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친구까지 삼십 센티

  • 작성일 2021-01-01
  • 조회수 1,824

[제38회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 아동문학 부문 장원? 〈동화〉]

 

 

친구까지 삼십 센티

 

 

안보라

 

 





? 수상자의 목소리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교실 문을 열어젖히자 맞은편 창으로 바람이 가득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과 교실을 나가다 멈칫했다.
    ‘문어왕!’
    뒤를 돌아보니 창가 책장 위에 놓인 문어왕이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뛰어가 문어왕을 바람이 덜 닿는 자리로 옮겨 놓았다. 친구들 가운데 선 주리가 핀잔했다.
    “김희진, 뭐 해? 그깟 플라스틱 쪼가리가 뭐 중요하다고. 빨리 가자. 선착순 오십 명이랬잖아.”
    새로 연 분식집 이야기였다. 분식집에서는 오늘 하루만 떡볶이 한 접시 가격에 두 접시를 준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주리는 아침에 자기 생일 파티 때 초대했던 친구들을 불러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사실 나는 주리 생일 파티에 끼지 못한 아이였다. 그런데도 주리는 나를 특별히 떡볶이 모임에 데리고 가 주겠다며 인심을 썼다.
    “넌 발이 빠르잖아. 네가 달려가면 일단 떡볶이 두 접시는 우리 거지. 잘 부탁해.”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얼마나 설레던지. 주리는 우리 5학년 3반 여자아이들 중에 제일 인기가 많다. 뭐든지 잘했고 뛰어난 말솜씨로 아이들을 휘어잡았다.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문어왕이 제대로 서 있는지 거듭 확인하고서 창문을 닫았다.
    “미안해, 주리야. 다 끝났어. 얼른 갈게.”
    서둘러 발을 떼는데 난데없이 비명이 들렸다.
    “아야!”
    화들짝 놀라 두리번거리다 은서를 발견했다. 은서라고? 워낙 작고 조용한 아이라 곁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은서는 허리를 반쯤 숙이고서 내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 가방에 머리카락.”
    그러고 보니 은서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가방의 지퍼 손잡이에 걸려 있었다. 당황해서 지퍼를 만지작거리자 은서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야! 멈춰!”
    나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 은서와 주리를 번갈아 보았다. 상황을 파악한 주리가 이마를 찌푸렸다.
    “재수 없게 하필 쟤 머리카락이. 쟤는 왜 긴 머리를 저렇게 풀고 다닐까? 귀신처럼. 희진아, 시간 들이지 말고 대충 끊어.”
    “그, 그럴까?”
    손을 뒤로 돌려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려는데 은서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올려다보는 은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손에서 힘이 빠졌다.
    “주리야, 안 되겠다. 먼저 가. 잘 안 되네.”
    “그럼 우리끼리 간다. 쳇, 괜히 기다렸잖아. 희진이만 아니었으면 진작 줄을 섰을 텐데.”
    주리는 신경질을 팍팍 내며 무리를 이끌고 사라졌다.
    ‘주리랑은 망했네. 혹시 이번 일로 화나서 나를 따돌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은서처럼 되는 건가.’
    나는 멍하니 은서를 내려다보았다. 은서는 우리 반에서 유령 같은 존재다. 몸이 약해서 학기 초부터 학교를 자주 빠진데다가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라서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더군다나 은서와 모둠 과제를 하던 주리가 은서 같이 답답한 애는 혼자 놀게 둬야 한다고 성질을 부린 뒤로 아이들 대부분이 은서를 없는 아이 취급했다. 나? 나는 은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냥 은서에게 관심이 없었달까.
    머리카락을 빼려고 애쓰던 은서가 입을 달싹였다.
    “미, 미안해.”
    “네 잘못도 아닌데 뭘. 바람이 불어서 걸렸나 봐. 그런데 여기서 뭘 하고 있었어?”
    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시당한 듯해 속이 꼬였다. 이래서 다들 은서를 싫어하는 걸까.
    ‘흥, 나도 너랑 말 안 할 거야.’
    나는 가방을 앞으로 돌려 매고 머리카락을 빼는 데 집중했다. 지퍼 손잡이에 단단히 엉킨 머리카락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나는 부아가 나서 팔을 휘둘렀다.
    “에이, 안 되잖아. 팔만 아프고. 앗!”
    내 손에 맞은 문어왕이 쓰러지려고 했다. 은서가 재빨리 문어왕을 붙잡더니 내 눈치를 보았다.
    “저기, 희진아. 이게 뭐야? 아까 미술 시간에 엄청 열심히 만들던데.”
    나는 은서랑 말 안 할 거라고 다짐했던 걸 싹 까먹고서 흥분했다.
    “문어왕이야. 오늘 미술 주제가 재활용 만들기였잖아. 난 페트병을 활용했지. 음, 너 <오션 어드벤처>라는 게임 알아? 문어왕은 거기에 나오는 괴물이야. 여덟 개의 다리로 폭탄을 던져. 얼마나 무섭다고.”
    나는 신이 나서 한참을 더 떠들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흠흠. 나는 게임을 좋아해. 게임 이야기만 나오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숨찰 정도라니까. 은서 너는 뭘 좋아해?”
    은서가 눈을 크게 떴다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나는 식물을 좋아해.”
    그러면서 책장 위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우유갑을 꾸며 만든 화분이 있었다. 은서는 집에 있는 다육식물의 잎을 떼어서 심을 거라며 눈을 반짝였다.
    “잎꽂이라고 하는 건데…….”
    은서가 조근조근 설명을 이었고 나는 은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퍼 손잡이에 엉킨 머리카락을 조금씩 풀었다.
    잠깐 목을 주무르는데 새삼 은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은서와 나 사이의 거리는 삼십 센티쯤. 이렇게 가까이에서 은서를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래로 처진 흐린 눈썹, 쌍까풀 없는 긴 눈, 주근깨가 앉은 콧잔등. 예전에 주리가 은서 얼굴을 두고 한 말이 떠올랐다. 주리는 은서 얼굴이 어딘가 이상하고 기분 나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닌데. 아주 평범한데.’
    드디어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지퍼와 얽혀있던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꺾이고 뭉쳐 다리 많은 곤충처럼 보였다. 한숨이 나왔다.
    “가위로 잘라야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가위로 자를걸. 아팠지?”
    은서가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희진이 네가 조심조심 풀어 줘서 하나도 안 아팠어. 고마워. 내 머리카락을 소중히 대해 줘서. 또좋아하는 게 뭔지 물어봐 줘서.”
    거기까지 말한 은서가 창에 바짝 붙어 서서 운동장을 내다보았다.
    “아까 뭘 하고 있었냐고 했지? 나, 저 밖을 보고 있었어. 친구들과 함께 집에 가는 아이들이 부럽더라.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어. 혹시 여기서 뛰어내리면 아이들이 나한테 관심을 기울여 줄까? 나를 미워하던 아이들이 후회할까?”
    “뭐? 안 돼!”
    나는 깜짝 놀라 은서의 팔을 잡아당겼다. 은서가 창에서 한 발 떨어지며 나를 돌아보았다.
    “걱정하지 마. 지금은 그런 생각이 다 날아갔으니까. 너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정말 즐거웠거든. 조금만 더 이대로 있을 수 있다면 하고 바랐어. 욕심이겠지만.”
    갑자기 가슴이 따끔따끔 아팠다. 나는 가방을 다시 뒤로 메며 불쑥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나랑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갈래?”
    은서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행사는 다 끝났을 텐데…….”
    “괜찮아. 한 접시 사서 나눠 먹자.”
    은서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은서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맞닿은 은서의 팔이 참 따뜻했다.

