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데올로기를 두려워하는가?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작성자 버틴
- 작성일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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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강렬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전 빨치산으로, 열렬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런 그는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전봇대에 머리를 박아 사망한다. 20세기는 반공과 공산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한 세기였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며, 여러 사람들이 억울하게, 혹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21세기에 와서도 사회주의를 적대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나는 제목의 의미가 아버지가 이런 차이트가이스트, 시대정신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생각한다.
한국전쟁을 그린 소설 <광장>에서는 이러한 대사가 있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광장>에서 화자는 완전히 자유롭고 중립인 곳, 바다로 몸을 던진다. 남한도 북한도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이 원하는 사회는 되지 못한다. 그들의 종착지이자 안식처는 죽음이라는 결말 뿐이다. 한편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엄밀히 따지자면 다르지만, 여기서는 편의를 위해 구분하지 않기로 하자. 실로 사회주의는 유령과 같아 실체도 없고, 수명도 다했지만 여전히 세상을 떠돌고 있다. 아버지는 이렇게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인해 자신을 유령처럼 계속 따라다니던 ‘빨갱이’라는 수식어에서 해방되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한 시대를 정의한 이념에 대해 묘사하고 있음에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사회주의란 이념 자체보다는 아버지와 그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은 진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이념의 본질을 꿰뚫어보는데 성공했다.
현대 정치 구도는 ‘탈정치’가 주도한다. 포퓰리즘의 부상과 정치 혐오로 인해 정치, 혹은 이념은 눈엣가시로 취급된다. 최근의 문화에서는 조금이나마 정치적인 내용이 보이면 ‘정치 묻히지 말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하지만 조지 오웰은 ‘문학 활동은 정치와 구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의 삶 또한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 없이 살아갈 수 없으며 이데올로기 또한 인간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개인의 정치적인 면에, 이념의 인간다운 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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