도 안 준 적이 있어요.

 

안경 : 그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원고료 아직도 안 받은 곳 있어요. ○○○요.

 

열쇠고리 : 그 잡지는 시스템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원고료를 잘 까먹어요. 안 주려는 게 아니고 까먹는 거 같아요. 얘기하면 줘요.

 

안경 : 얘기했어요.

 

열쇠고리 : 그래도 안 줘요?

 

안경 : 무슨 지원을 받는다고 하나?

 

열쇠고리 : 아, 그거 문제 있어요. 문예지들이 정부 예산 지원을 받기 때문에······. 가령 작가들 같은 경우에도 지난 하반기에 발표한 분들이 최근에서야 원고료를 받으셨을 거예요. 거의 5, 6개월 된 거잖아요.

 

안경 : 그 잡지는 나왔어요? ○○○?

 

WD-40 : 아직 안 나온 것 같은데.

 

안경 : 아직 안 들어왔죠?

 

WD-40 : 네.

 

안경 : 거기도 그거래요. 지원 때문에.

 

열쇠고리 : 시스템 자체가 기다리게 만들어버리니까 힘들죠.

 

안경 : 최근에 SNS에서 출판사인 ○○○에 대한 걸 봤거든요. 거기는 원고료가 언제 지급이 되고 정확하게 명시가 돼 있다는 거예요.

 

열쇠고리 : 대부분 안 쓰죠.

 

안경 : 그래서 요즘 굉장히 호평 받고 있어요.

 

열쇠고리 : 그리고 고료도 천차만별이잖아요. 매수는 항상 30, 40매인데 4만 원. 아니, 매수가 20매였나?

 

WD-40 : 20매에 4만 원이라고요?

 

열쇠고리 : 문예지인데요. ○○○가 제일 적었어요.

 

안경 : 저도 ○○○ 원고료 얘기할 것 많아요.

 

열쇠고리 : 그래서 저는 ○○○에서 오는 청탁을 계속 거절하니까 이제 청탁 안 하더라고요. 한번 평론가 물면 뽑아먹을 대로 뽑아먹고.

 

안경 : 언젠가는 제가 쓴 글이 카페나 블로그 여기저기에 올라와 있는 거예요. 그 글을 쓴 책도 아직 못 받았는데.

 

열쇠고리 : 자기 블로그에 올리는 분들도 있어요.

 

*

 

사회자 : 지난 대담에서 신인 작가 분들이 청탁 왔을 때 거절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입장인데, 사실 신인 평론가 분들도 그렇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월평이나 계간평에 비평 대상 작품을 문예지에서 정해서 보내주는 경우에 쓰기 어려운 입장에 있는 것 같고요. 지난 익명대담에서 나온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을 나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익명대담 3회에서 나온 이야기인데요. '비평이 일원화되어 가고 있다.'라는 의견과 '소설 비평도 시 비평처럼 작가의 세계를 조명했으면 한다.'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열쇠고리 : 정말 일원화되고 있다면 그건 좋은 방향이 아니죠. 특히 소설 같은 경우는 그런 식으로 이용당하기 좋은 것 같아요. 항상 실제로 그렇게 돼야 하는지 아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최근에 퀴어 담론이나 촛불집회와 같은 사회현상의 흐름들이 항상 담론을 만들게 하니까요.

 

WD-40 :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최근 비평이 특정 방향으로 가고, 하나의 담론으로 결집된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리고 그게 특히 소설하고 관련돼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그동안 되게 관성화 돼 있던 비평 담론에 페미니즘이 충격을 가하고 나서 적극적인 대응, 반성, 모색의 과정들이 같이 이루어져 있으니까 거기에서 엄청나게 비평적인 활력이 도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 영향을 받은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요. 특히 충격을 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품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소설 쪽에서 사례들이 워낙 많은 게 하나의 요인인 거 같아요. 그 자체는 활력 없었던 비평을 생각해 본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소설 비평이 실리는 지면의 특징이에요. 시 잡지들은 다양하니까 다양한 시인들을 조명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소설 평론 청탁이 들어오는 방식들은 특정 기획과 연관시켜서 그것에 대해 쓸 수 있는 기회를 주다 보니까······.

 

열쇠고리 : 지면도 적고요.

 

WD-40 : 네. 특집의 요구와 작품과의 연관성을 계속 설명하면서 글을 쓰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렇게 지면이 생산되는 환경도 고려해야 될 것 같아요.

 

열쇠고리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소설 비평이 실릴 지면이 늘어나는 게 가장 좋겠죠. 너무 적어요. 소설 비평만 하시는 분들 보면 거의 몇몇 분들 제외하고는 글을 쓰는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WD-40 : 소설 비평만 많이 쓰는 사람들, 혹은 소설을 위주로 비평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이 너무 많아서 자기 글 쓸 시간이 없다는 얘기하기에 공감하기 힘들 수 있거든요. 한 계절에 여러 편의 청탁이 몰려오는 일도 별로 없고요. 활발하게 활동하는 어떤 분이 학교 수업에 와서 했던 얘기가 일 년에 4편 쓰는데 생계가 되겠냐고 하셨거든요. 주로 소설 평론 위주로 쓰시는데······. 그 정도인데 시 평론 하는 분들은 한 계절이 아니라 한 달에 네 편 쓰는 분도 적잖이 있으니까 편차가 있어요. 시 잡지 생태와 소설 잡지 생태가 이질적이어서 발생하는 문제인 것도 같고요.

 

열쇠고리 : 그런 측면에서는 기형적인 것 같기도 해요. 사실 돈이라고 한다면 돈이고 자본이라고 한다면 자본, 출판계에서는 그게 사실 가장 많이 투여가 되잖아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비평 지면은 가장 적고.

 

WD-40 : 시에서는 시집과 해설이 같이 가는 게 전통처럼 잡혔는데, 소설은 2000년대 이후부터는 분리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그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거든요. 어느 시점부터는 해설을 붙이지 않는 작가, 혹은 해설이 필요 없는 작가라는 자체가 이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증명하는 형태로 보이는 경우도 있어서 확실히 소설 독자들에게 보이는 비평가 위치와 시 독자들에게 보이는 비평가 위치가 이질적이라 생긴 것 같아요.