 

 

 

 

 

 

 

 

 

 

제38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수상작

구분 산문 아동문학(동화)
장원 박다은, 「지나가는 것」 오유경, 「미완의 영화」 안보라, 「친구까지 삼십 센티」
최영희, 「백발의 기수」
우수 김현진, 「달리기」 전앤, 「영화」 -

 

   《문장웹진 2021년 01월호》

 

추천 콘텐츠

산책과 가을의 일

[에세이] 산책과 가을의 일 박주영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했다. 여름이 시작되고는 햇빛이 사라진 밤 산책을 하다가 그나마도 열대야 때문에 멈춘 지 오래되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 전 일어났고 스탠드를 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 어느새 창밖이 밝아지는 걸 보다가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바깥으로 나가 걷기로 했다. 산책은 어슬렁거리며 그냥 걷는 것이지만 소설가의 산책에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산책과 걷기를 구분해서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산책이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동하는 것이라면 걷기는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장 염두에 둔 움직임이다. 여름이 아니라면 산책은 주로 오후나 해질 무렵에 한다. 늦게 자고 오전에만 일어나도 뿌듯한 사람이라 일어나자마자 소설을 쓰고 쉴 즈음이 대개 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쓴 것을 생각하다가 빈틈을 메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심하기도 한다. 여름 해가 뜨기 전 오래간만에 소설을 생각하며 산책을 한다. 나는 문학 전공도 아니고 소설 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된 후 소설가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알고 싶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2개의 대답을 기억한다. 한 분은 그냥 걷는다, 라고 답했고 한 분은 안 되어도 앉아서 써야지 어떡해, 라고 했다. 두 분 다 그때 20년 가까이 소설을 거뜬히 써온 분이었다. 나는 2개의 답을 지금껏 생각하고 있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답을 안다고 정답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자주 책상 앞에서 벗어나고 걷는 것이 아니라 누워 있는다. 그냥 진짜 누워만 있는데, 요즘은 소설 쓰는 일에 자주 지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또 한 분의 조언이 생각난다.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해라, 그러지 않으면 장편소설을 쓸 수 없다. 여기의 조건은 ‘나이 들수록’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했고 처음부터 장편소설을 썼던 나는 그 조언이 그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젊지도 않고 약해 빠졌는데 장편소설을 쓰는 데 그리 힘이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조언의 참 의미는 어떤 고비마다 왔다. 나이는 한 살씩 먹는 게 아니라 쌓여 있다가 한꺼번에 온다는 걸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어깨가 아프다. 남들은 여름휴가를 가는 시기 나는 병원을 다녔다. 의사는 어깨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특정 자세를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세는 하필 내가 반평생을 취해 온 자세이다. 지금도 나는 그 자세이다. 자판을 치고 노트에 글을 쓰려면 취할 수밖에 없는 자세. 그리고 의사는 옆으로 눕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렇게 누운 자세로 책을 읽었다. 너무 크고 두껍고 무거운 책만 그 자세로 읽을

  • 관리자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