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골목길
- 작성자 이거되나
- 작성일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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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골목길》
아(我) - 암캐
한 블록을 가서 왼쪽으로 돌고, 이제 두 블록을 가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또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내가 익숙해하여 마지않는 어느 한 골목이 나온다. 나는 이 골목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 즉 “나의 골목”이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나의 골목에는 다른 골목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이 골목에는 ‘그들’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족―정확히는 나의 부모님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이 골목에는 어두움이 없다는 점이다. 어두움은, 없어야 마땅한 것이다.
내가 이 골목에 ‘나의’라는 관형어를 붙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한 이 년쯤 됐을까.(살아가는 기간에 비해서는 굉장히 짧다.) 내가 이 골목을 처음 발견한 당시에는, 정말 빨강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지러웠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빨강.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어지러운 점에 마음이 끌렸다. 그 끌림에 저항하지 않고 나는 골목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 빨강이었던 골목은 차차 녹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바뀌어 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회색이 되었다. 이 골목이 처음 회색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내게 야유를 보내는 듯했다. 그들은 뭐라도 색이 있는 골목이 더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회색을 좋아하는 것을.
회색은 색이 없으면서도 어둡지 않아서, 어렸을 적부터 죽 좋아해 왔다. 칙칙할망정 어둡지는 않다. 색이 없을망정 결코 어둡지는 않다. 그러한 회색이야말로 최고의 색상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회색이 내 골목의 색이 되었을 때, 나는 그야말로 환호했다. 어디서 파티라도 열 듯했다. 아니, 자그마하게나마 실제로 열었다. 판자 위에 빵 몇 조각과 우유 한 컵을 놓고, 두 명이서 파티를 즐겼다. 한 명은 나고, 다른 한 명은 개다. “야”라는 이름의 개.
‘야’는 하얀 진돗개, 그러니까 흔히 ‘백구’라고들 부르는, 그런 시골 개다. 다른 백구들과 차이가 있다면, 조금 작고, 조금 더 아프다는 것뿐이다. ‘야’와 만난 지는 아직 한 달 정도밖에 안 되고, 당시에는 더욱이 얼마 안 되었는데, 즉 그때의 만남이 거의 초봉(初逢)이었던 것이다.
“너도 먹을래?”
한참 파티 중이던 내가, 멀리서 어슬렁거리던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싫으면 말고.”
“……으음.”
그는 망설이다가, 이윽고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빵 조각을 집어 왼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에게 빵 조각을 올린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손에 주둥이를 대고, 빵 조각을 물었다. 씹고, 결국에는 삼켰다. 그의 하얀 몸체에는 앙상한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
“하나 더 먹을래?”
나는 다른 한 조각을 다시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가 “으응” 하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빵 조각을 내밀었다. 그는 기쁜 듯했다.
우유마저 그에게 줘 버리고 나서야,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이름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리라고 다짐했다.
‘야’라는 이름은, 그런 후 정말 별것 없는 이유로 지어졌다. 정말 말 그대로, ‘야’ 하고 부르면 나를 따라오기에, 그저 그렇기에 ‘야’라고 이름 지은 것이었다.
야는 나를 잘 따랐다. 내가 “야!” 하고 부르면 날 따라왔고, “여기.”라며 내 옆을 콕콕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곳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야의 모습은 뭐랄까, 퍽 듬직해서, 그를 내 작은 몸으로 꼭 안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가끔 들었다. 물론 진짜 안으려고 하면 그쪽에서 피해 버렸기에, 그가 죽을 때까지, 나는 한 번도 그를 안아 본 적이 없다. 시체를 안는 것도 ‘그를 안는 것’이라고 치지 않는 한.
개가 죽은 것은 저번 주의 일이다. 다른 개하고 싸우기라도 했는지 상처투성이에다 피로 범벅이었던 그의 몰골이 기억난다.
야하고는 가끔씩 만나서 빵 같은 것을 나눠 먹으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몇 번은 야의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 그럴 때면 야는 꼬리를 휘적댔고, 나는 그것을 좋다는 표시로 알아들었다. 기분이 썩 좋게 되곤 하였다.