 

안경 : 등단한 장르와 다른 장르 평론 쓰는 분들도 많잖아요. 제가 그래요.

 

열쇠고리 : 저도 시를 공부하다가 어쩌다가 소설 평론으로 등단한 거라.

 

WD-40 : 같이 한다고 하지만 사실 시 지면은 거의 안 들어와요.

 

안경 : 저도 소설 딱 한 번 썼어요.

 

열쇠고리 : 언젠가 한 번 소설 계간평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소설 작품을 다 읽어 봐야 하는데 시 평론 청탁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 비용도 많이 들잖아요. 우리나라는 문예지를 한 곳에서 몰아보기도 힘들어요. 국회도서관이나 가야 가능한데.

 

안경 : 저도 날 잡아 가거든요. 문예지 탐방하러. 다들 뵐 거 같아요. (웃음) 언젠가 국립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 다 같이.

 

열쇠고리 : 예전에 ○○○에서 간담회 할 때의 일인데, ○○○에 공간이 생겼잖아요. 여기에도 문예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전혀 소식이 없더라고요. 국회도서관보다는 나으니까.

 

WD-40 : 아마 조만간 몇 년 뒤에 생긴다는 ○○○······.

 

열쇠고리 : 그거 ○○○에 생긴다는 거 아니에요?

 

WD-40 : 네.

 

열쇠고리 : 그거 산꼭대기라던데.

 

WD-40 : 답답하네요. (일동 웃음)

 

열쇠고리 : 꼭대기라서 말이 많아요.

 

핫도그 : 국회도서관에는 문예지가 늦게 배치가 돼서······ 갔는데 없는 거예요. (웃음)

 

열쇠고리 : 문제가 많아요. 문예지를 볼 수가 없어요.

 

WD-40 : 못 읽는 거예요. 꺼내 보기 불편하게 바뀌어서. 예전에는 가서 긁어 와서 바로 볼 수 있었던 것을 30분씩 기다리면서 다음 책 기다려야 하니까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열쇠고리 : 사실 국회도서관이나 중앙도서관은 장서 보존이 목적이라서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거예요. 심지어는 ○○○이나 ○○○은 웹 서비스 한다고 했는데 안 갖다 놓고.

 

안경 : 우리가 제일 많이 읽어야 할 사람들인데 잘 안 되네요. 많이 읽을 조건이 잘 안 되어 있으니까.

 

열쇠고리 : 블랑쇼가 썼잖아요. "비평은 너무나 곤란한 작업이다. 비평가는 쓰는 것만 생각하느라 거의 읽지 않는다."

 

안경 : 저번 익명대담에서 나왔던 작가들이 불만을 갖는 게 이런 문제 때문인 것 같아요.

 

열쇠고리 : 자기 작품 안 읽어 주는 게 가장 불만일 거예요. 그런데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는데 사실상 엄청 어렵다는 거죠. 특히나 새로운 작품 발굴하는 건 비평가라면 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

 

안경 : 하고 싶죠. (웃음)

 

열쇠고리 : 환경이 그렇게 해주는 것을 잘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아요.

 

안경 :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잖아요. 우리도 연구자에 속하는데 학교에서는 평론을 실적으로 인정 안 해주잖아요.

 

WD-40 : 평론 실적에 대해서······ 사실 인정해 주면 아마 일반 연구자와 격차가 엄청날 거 같아서 안 해주는 것 같긴 한데······.

 

안경 : 비평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작품에 대한 선택과 배제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 선택에서 배제된 작가들이 불만을 가진다고 봐요.

 

열쇠고리 : 그리고 얼마 전에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비평을 보면 항상 ○○○ 아니면 ○○○만 보인다.

 

안경 : 우리도 소위 말하는 발굴 작업을 해서 숨겨진 좋은 작품들을 찾아서 쓰고 싶은데 그게 안 돼요.

 

열쇠고리 : 거기에는 소위 말하는 대형 문예지들의 책임도 클 거예요. 왜냐하면 그러한 문예지들이야말로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해 내는 데 앞장서야 하는데 오히려 잘나가는 작가들 위주로만 지면이 꾸려지니까요. 출판 사정과 연관이 돼 있긴 하겠지만······.

 

안경 : 잘 팔리는 책 위주로 되어 있죠.

 

열쇠고리 : 어떤 작가들은 한 번 이름 싣기도 어려운데, 어떤 작가들은 계절 한 번 건너뛰고 또 실리고 그런 경우들이 있으니까 아마 작가들이 그런 측면에서 불만이 많겠죠.

 

사회자 : 익명대담 3회에 참여한 작가 분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평론가들은 설득하기 편한 사람을 비평하는데, 발굴하는 데에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열쇠고리 : 꼭 아니라고는 할 수 없죠. 시간에 쫓기다 보면 관성적으로 가게 되는데 그것을 떠나서 시간 자체가 없으니까 더 넓은 지면을 볼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가령 "어떤 경향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라는 청탁이 들어오면 요구한 경향에 맞게 작가들 선별하다 보니까 배제되는 작가들이 있어요. 그 작가들의 작품이 좋더라도 주제에 맞춰 달라니까 어쩔 수 없어요.

 

WD-40 : 평론이 직면한 문제가 여러 가지 있지만, 독자들한테 어떻게 읽히느냐가 곤란한 문제거든요. 평론가들이 자조적으로 "내 것 누가 읽겠어." 하는 거요.

 

열쇠고리 : 어떤 자리에서 모 시인이 자기는 평론 안 읽는다고 너무 반복적으로 말하니까 불쾌한 거예요. 물론 당사자한테는 직접 얘기 안 했는데······. 저는 예전에 월평에 그 사람의 작품을 정말 공들여서 쓴 적도 있어요. 그런데 무시하는 발언을 하니까······. 물론 그 사람이 제 것을 안 읽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읽지도 않고 평론가들을 욕하니까 기분이 그렇죠. 차라리 읽고 비판하면 좋겠어요. 모호한 것 중에 하나가 지난번 대담에서 여러 글을 많이 읽은 것처럼 말씀을 하셨는데 모호하게 다가온 측면이 있다 보니까 어떤 것들을 읽은 것일까, 라는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그들도 소위 잘나가는 이름 있는 평론가들의 글만 찾아서 읽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괜찮아요. 그 정도는. (일동 웃음) 오히려 저희가 관심 있는 것은 정말 구체적인 어떤 맥락이라든가, 워딩이라든가, 그런 비판이고······ 모르겠어요. 그 대담으로 생각해 볼 여지도 많았지만 카더라와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안경 : 도대체 그들은 뭘 읽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

 

WD-40 : 한국 문학 안에서 가장 다독을 하는 독자들은 관계자들이잖아요. 카더라처럼 보여도 분명히 레퍼런스가 있을 테고, 그것들 중에서 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런 거보다는 비판이 너무 실체가 없다고 느끼는 거는 어떤 비판은 시스템에 가야 하고, 어떤 비판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가야 하고, 어떤 비판은 그 운영하는 사람이 해놓은 일에 대해 가야 하는데, 이게 그냥 비평가라는 형태로 뭉뚱그려서 그런 것 같아요. 이것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을 그동안 너무 안 한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 비판적으로 작업했던 분들 글을 봐도, 어떻게 보면 요즘 페미니즘 담론에서 얘기하는 비평에 대한 비판들이 흥미로운 것은 이전 세대하고 다르다는 거거든요. 2000년대 선배 분들이 했던 평론에 대한 비판들은 개인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식에 가까웠던 느낌이에요. 당신들이 얘기했던 문학적이라고 얘기했던 것과 지금 비평적이라고 하는 것하고 맞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거라면, 요즘에는 계속 이게 만들어진 과정 자체를 다시 의문시하잖아요.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평을 다시 비판하는 분들, 혹은 비평가 내에서 자기반성 하는 분들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거냐, 만들어진 제도 자체가 무언가를 지워 놓은 게 분명히 있는데 이게 뭔지 밝혀 놓고 우리가 얘기를 해야 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이전보다 이런 관련된 비판들이 진일보한 게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지점에서는 그게 페미니즘 입장이라는 한 담론에 기반 한 비판으로만 이해를 하려고 하지, 그게 문단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라는 점을 인지를 안 하고 예전 문법을 반복하는 분들이 있어요. 최근 추세에서 의미심장하게 비판하고 담론을 제시하는 것들이 있으면 감안해서 얘기를 확장하고 다듬어야 될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다시 또 예전처럼 누구누구가 잘했네, 못했네 하니까.

 

열쇠고리 : 전에 정말 뜨악했던 경험 중에 하나가 있어요. 중견 평론가들이 술자리에 왔어요. 그런데 한 평론가가 꼰대적인 발언을 하는 거예요. 지면을 주겠다, 이런 식으로요. 처음 보는 분들이라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상한 발언했던 분이 문단권력을 오랫동안 비판해 오고 여러 연구를 한 분이더라고요. 그분이 그런 권력자적인 발언을 하니까 이건 뭘까, 싶었어요.

 

안경 : 머리가 복잡했을 것 같아요.

 

WD-40 : 그 세대 비판들은 주로 잘 써야 된다는 게 초점인 느낌이에요. '우리가 문학적이라고 했던 게 있는데 상업적으로 타협한 게 아니냐.'라는 느낌으로요. 문학적으로 쓰자는 것 같은데, 물론 문학적으로 써서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시스템 때문에 만들어진 권력이 이런 거라면 시스템 자체도 다시 점검을 하고, 지운 것이 있으면 지운 것을 다시 확인하고, 개선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스템 자체에 대해 반성해야 되는데, 이게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반성과 비판으로 집중돼 버리면 결국에는 누가 그 시스템을 운영하느냐의 문제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런 식으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작가 분들이 가진 불만도 이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상황이 계속 바뀌잖아요. 출판 조건, 대학의 조건, 이런 게 다 바뀌면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어떻게 독자하고 만나느냐, 인데 이전에 독자를 만났던 방식이 지금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고, 어느 시점에는 그 방식에 대해 다시 고민에 들어가야 해요. 평론에 대해 비판할 때 그 방식에 대해선 제외한 상태인 것 같아요. 오늘날 다른 방식을 통해서 독자를 만나고 있다면 평론가들에게 요구할 역할도 바뀌어야 할 텐데 예전에 요구했던 역할, 윤리가 반복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는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얘기를 듣다 보니까 "왜 대체 독자 얘기를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느냐."라는 걸 문제 삼는 분도 있더라고요. 어쨌든 우리가 독자를 만나려고 문학을 하는 건데 왜 우리 글을 읽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진짜 그렇구나.' 하고 공감했어요. 비평가들에 대한 비판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예전 선생님들처럼 할 수 없잖아요. 예전처럼 할 수 없으니까 다른 방식으로 역할을 찾아야 할 텐데, '그때 그 어른들처럼 왜 못 하느냐.'로 들리는 순간이 종종 있긴 해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예전에 '문학은 이래야 하고 비평은 이래야 한다.'를 다시 반복하는 것은 지금은 꼭 그래야 되나 하는 생각이에요. 지금의 비평에게 요구해야 될 것들을 점검해야 할 것 같아요.

 

핫도그 : 그런 말씀을 들으신 적이 있다는 거죠?

 

WD-40 : 네.

 

열쇠고리 : 지난 익명대담에서도 ○○○의 비평을 들고 와서 비슷한 얘기를 작가들이 했죠.

 

사회자 : 또, 익명대담에서 여러 차례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비평적 감식안에 대한 비판이었어요. 반대로 평론하는 입장에서 작가의 작품에 실망했다거나 하는 부분은 없나요?

 

열쇠고리 : 잘 쓰는 사람도 있고, 못 쓰는 사람도 있고.