힘없이 픽 쓰러진 야는, 식견이 짧은 내가 보기에도 정말 안돼 보였다. 죽어간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하기에 나는, 한 달 가까이 되는 기간에 줄곧 쌓아 왔던 정 때문인지, 뭐라도 할 게 있을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지 계속 고민하며 허둥지둥하였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그저 죽어가는 야의 곁에 쭈그려 앉는 것이었다. 흰 털이라 그런지 빨간 피가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나는 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나보다 큰 듯한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약간 하얀 끼가 서려 있었는데, 그 눈동자의 하양은 야의 털과는 다른 하양이었다. 조금 더, 바다 깊은 곳에 있는 것처럼, 흐물흐물하고, 또 흐리멍덩했다. 그런 하얀색은, 회색이라도 난 싫었다.
야는 내 곁에서 몇 번 숨을 헐떡거리더니, 곧 소리를 멈췄다. 그러고 보니, 야의 짖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조금 후회되었다. 그 소리를 들었다면, 멍멍이든 컹컹이든 왈왈이든, 그 소리를 들었다면,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그를 기억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고작 짖는 소리 한 번 안 들었다고 언젠가 기억에서 잊혀 사라질 것에, 나는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어, 아직 온기가 남아 있던 시체를 감싸 안았다가, 금세 포옹을 풀고 일어섰다. 옷에 빨간색이 묻어 있었다. 징그러웠다. 조금 구역질을 할 듯했다.
이윽고 시체 썩은 내에서 벗어났다. 주변을 한번 둘러봐 보니 아무도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이 쏟아졌다. 하여서 나는 종내 길바닥에서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잠에서 깨자 나는 이유 모를 유쾌한 기분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볕이 쨍쨍했고, 색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나는 그것이 참 싫었으면서도 유쾌했다. 잿빛은 회색과 뜻이 완전히 같은데, 아무래도 회(灰)라 하면 재보단 회색이 더 먼저 떠오르는 탓에, 적어도 내 마음속에선 잿빛과 회색의 뜻이 완전히 달랐던 때문이다. 즉, 나는 재를 싫어했다. 재란 것은 미상불 타고 남은 무언가일 뿐, 그 밖에는 무엇도 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아무래도 그렇게만 뵈었다.
일어나고 나는 나의 골목을 산책했다. 집에 돌아가자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나의 집은 너무나도 빨간색이었다. 적적하여 아무도 듣지 못하고 또 아무도 보지 못할 집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집은 부서져 있다. 폐허뿐이어서 뭐 하나 건질 것이 없다. 하기에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네요.”
그리고 산책 중, 뒤쪽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나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잘 있니?”
“응.”
“그럼 됐다.”
하는 대화가 들리기에 나는 그만 퍽 기분이 상해 버렸다. 부모님은 나의 이 회색빛 골목길을 이해 못 하셨다. 그런데 저들은 퍼그나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나의 환시(幻視)라 하여도 말이다. 하여서 나는 바닥에 침을 퉤 뱉고, 투덜거리며 길을 지나는 것이었다.
길을 지나니 이제 골목은 회색빛이 아니었다. 뒤는 아직 회색빛이었지만, 앞은 형형색색의 빛깔이 세상을 휘감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 회색빛은 없었다. 있었다면 나의 골목을 이렇게 꾸밀 필요도 없었으리라.
시계가 째깍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기에 나는 그를 보았다. 아침 일곱 시였다. 시계에서 햇살의 여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햇볕이 따가웠기 때문이고, 하늘에 오직 파랑만이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이후 이러한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만, 이적[此時]에는 역시 아녔다. 이적의 나는 마냥 순수하였다. 꼭 티 없는 옥처럼. 나는 걸었다.
걷다 보니 집이 보였다. 이때에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었다. 나는 집을 보며, 그 안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했다. 엄마, 아빠, 남동생, 여동생……. 주택이라 안에는 거의 내 혈육뿐이기에, 썩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조그마한 구역감과 함께.
원색적인 빨강으로 칠해진 대문 앞에 서서 어물거렸다.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곳을 떠나서 어디로 갈까 하는 고민을 우물우물할 뿐이었다.