 

핫도그 : 좋은 글 보고 싶어서 하는 거죠. 저는 만약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 써야 한다면 다른 분들이 쓴 페미니즘 주제의 비평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안 읽는 편입니다. 등단할 때도 남의 비평을 거의 한두 편만 보고, 비평 틀만 봤어요. 그냥 글을 제 맘대로 쓰면 되는 게 비평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막 등단했을 때 누가 유명한지 모르니까 지금도 좀 뒤늦게 '아, 이분이 유명한 분이구나.'라고 알게 돼요. 제가 비평을 쓰는 이유는 좋은 글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커요. 남들이 어떤 시인을 인용하는지 보지 않고 나 혼자 작품만 보고 고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WD-40 : 저는 반대로 비평을 쓸 때 그 작가와 관련된 비평이란 비평은 전부 찾아보고 글을 썼거든요. 요즘은 힘들어서 그렇게까지 못 하는데······.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우리가 좋은 작품하고 나쁜 작품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떤 작품이 좋냐, 나쁘냐를 판단하는 건 교육 받은 결과잖아요. 우리가 쌓아 왔던 문학에 대한 관점 같아요. 문학사적으로 쌓여 온 것도 있지만 내가 쌓아 온 것도 있고, 제도적으로 쌓여 온 것도 있는데. 그 결과 안에서 내가 어떤 작품을 만나고 설명하고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어떤 작품이 좋다는 평가 자체가 저는 되게 역사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더 많은 관련된 평들을 찾아보면서 작업을 하게 돼요. 그런 것은 필요할 것 같은데, 이를테면 작가들이 자기반성을 한다고 했을 때 반성은 내가 안일했다거나 내 실력이 아직 그만큼 다다르지 못했다거나 하는 문제를 떠나서 내가 미적인 것들, 문학적인 것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어느 시점에 갱신돼야 할 때가 있잖아요. 문학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영원불변한 건 아니니까. 갱신되어야 할 시점에 갱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평가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이 안에서 자기 평가 기준이라는 건 당연히 세분화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기존에 비평가 분들이 학습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자기가 작품을 만나면서 학습한 방법일 수 있겠지요. 어쨌든 시간적인 경험에 따라서 내가 쌓아 온 결과물로 내가 비평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거라면, 결국 쌓아 온 것에 대해 질문 받게 되는 시점이 왔을 때 다시 쌓을 준비가 돼 있느냐가 비평가한테는 필요한 문제일 것 같거든요. 어쨌든 우리가 비평을 쓰는 작업도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문학관이라는 걸 쌓아올리기 위해 글을 쓰는 거잖아요. 좋다, 나쁘다고 얘기를 하는 게 주어진 뭔가를 확인받는 게 아니니까요. 작가들도, 비평가들도 그런 식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시간에 따라 쌓아 온 문학관이 있다면, 다시 또 시간의 흐름 때문에 갱신을 해야 할 시점이 오면 갱신할 준비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작품에 쓰는 시간이 적다, 많다, 공을 들였다, 아니다, 의 문제를 떠나서 그런 식으로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가 결정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핫도그 : 저는 견해가 조금 달라요. 사람마다 각자 좋아하는 취향이 비평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니까요. 물론 같은 문화공동체 안에 속해 있으니까 비슷한 접점이 많을 테지만, 그것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는 게 제 스타일이고요. 그래서 시인에 대한 정보도 최대한 차단하려고 하고 접촉도 차단하려 하고 비평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작품만 보고 하려는 게 제 태도라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작품이 저한테 안 좋을 때가 꽤 많은데, 거기에 대해서는 저는 언급을 아예 안 하거든요.

 

안경 : 저번 대담을 보면서 분명 그 작가들이 생각하는 평론가들은 영향력이 있는 평론가들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어느 정도 유명세가 있는 평론가들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작가들에 대한 불만 같은 건 없거든요. 그들이 평론가를 미워하는 것만큼 나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아요. 왜냐면 저는 그다지 영향력 있는 평론가가 아니라서. (웃음)

 

열쇠고리 : 사실 주례사 비평이라고 욕하는 것도 문제가 되려면 영향력 있는 평론가들의 상찬, 누구누구가 썼던 말, 이런 거잖아요.

 

안경 : 그리고 작가들도 영향력 있는 평론가들한테 작품해설을 맡기고 싶을 것 같아요.

 

열쇠고리 : 그래서 오히려 더 불만이 있는 거고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WD-40 : 주례사 비평하거나 너무 상찬이거나······ 그 용법에 대상이 되는 평론가는 상징적인 분들인 것 같아요.

 

열쇠고리 : 그리고 사실 동질화, 동일화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런 것 대부분 담론 비평이랄지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싸우다 보니까 하나로 묶이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 개별 작품 읽을 때 평론가들의 시선은 정말 제각각이고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평론가들도 한 사람의 독자로 읽는 거지 문학장을 대변한다는 식으로 읽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에.

 

WD-40 : 예전에 대담 읽다가 ○○○ 평론가가 했던 이야기 읽다가 빵 터진 적이 있거든요.

 

열쇠고리 : 그분은 항상 빵 터뜨리죠.

 

WD-40 : 별로 유머러스하지 않은데. (웃음)

 

열쇠고리 : (웃음) 유머러스하다는 게 아니고.

 

WD-40 : 어떤 대담이었느냐 하면, 그분이 했던 표현이 '이쯤 되면 랑시에르 나올 때 됐는데?'라고 말한 거였어요. 2010년대 초중반 비평들 얘기하면서 이쯤 되면 랑시에르 나올 때 됐다, 이런 식으로 획일화되는 것에 대해서요. 특히 작가 분들이 얘기하실 때 담론으로 끌어들인다는 얘기가 이런 부분인 거 같아요. 랑시에르가 나올 때 랑시에르에 대해 엄청 얘기 하고, 누가 어떻게 나오고, 이런 것들. 눈에 띄면서 반복되는 것들이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얘기보다는······.