결국 대문 앞을 떠났다. 목적에 대해서는 내 내적 회의에서 합의된 바가 전혀 없었다. 하기에 나는 그저 하염없이 길을 걷고 또 걷기만 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느 목적을 줄곧 간직하고 있었다. 그 목적은 전적으로 아무와도 관련하지 않은 것이었고, 그 무엇도 아닌 것이었고, 어디에서도 그 자취를 찾아보지 못하는, 즉 실행에 옮겨진 바가 없는 것이었다. 하기에 나는, 어느 하늘을 보았다. 하늘[空]과 그것은 대부분 텅 비었다는 점에서 같았다. 흘러간다는 점에서 또 같았고, 투명하다는 점에서 또 또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서,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보는 양했다.
하늘에 비친 나는 마치 개인 듯했다. 전에 내 우유를 먹었던 ‘야’와는 달리 작았고, 어딘지 사나운 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사나운 데엔 아무래도 사나운 데가 없는 듯해서, 싸움 따윌 하면 흔히들 얕보일 모양새였다.
갑자기 어딘가서 탄 냄새가 났다. 누군가 화장이라도 하나 해서 냄새가 나는 쪽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느 여인이 화장을 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하나 그림자뿐이었다. 긴 머리칼, 빨간 눈썹, 푸른 눈동자 등 여자라는 티는 명확히 났지만, 역시 그림자여서 이 여자가 정확히 누군지는 대관절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빵이나 먹을래?”
하고, 한번 말을 걸어 보았다. 그러자 그 여자는,
“빵? 웬 빵?”
하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림자의 얼굴 부분에 구멍 두 개가 뚫렸다.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왜인지 내 속을 반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여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하, 네는 그 아이구나―골목을 모두 회색 물감으로 칠했던 그 아이구나! 이야기는 잘 들었단다. 최근에 개를 잃었다며?”
그 말에 나는,
“네에.”
“슬프니? 개가 죽은 것에 슬픔을 느끼니?”
여자의 불명확한 목소리가 싫었기에, 나는 부러 대답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는 화가 난 듯 질문을 계속 반복해 댔다. 쉰 목소리로, 미친 듯이, ……니? ……니? 하고. 이런 꼴은 조금 짜증스러웠다. 이 여자답지 않은 꼴인 듯했다. 죽을 만큼 안 어울렸고 또 사람답지도 않은 꼴이었다. 그저께까진 이리 미치지 않았는데 하는, 어느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뜻 모를 소리였다. 나는 이 여자와 초면이었으므로.
나는 그 지랄에 끝내 못 이겨 대답했다.
“슬프잖아요.”
지금 생각하기를 말이 썩 모호해서 아무래도 화낼 만했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런 맞소리가 없었다. 입을 꾹 닫아 버렸던 것이다. 하여서 나는 꽤 곤란한 정이 들었다. 이 미친년을 어떡하나 하고.
그러는데 갑작스레 뒤에서,
“아구 우리 언니……”
하는 다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자 하니 꽤 앳됐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 목소리는 이어서 울렸다.
“우리 언니가 죄송해요. 연인이랑 헤어지고 미쳐 버려서.”
앞을 봤을 때 목소리의 주인이 안 보여서 설마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역시 어린아이의 그림자가 보였다. 금발에 녹청색 눈, 분홍빛 옛 옷과 안개가 잔뜩 낀 밤하늘은 아무리 보아도 여자아이인 듯했다. 그 나어린 그림자에 대고 나는 손을 흔들었다. 여자아이는 이곳에서 처음 보는 듯했다.
“괜티 않아요.”
하고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마찬가지로 모호한 말이었지만, 어느 쪽으로 해석되든 상관없었다. 그저 장난이었던 때문이다.
두 그림자가 사그라들었고, 나는 또다시 길을 걸었다. 나와 해와 그림자 밖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 환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다 보면 심심할 새가 없었다.