 

열쇠고리 : 사실 그것에 대해 비판한 지점이 많죠. 해외 문학을 성급하게 들여온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했고, 너무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얘기들도 많고요, 랑시에르랄지 초반에 들뢰즈를 소환하는 방식도 그랬고, 아감벤도 그랬고.

 

WD-40 : 저도 랑시에르, 아감벤······ 이거 지워야 할 것 같은데. (웃음)

 

열쇠고리 : 랑시에르랑 아감벤 쓴 사람은 너무 많아요. 안 지워도 될 거 같아요.

 

WD-40 : 그렇긴 한데 찔려서. (웃음) 왜냐하면 그 대담을 랑시에르 인용한 원고 넘기고 나서 봤거든요. 랑시에르 나올 때 되지 않느냐는 대담을 글 쓴 다음에 읽어서 계간지 보다가 '내 얘기 하는 건가?' 싶었어요.

 

안경 : 이것도 유행 사조처럼 반짝했다가 사라질 듯해요······.

 

핫도그 : 2010년대 비평에서 랑시에르가 어떻게 활용됐는지 논문도 있더라고요.

 

WD-40 : 근데 더 재밌는 건 랑시에르를 비평 담론에서 끌어다 쓴 시점하고, 문학 연구에서 랑시에르를 끌어다 쓴 시점하고 엄청 겹쳐요. 아감벤 쓰는 것도 겹치고요.

 

열쇠고리 : 다 2010년대 초 무렵이죠?

 

WD-40 : 네. 그것도 사실 연구만 하는 분들이 비평가를 바라볼 때 그 묘한 감정들 있잖아요. 비평가들이 연구만 하는 분들 바라볼 때 느끼는 것처럼. 묘하게 서로 거리를 둔다고 하는 것 같은데 쓰는 것 보면 비슷비슷하게 되는 게 너무 많아서 그것도 좀 이상한 풍경인 것 같아요.

 

핫도그 : 해외 이론서를 많이 공부를 하다 보니까 새로운 번역서 나오면 몰려들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모르겠습니다. (웃음)

 

WD-40 : 학계하고 따로 얘기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정작 수입 되는 시기도 비슷하고, 활용하는 방식도 비슷하고, 유행 따르는 방식도 엇비슷하니까······.

 

열쇠고리 : 저는 그런 게 조금 불만이에요. 너무 성급하게 가져다가 쓰니까 가령 ○○○ 평론가도 글을 정말 잘 쓰지만, 그즈음에 나온 텍스트들에서 들뢰즈를 소환하는 방식을 보면 잘못된 사용들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물론 자기만의 이해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생각을 한 다음에 써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에요. 그런데 마치 액세서리처럼 바꿔 끼우는 방식이다 보니까······.

 

WD-40 : 저도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어떤 분 평론을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선 아감벤의 한계를 너무 덮어놓고 얘기를 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아요. 평론가들 내에서도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담론 유행이 너무 급속하게, 그리고 파급력 있게 오는 게 있고······ 그러고 나서 반성적인 작업도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다음 유행으로 갈아타는 시기가 빨라져 버리니까. 그것도 비평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열쇠고리 : 최근에 가장 불만스러운 것 중에 정동이라는 말의 사용.

 

WD-40 : 심지어 어떤 분들은 정동하고 감정을 구분 안 하고 쓰더라고요. 개념이 완전 다른데······.

 

열쇠고리 : 저는 정동이라는 말 자체에 불만이 있어요. 그러니까······ 번역 자체에.

 

WD-40 : (웃음) 저는 이론 자체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 정동 얘기도 어느 시점에 터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물론 정동을 꾸준히 공부하고 사용하고 번역하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보다 퍼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열쇠고리 : 특히 국문학이나 문학평론 하는 분들이 아무데나 정동이라는 말을 쓰니까······. 그냥 정서라고 해도 되고 감정이라고 해도 되는데 이상한 거예요. 사실 일부이긴 하지만.

 

핫도그 : 제가 정동을 잘 모르다 보니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냐 하면 '빨리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이 설명해 주는 것 보면 재밌잖아요. 글로 쓸 수 있을까, 하다 보니까 저도 실수를 하는 것 같아요.

 

WD-40 : 평론가들도 인정 욕구에 따라 움직이잖아요. 검증된 작가를 왜 고르느냐, 라고 했을 때 인정 욕구도 무시할 수 없을 거 같아요. 내가 담론 지형도 안에서 의미 있게 이야기 되는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이 안에서 내가 어떻게든 평가를 받고 주목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것들이요. 그 대상이 작가가 아니라 때로는 이론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 문학 시스템 안에서 신인들은 어느 분야나 그런 인정에 쫓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작가들도 예전 어느 대담에서 '요즘에 이런 주제로 써야 되는 것 아니야? 그래야 보는 것 아니야?'라고 했는데 신인 평론가들도 비슷하게 겪는 문제인 것 같아요.

 

안경 : 다양한 것, 그리고 말 그대로 발굴 작업을 원한다면 정말 우리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웃음) 마감에 쫓기고 소진되면 여유가 없잖아요. 힘들어서.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정말 담론 따라가지 않고 발굴하고 발굴할 수 있는 것들, 문제되거나 다시 진단받아야 될 것들을 하고 싶은데 그런 시스템이 됐으면 좋겠어요. 너무 우리를 소진시키는 처참하게 만드는 게 없지 않아 있어서. (웃음)

 

WD-40 : 묘한 게 있는데, 어느 분하고 얘기를 했는데 "비평가가 너무 많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안경 :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열쇠고리 : 시인이 훨씬 많지 않나요? (웃음)

 

WD-40 : 그러니까 묘한 건데, 비평가가 너무 많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적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열쇠고리 : 맞아요. 비평가를 구하지 못하니까 출판사나 잡지사를 통해서 아무나 찍는 방식으로 선정 받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사회자 : 마지막으로 익명대담에서 언급된 이야기를 하나 더 나눠 볼까요? '출판시장은 상업적으로 직결되는 작가를 원한다'와 같은 의견과 함께 소위 '스타 작가'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많더라고요. 평론가 분들은 어떤 생각인지요?

 

핫도그 : 다른 분들은 모르겠는데 저는 좋게 생각했거든요.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요. 특히 시는 독자들이 접근하기 꺼리는 장르이기 때문에 너무 어려워하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그나마 이 시인이 접근하기 좋아."라는 언급을 해주고. 그래도 그런 스타 작가가 있으면 관심을 갖게 되고 읽게 되고, 본인이 이해를 못 해도 쉽게 다가가니까 독자를 만들어주는 차원에서 좋다고 생각을 해왔어요. 물론 작가들은 거기에서 오는 시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소수일 수밖에 없잖아요. 다 스타라고 해버리면······. 어쩔 수 없는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WD-40 : 문예지가 너무 많아져서 생긴 문제가 모두가 스타가 돼서 아무도 어떤 권위가 없는, 그런 일들도 왕왕 발생했으니까요. 어쨌든 조명을 하고 소개해 준다는 것 자체가 잡지가 독자한테 작품과 작가를 연결시켜 주는 일이잖아요. 어디를 봐야 될지, 누구를 봐야 될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방향성을 잡아 주고, 정보 제공해 주고, 구매하고, 관련된 것을 알게 해주는 정보 전달인 것 같거든요. 지금의 출판 시스템 자체도 어쨌든 이것에 대한 정보들을 계속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보니까. 그 정보들 안에 당연히 작품에 대한 평가, 작가에 대한 평가, 문학적인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그런 얘기들까지 정보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어쨌든 이 시스템이 정보에 관한 거라면······ 그렇게 봤을 때 지금 이 정보가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는 그 자체로 원론적인 문제가 안 되는데 정보가 다양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을 작가들이 아쉬워하는 게 아닐까요. 세밀하게 스타 작가들에 대한 정보들이 만들어지고, 작가를 읽고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이 생겨나는데 그렇게 다양하게 정보가 제공될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잖아요.

 

열쇠고리 : 아마도 가장 불만이 크게 제기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나에게는 왜 이런 기회가 없는가.'

 

WD-40 : 아마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독자 리뷰가 어떻게 쓰여서 독자들끼리 선택을 하든, 소개를 하든, 그런 식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어쨌든 어디서 회의를 하고 결과에 따라 뭔가 정해지고 그 결과에 따라서 일을 진행하다 보니까 안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고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열쇠고리 : 출판시장에서는 자본의 논리도 따라야 될 것 같고.

 

WD-40 : 그런 것도 당연히 있죠.

 

안경 : 그런 맥락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에 착한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옷을 만드는 사기꾼 재단사가 나오잖아요. 사기꾼 재단사를 원하는 곳이 있어요. 혹은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사기꾼 재단사를 자처하는 평론가도 있는 것 같고. 물론 좋은 재단사도 있죠. 근데 이러한 출판 권력 시스템을 봤을 때 신인 평론가들을 자기 입맛에 맞는 출판 방향으로 재단하려는 경우가 있어요. 평론가들에게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경우를 들어 보니까요.

 

사회자 : 출판 시스템이나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상당히 많이 얘기하긴 했어요.

 

열쇠고리 : 이야기를 하면 더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일동 웃음)

 

WD-40 : 할 건 많죠.

 

열쇠고리 : 정리해야 될 부분도 있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끝이 없어요.

 

안경 : 어딜 가나 이런 문제는 있죠.

 

WD-40 : 예전부터 너무 이상하게 느낀 것 중에 하나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등단을 할 때 심사에 꼭 평론가가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평론가 심사에는 평론가밖에 없거든요. 그렇다고 다른 분야 사람들이 바로 올 조건도 안 될 것 같고. 편집자들이나 작가들. 우리나라 소설가나 시인들 중에 해당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평론가 심사할 때도 그런 분들이 들어가야 관점이 다양해지지 않나 싶어요.

 

열쇠고리 : 그리고 왜 평론가들은 평가를 안 받느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제가 제 글을 쓰면서 가장 듣고 싶은 얘기는 내 글을 누군가 읽고 어떤 것이든 이야기를 해주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경우는 정말 드물어요. 가끔 글이 마음에 들어서 고맙다는 정도예요. 물론 읽는 사람들이 그만큼 적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이야 뭐, 메타비평이라든지 쓰는 방식들이 있으니까 실제로 시인, 소설가 이런 분들이 평론가의 글을 읽고 왜 이렇게 썼을까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장이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해요. 특히 대담으로 하기 좋잖아요. 그런데 항상 대담을 보면 시 아니면 소설이에요. 왜 평론은 다루지 않을까요, 대담에서.

 

WD-40 : 피드백이 없으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도 확인받을 수가 없잖아요. 내가 잘했나, 못했나는 내 감일 뿐이고요. 피드백이 없는 조건에서는 잘할 분들은 잘하겠지만 대다수한테는 그런 피드백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떻게든 평론가도 피드백을 받아야 자기반성을 하든 발전을 하든 하니까요.

 

열쇠고리 : 그리고 이야기도 더 다양해질 수 있고요.

 

WD-40 : 너무 평론가들끼리만 알음알음 그 계절에 자기한테 오는 청탁 숫자 가지고 내가 잘하고 있구나, 아니구나, 가늠하는 거니까.

 

열쇠고리 : 그런데 그 숫자도 애매하죠. (웃음)

 

사회자 : 저는 평론가 분들이 자기 글에 대해 피드백을 받길 원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놀랐어요.

 

열쇠고리 : 글 쓰는 사람들 마음이 똑같지 않나요?

 

사회자 : 그렇죠. 그런데 제가 그런 걸 생각 못 했다는 게······ 어떻게 보면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평론도 하나의 창작이지만, 무의식중에 평론은 창작의 비중이 낮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열쇠고리 : 그것 때문에 최종 원고료 책정한 표를 보니까 평론은 소설보다 적더라고요. 그러한 것들이 그런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해요. 저는 이상했어요. 같은 산문인데 왜 다를까.