문득, “잘 있니”라는 질문에 “응” 하고 대답했던, 그래서 “그럼 됐다”라는 말을 들었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응” 하는 목소리와 아까 여자의 목소리가 썩 닮아 보였다. 이에 나는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기도 전에, “‘그럼 됐다’라고 하던 목소리는 누구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목소리는 앳되긴커녕 새되지도 않았다. 그 목소리는 오히려 남자의, 어딘지 아버지스러운 데가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 동네에서 나는 그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동네에 ‘아버지’는 있으려야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로서 그 목소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고민해 봤자였는데, 이윽고 그 주인을 찾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 일은 동네 밖에서였다. 나는 걷고 걷다가 종내 동네 밖으로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걷는 동안에 ‘……니? ……니?’ 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와서 조금 머리가 아파 왔다.
동네 밖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푸르름과 펼쳐짐에 눈이 이끌려, 하늘을 하염없이 치어다보았다. 반히 치어다보았다. 하늘이 내 눈 안으로,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가슴이 왜인지 답답했고, 갑갑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숨이, 당장이라도 내 몸을 해쳐 버릴 듯이 팽창해 왔다. 심장이 곧 펑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하늘은 광활하였다.
심호흡을 하니 곧 진정되었다. ……푸른 하늘은 시원한 동시에 갑갑했고, 너른 동시에 비좁았다. 하기에 나는 상쾌한 동시에 괴로운 것이었다. 마치 몸 하나 제대로 펴지 못할 비좁은 방에, 둘러진 빈틈없는 여섯 백벽(白壁) 속에 갇혀서는, 공기에 숨 막힐 듯한 희박함에 그리고 코에 닿은 무릎에 심히 갑갑해지고, 이윽고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답답해 미쳐 버리게 된 듯했고, 그곳에서 나는 어둡고 어두운 공간의 비좁음에 위를 치어다보지만, 그곳도 역시 어둠뿐, 숨 막히는 검음뿐인즉, 굽은 검정뿐이었다.
푸른 하늘은 계속 푸르렀다. 구름 한 점 없었고, 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동네 위편에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푸른 하늘은 줄곧 비어 있었다. 공허하였다. 나는 그 공허한 하늘을 마냥 걸었다. 바닥도 뭣도 없어서 내 걸음은 그저 제자리인 채였다. 그러나 동네는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돌연 치기가 올라 ‘그깟 빨강은 빨리 사라져 버리라지.’ 하고 퉤 침을 뱉었다.
내뱉어진 침은 저 끝없는 아래로 떨어져 가다가, 곧 하늘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하릴없이 쪼그마해지는 그 모습은 꼭 멀어져 가는 하얀 구름인 듯싶었다.
걷다 보니 어느 골목이 보이기에 그곳으로 달렸다. 회색빛 골목이었다. 도착하고 길목을 둘러보니, 이곳이 바로 나의 골목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 앞에는 그 여자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나는 여자를 보고 한번 말을 건네어 보기를,
“누구?”
여자는 대답하길,
“알아맞혀 봐.”
하기에 나는,
“모르겠는데…….”
하며 여자의 외면을 구석구석 살피는 한편 여자의 말투가 어딘지 바뀌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새에 여자는 내 눈동자의 구름[轉]을 보며,
“어딜 갔다 온 거니?”
하는데, 여자와 나의 눈높이는 썩 같아서, 여자가 나의 눈동자를 보는 동시에 내가 여자의 눈동자를 보노라면, 즉 여자의 눈에 검게 비치는 나를 보노라면, 나는 꼭 깨끗한 거울을 보는 듯한 것이었다. 하기에 나는 여자의 몸을 살피는 것도 잊은 채 여인과의 눈맞춤에 푹 빠져 버려선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바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나와 여인은 한움직임 없이 계속 서로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문득, 이 여인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하다는 오싹한 감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느닷없이,
“이제 가자.”
“응, 그러자.”
“응…….”
하는 동시에 ‘언제부터 꿈이 깨였던가.’ 하며 의아해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나는 거실 불을 켜며,
“별일이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집 안을 보니 참을 수가 없어졌다. 정신이 흐리멍덩하여 여태 어땠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새 누나는 사라져 있었기에, 나는 밖으로 뛰쳐나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나의 골목으로 갔다. 눈은 하얀색이기에, 회색이 닿으면 안 됐다. 가는 길에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골목의 위쪽―길 위와 벽의 위편―은 흰빛이었다. 하얀 비누 거품이 일은 듯했다. 하여서 나는 담장 위로 끝없이 길게 이어진 눈 더미에 한번 손을 씻어 보는 것이었지만, 역시 차가울 뿐, 오히려 더 더러워지는 듯하였다.
손을 털고, 눈이 쌓인 길에 앉아선 다리를 쭉 폈다. 내 몸에 닿은 눈이 사르르 녹아 대서, 또 줄곧 내리는 눈이 썩 거세서, 옷은 축축이 젖어 갔다. 아무래도 좀 추웠다. 나는 마냥 좋아라 했었다.
전에는 눈을 썩 좋아하던 듯싶었다. 그저 희어서 좋았을까. 그저 흰빛이 나서 좋았을까……. 나는 그때 눈을, 그것도 흰 눈을 좋아한 까닭을 도저히 모르겠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쩌랴, 어차피 과거일진대. 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축축하고 차가운 느낌에 괜스레 불쾌해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걸어 나간 곳에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누나, 그러니까 여자―여인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언니에게,
“여태 어디 있다가…….”
그러자 언니는,
“이곳에 있었어, 줄곧.”
“줄곧? 그런데 왜 난 못 봤지?”
“글쎄. 너만이 알겠지.”
언니는 그러고 저편에 흰빛으로 빛나는 고층 건물들을 쳐다보았다. 고층 건물에는 사람이 한 명도 살지 않는 듯했다.
나는,
“왜 언니는 언니인 거야? 내 언니도 아니면서.”
하면서, 내심 그녀가 허깨비인 것은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야말로 허깨비였는지, 언니는 내게로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는 언니 손의 감각을 온전히, 눈과 추위에도 방해받지 않은 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언니는,
“나도 알아.”
하곤, 내 뒤편으로 걸어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지만, 언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골목이 여전히 빨간색이라는 것을. 여전히 모든 것은 흐리고, 흐리멍덩하고, 희읍스름하다는 것을.
모든 게 다 눈 때문이었다.
타(他) - 흰 눈자락
몇 달 전의 일이다.
박 군은 이 추운 날에 눈을 꼭 보겠다고 기어이 밖엘 나가 버린 것이었다. 박 군의 여동생은 오빠가 자길 안 끼여 준다며 투덜대는 양했지만, 그녀도 속으론 오빠가 실은 이 집에 불만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아는 터였던지라, 굳이 그를 막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할 때,
“밤까진 돌아와야 해.”
하고 당부할 뿐이었다.
박 군이 골목으로 갔을 때, 그의 개는 죽어 있었고, 사체는 두껍게 쌓인 눈에 파묻혀 있었다. 그는 슬퍼하며 개의 사체를 어디에 묻어 두었다.
개의 사체를 묻고, 박 군은 울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기분을 굳이 표하진 않았는데, 얄팍한 허영이나 자존심이 든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이 볼까 두려웠던 때문이었다.
박 군네 사람들은 자기 가족을 흔히 ‘짜증 나는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는 아무래도 아빠와 엄마 역이 좀 컸던 듯싶다.
그의 아빠는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동시에 보수적이고 자신만의 정의를 주창하던 사람이었다. 단적으로는, 썩 짜증스러운 사람이었다. 그의 주변은 온갖 사람들로 넘쳐났으며, 그 사람들이란 대부분 어디 회사의 이사거나 기자거나 하는 분들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곁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애초에 회사를 다니지도, 무슨 TV 같은 데에 출연하지도, SNS 같은 걸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하는 거라곤 어디 공원에서 사람들한테 여러 불만을 마구 표출해 대는 짓거리뿐이었다. 하는데 어떻게 주변이 그런 사람들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그는 “당신들 알 바 아니오.” 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는데, 이는 자기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아내든 자식들이든 그가 대관절 무슨 사람인질 모르는 것이었다.