 

WD-40 : 기간 따지고 한 해에 생산할 수 있는 양을 따지면 소설이 훨씬 적으니까 이해가 되긴 해요. 다른 것보다 피드백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글의 성취를 진짜 많이 좌우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평론가들끼리라도 뭔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열쇠고리 : 평론가들끼리는 서로 잘 안 모이죠. (일동 웃음)

 

안경 : 그렇죠. 별로 없어요.

 

열쇠고리 : 사적으로도 잘 안 보고.

 

WD-40 : 따로따로 보니까.

 

안경 : 저도 합평 모임이 있어요. 시나 소설을 가져오면 이야기를 하는데 제 글을 나눠주면 조용해져요.

 

사회자 : 침묵해요?

 

안경 : 네, 얼마 동안 조용해져요. 속으로 '왜 조용하지? 내 글이 별로인가?' 싶어요. 한참 뒤에 제 글을 읽은 사람들이 "잘 읽었어요." 하고 페이지를 닫아요. 특히 시 쓰는 친구들이 그런 얘기를 덧붙이곤 해요. "이 긴 글 어떻게 써?" 이걸로 제 글 합평은 끝이에요. (웃음)

 

WD-40 : 너무 공감해요. 대학 때 글 쓰는 소모임이 있었는데, 대학 때부터 평론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 모임에서 약간 평론 자문 역할이에요. 거기에서 한참 얘기하고 나서 제 글을 보여줘요. 한번 보여주면 일동 침묵해요.

 

안경 : 그게 끝이에요.

 

WD-40 : 드물게 한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면 계속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나한테 남는 건 도대체 뭐냐. 그렇게 합평을 많이 하는데.'

 

안경 : 그런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평론 합평할 때 질문 해달라고 하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 작품을 안 읽어서 질문을 못 드리겠어요." 이런 말이요.

 

열쇠고리 : 사실 평론이라는 게 그 작품을 안 읽고도 읽을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거잖아요.

 

안경 : 그렇죠.

 

WD-40 : 그리고 읽어 달라고 쓰는 건데······.

 

안경 : 평론 쓰면서 이럴 때 기분 좋아요. 수업 중에 평론 발제를 했는데 그 수업을 들은 분이 제 글을 읽고 제가 다룬 작품을 구입했다는 거예요. 그럴 때 되게 기분 좋아요. 그러고 보면 평론가들이 제일 가난해요.

 

WD-40 : 평론가들도 같이 글 쓰는 사람이니까 글에 대해서 얘기가 들려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열쇠고리 : 담론적인 이야기만 자꾸 평론가들한테 요구하고······.

 

안경 : 항상 그런 방식으로 물어봐요. "요즘 잘나가는 거, 잘 팔리는 게 뭐야? 뭐 읽어야 돼? 어떤 작가가 좋아? 요즘 페미니즘 어떻게 생각해?" 이렇게 막연한 느낌의 질문을 많이 받아요.

 

WD-40 :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그냥 "요즘에 어떤 글 쓰냐?" 같은 한마디라도, 차라리 그게 듣고 싶긴 하죠.

 

안경 : 그게 낫죠.

 

WD-40 : 어쨌든 저희가 정보를 알려드리는 역할도 해야 하는데 그것만을 위해서 쓰는 건 아니잖아요. 전문 리뷰어로 평론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좀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느낌인 것 같아요.

 

WD-40 : 평론도 종류가 있잖아요. 해설도 있고, 주제론도 있고······.

 

열쇠고리 : 항상 보면 그것을 구분하지 않고 뭉쳐서 말하는 것 같아요. 가령 해설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 작품을 잘 읽어내고 "나는 이렇게 읽었는데 너는 어떻게 읽을 거니?" 하고 묻는 방식이 되어야 하는데 마치 평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러니까 정말 열심히 읽은 걸 해설로 내놓은 건데 어떤 사람은 '칭찬하는 거 아니야? 주례사 비평 아니야?'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글에는 호오의 감정은 전혀 없을 수도 있잖아요.

 

WD-40 : 그런 것도 아쉬운 거죠. 이게 좋다, 나쁘다, 라고 얘기하는 것은 들을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관되게 자기 작업을 해온, 비평가의 비평이라는 게 있을 것 아니에요. 문학관이라는 게 있을 거고요. 그것을 읽어 달라고 쓰는 건데 어느 시점에서는······ 특히 지난 대담도 보다 보면 그 이야기는 쏙 빠지고 '이 비평가는 이런 문학관을 가지고 작업하는데 동의하냐, 안 하냐' 이런 이야기가 아니고 '이 비평가는 좋은 작가 찾았어, 못 찾았어?' 해버리면 진짜 너무 시스템 관리자 역할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스템은 너희들이 굴리니까 잘 굴리고 있어?'라는 건데······. 시스템을 굴리는 역할도 비평가한테 부여된 게 현재 모양은 맞긴 한데, 그거랑 별개로 어쨌든 그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글을 쓸 사람들이었으니까 거기에 관심 가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안경 : 평론이라는 영역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열쇠고리 : 선입견을 가지고 글을 읽으니까 더 안 읽히죠. 자기 작품 얘기하는 거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건데······. 물론 그중에는 아닌 분들도 있긴 있어요. (웃음)

 

WD-40 : 쉽게 잘 쓰는 분도 있는데 그런 분들만 평가받는다는 아쉬움도 있죠. 평가를 다양하게 받는다면 오히려 평론이 더 다양해질 수 있고, 다양한 평론이 나와야 평론도 기대하는 역할에 맞춰서 담론 위주로만 작가를 소개하지 않고······ 다른 일반 작가들에 접근해 달라고 얘기를 하려면 담론 위주 평론들 말고 다양하게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피드백이 너무 담론에 대해서······.

 

열쇠고리 : 그것을 중시하는 게 있죠. 문예지들도 기획만 중시하고 월평, 작가론은 소홀히 하고. 그런 측면이 있죠.

 

안경 : 진단, 평가, 해설. 이 세 가지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고 봐요. 평론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목표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중 하나만 원하는 경우가 있어요. 대부분 우리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평론하는 사람은 평가만 하는 사람이라고.

 

열쇠고리 : 사실 일반적으로 평론 글들은 평가 글이 별로 없잖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평가하는 글이 필요하긴 해요. 너무 없으니까. 주례사 비평만 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가 있으니까.

 

안경 : 모두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열쇠고리 : 그래서 작가들도 비판하는 비평이 없으니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쓸 만한 지면 자체도 많지 않아요.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안경 : 평가를 해야만 하는 주제도 한정되어 있어요.

 

열쇠고리 : 가령 월평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런 게 이루어지려면 그걸 맡은 평론가가 기획위원이어야 하고 그리고 그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제공해 줘야 하죠. 그런데 힘들죠. 예전에 ○○○이 그런 식의 평론이 가능했던 것은 돈의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때는 지면이 한정돼 있었고 그만한 지면이 제공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하면서도 그들도 많이 싸웠잖아요.

 

*

 

번외_평론가의 일상에 대해

 

WD-40 : 다들 하는 얘기지만 평론가들은 잘 안 다니고 마주칠 일이 없으니까요.

 

안경 : 저도 그래요. 문인들 만나느냐고 물어보면 만나는 사람 없다고, 친한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해요. 정말 별로 없어요. (웃음)

 

열쇠고리 : 거의 동굴 같은 데서 은둔해 있죠.

 

사회자 : 저는 한 자리에서 평론가들 이렇게 많이 보는 거 처음이에요. (웃음)

 

WD-40 : 그런 관계만 있는 것 같아요. 거의 선후배들만 있고······. 되게 수평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너무 적으니까 그것도 나름 문제인 것 같아요. 아니면 아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분들, 단일한 목적으로 모이는 순간만 있지 교류하는 자리가 없는 것 같아요.

 

사회자 : 이게 평론가들의 성향일까요? 물리적인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서 그런 걸까요?

 

열쇠고리 : 둘 다일 것 같아요. (웃음)

 

WD-40 : 사교적인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열쇠고리 : 대부분은 짐 가방을 항상 들고 다니고.

 

안경 : 저도 대부분 도서관이나 집 안에만 있어요. 저 척추 교정도 받아 본 적 있어요.

 

WD-40 : 어깨와 척추와 목이 항상 안 좋고.

 

열쇠고리 : 열어 보면 책, 노트북 있고. 옷은 다 정장이고.

 

핫도그 : 다 똑같구나. (일동 웃음)

 

안경 : 편하게 입을 트레이닝 바지를 가방에 따로 갖고 다닌 적도 있어요. 가끔 이럴 때도 있어요. 밤늦게 도서관에 가서 다음날 새벽 첫 버스 타고 집에 올 때. 아, 다들 비슷하구나.

 

핫도그 : 저도 이제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웃음)

 

안경 :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반려동물 사진 SNS에 올리잖아요. 저 못 키워요. 오히려 반려동물이 나 때문에 고독사로 죽을 것 같아서.

 

열쇠고리 : 그러고 보니까 평론가들 중에 애완동물 키우는 사람 본 기억이 없어요.

 

안경 : 저 키우는 거 있어요! 식물 추천합니다.

 

열쇠고리 : 식물도 죽을걸요? (일동 웃음) 제 방에는 빛이 안 들어와요.

 

안경 : 그런데 정말 곧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너무 속상해요. 혼잣말로 욕하며 글 써서 그런가.

 

사회자 : 작가들은 동물 많이들 키우던데.

 

WD-40 : 동물 키우려면 집에 있어야 하는데, 학교 가서 일해야 하고, 거기에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안경 : 손 많이 안 가는 식물들을 키워요. 가끔 멍하니 식물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도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어느 정도 정화돼요.

 

열쇠고리 : 저는 먹을 것만 키워서. 바질 같은 것.

 

핫도그 : 농사를 지으시네요.

 

WD-40 : 평론가들은 취미가 없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열쇠고리 : 있어도 할 시간이 없어서 다 접죠. 저는 원래 되게 많았어요.

 

사회자 : 못 하고 계신 거예요?

 

열쇠고리 : 먹고살아야 해서 요리를 하긴 하는데.

 

안경 : 저는 꾸준히 피트니스 등록하고 운동을 해요.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WD-40 : 보통 헬스 하는 이유가 살아남으려고······. (웃음)

 

안경 : 이번에는 종목을 복싱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에요. 가뜩이나 두뇌를 혹사시키는 일만 하는데 운동까지 안 하면 멘탈 상태가 가루가 될 것만 같아요.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어서.

 

WD-40 : 취미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고, 나가는 곳도 없고······.

 

열쇠고리 : 저는 언젠가부터 수집으로 바뀌더라고요.

 

안경 : 수집도 괜찮아 보여요.

 

열쇠고리 : 항상 비싼 것을 수집했는데, 그것도 종류가 바뀌더라고요.

 

안경 : 무념무상의 상태에 오를 수 있는 단순한 취미가 있어야 해요.

 

열쇠고리 : 사실 글 쓰는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는 게 제일 좋아요. 틈날 때마다 많이 걷거든요. 그럼 좀 개운해지고.

 

 

 

 

 

 

 

 

 

 

 

 

 

 

 

김남숙

대담 기획, 원고 구성 / 김남숙

2015년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양안다

대담 기획, 원고 정리 / 양안다

1992년 충남 천안 출생. 201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창작동인 '뿔'로 활동 중. 시집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현재 《문장 웹진》 청년 작가 간사.

 

WD-40

대담 참여 / WD-40

사는 게 삐거덕거린다.

 

열쇠고리

대담 참여 / 열쇠고리

열쇠고리입니다. 지우개로 하고 싶었는데, 지우개가 보이지 않아 열쇠고리로 하게 되었습니다. 열쇠가 걸려 있지는 않습니다.

 

핫도그

대담 참여 / 핫도그

아침마다 핫도그를 먹는다.
아파트 관리센터에서 전화가 오다 식탁을 마감칠하다.

 

안경

대담 참여 / 안경

아무래도 평생 눈을 혹사시키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문장웹진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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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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