이런 박 군의 아빠는 개를 파묻던 그 광경을 보면 박 군에게 뭐라 뭐라 잔소리를 할 것임이 썩 뻔했다. 박 군의 아빠는 평소에 동물에게 정을 쏟는 것을 아주 혐오했기 때문이다.
박 군의 엄마는 반대로 아주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이렇다 하면 이렇다고 믿고, 또 저렇다 하면 저렇다고 믿는, 그런 사람 말이다. 해서 엄마는 어릴 적부터 속임을 많이 당해 본 것이었는데, 그럴 때면 박 군의 아빠가 그녀를 야단하곤 하였다. 박 군이 자기 집안을 싫어하는 데에는 이런 엄마의 성격이 한몫하는 듯했다. 즉, 엄마가 너무 ‘바보 같았던’ 것이다.
이런 박 군의 엄마는 개가 파묻히던 그 광경을 보면 필시 마구 울게 되었을 것이다. 개가 불쌍하다, 개가 불쌍하다 하면서.
물론 아빠가 조금 올곧다고, 엄마가 조금 바보 같다고 박 군이 밖에 나갔던 것은 아니다. 그 정도는 우리 대부분이 하는 생각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이유가 어떻든, 사체를 묻은 박 군은 발걸음을 옮겨 계속 자신의 골목을 걸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무덤가였다. 골목에 웬 무덤가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곳은 무덤가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박 군에게 그곳은 명명백백한 무덤가였다. 자신의 일부가 그곳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덤가에는 쓰레기로 가득 찬 종량제 봉지 여럿이 벽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모두가 눈에 뒤덮여서는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박 군은 그런 모습을 보고 씩 웃음을 지었다. 어딘지 흡족한 데가 있는 웃음이었다. 그는 그런 웃음을 짓고, 그 눈 무더기 중간 어디쯤에 손을 집어넣었다. 비닐봉지의 어느 튀어나온 부분이 그의 손과 만나면서 그에게 야릇한 감촉을 주었다. 이 오묘한 감촉이 박 군에게는 너무나 좋은 것이어서, 웃음이 그의 입 밖으로 흘러넘치기까지 했다.
갑작스레 그의 왼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해서 그가 왼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웬 어린아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 어린아이는 한동안 박 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박 군 역시 한동안 그 어린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무언의 대화 같은 것을 나누는 듯했다.
“아무것도 없어요.”
마침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이에게 닿았던 박 군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그렇네요.”
“죄송해요.”
아이는 무표정했다.
“죄송하긴 뭘. 괜찮아요.”
박 군은 느닷없이 웃음소리를 냈다. 아이의 눈으론 썩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아이가 떠나고, 박 군은 또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눈은 박 군이 집을 나서기 전에 그치고 만 것이었기에, 박 군의 눈 발자국은 아마 내일이 되어도 남아 있었으리라. 그의 골목은 거의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번에 박 군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어느 언덕의 기슭이었다. 그의 골목에서는 꽤 떨어진 곳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박 군의 체감상, 골목에서 언덕기슭까지 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듯했다.
언덕기슭에서 박 군은 난데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엔 영락없이 미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노래의 가사를 듣다 보면, 어느샌가 흠뻑 빠져 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박 군의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던바 그 노래를 들을 사람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노래에 흠뻑 빠져 버릴 사람도 일절 없었다. 그래서 박 군은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아무도 진창에 흠뻑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가사에는 ‘나’라는 말이 참 많이 들어 있었다. ‘나와 너’, ‘나의 손을 잡고’, ‘나는 너를’ 등……. 박 군이 이런 노래를 특히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유행가에 원체 ‘나’라는 말이 많이 들어갔던 것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인 듯싶었다.
노래 한 곡을 열창하고 나서야 박 군은, 비로소 의지를 다졌는지 언덕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언덕에는 그가 언젠가 묻어 두었던 보물이 있었다. 눈에 파묻힌 쓰레기 봉지 속에서 그의 손끝과 닿았던 것 같기도 그러지 않은 것 같기도 한 보물이, 주인에게 끔찍이 생매장당해 땅이 그를 가혹하게 유린한 역사를 지닌 가혹스러운 보물이 있었다.
언덕마루에 묻힌 그 보물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박 군의 심장은 더욱더 세게 죄어 왔다. 심장이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치는 듯 더욱더 세차고 빠르게 뛰었고, 몸은 점점 자기 주인의 말을 못 듣게 되었다.
종극에 그의 몸과 심장은 완전히 불구가 되어서 그는 아주 움직일 수조차 없어졌다. 결국 그는 이제 안 되겠다 싶어 고개를 뒤로 휙 돌렸다. 그러자 박 군에게는 박 군이 보였다. 박 군은 박 군을 보고 조금 화가 났는지 조금 성내는 투로 말했다.
“여태 어디 있다가…….”
“줄곧 이곳에 있었어.”
“줄곧 있었다면 왜 나는 너를 못 본 건데?”
“글쎄. 너만이 알겠지.”
박 군은 그러고 저편에 흰빛으로 빛나는 고층 건물들을 쳐다봤다. 고층 건물에는 사람이 한 명도 살지 않는 듯했다.
박 군은 “왜 언니는 언니인 거야? 내 언니도 아니면서.” 하면서, 내심 그가 허깨비인 것은 아닐까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야말로 허깨비였는지, 그는 그에게로 다가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는 손의 감각을 눈과 추위에도 방해받지 않은 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는.
사랑해 마지않는 그는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앞에 보인 자신이 허깨비임을 안 때문이다. 왜 이 때문에 울적한 기분이 드느냐 하면 그 누구도 말할 수가 없고―다만 박 군 자신만이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박 군은 이제야 말한다. “언덕 위에는 살구색 안개가 끼어 있어.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그래서 오직 나만이 헤칠 수 있는 안개가.” 그러나 노인은 말이 없다.
노인은 박 군을 마주 보고 있다. 마치 박 군이 자기 손자라도 되는 양, 있는 것 하나라도 더 털어내 박 군을 사랑으로써 보듬어 줄 심정으로. 한편 박 군은 노인을 보고 있지 않다. 박 군의 시선은 노인의 밖에 자리한 채이다. 그런즉 박 군과 노인의 시선은 서로 어긋나 있다. 바로잡힐 수 없는 어긋남이다. 이는 아마 노인이 굳어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노인이 자신이 굳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노인은 앉아 있던 데에서 일어나 박 군에게로 다가간다. 박 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노인의 늙음에는 어떤 기묘한 힘이 있는 듯하다.
박 군의 시선에서 노인의 얼굴이 태양의 위치에 이르렀을 때, 노인은 말한다.
“나는 모르겠단다.”
박 군은 그 말에 조금 짜증이 난 듯 노인의 태양처럼 빛나는 눈에 자신의 눈을 겹친다. 박 군의 눈에 노인의 눈이 비치고, 노인의 눈에 박 군의 눈이 비친다.
“몰라도 돼요.”
“네 아비 된 노릇인데…….”
“몰라도 된다니까요.”
“그래두…….”
이런 대화로 보면 아무래도 박 군이 노인의 위에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박 군은 철저히 노인의 발아래에 있다.
“알려고 하지 마세요. 이해하려고도 하지 마세요.”
그리 말하고 박 군은 말을 덧붙이려다가 만다.
노인의 입은 이제 다시 열리는 법이 없다.
“나도 알아.”
하곤, 박 군의 뒤편으로 걸어갔다. 박 군은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으니, 박 군은 어느새 그녀가 되어 있었다. 세상이 온통 하얀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군은 여전했다. 아무런 깨어짐도, 아무런 바뀜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있음뿐이었다.
여동생은 안방 침대에 앉아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모두 어디론가로 가 버려서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듯했다. 왜인지 그 익숙한 고요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하기야 평소에는 오빠―박 군이 고요를 느낄 틈을 숫제 만들지 않긴 했다.
박 군은 여동생과의 놀이를 곧잘 하였다. 그가 여동생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원체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침묵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침묵은 박 군과 여동생 모두에게 미움받았다. 박 군은 침묵을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미워했고, 여동생은 침묵을 너무 넓다는 이유로, 즉 빈 데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미워했다. 그래서 여동생은 집을 가득 채운 고요 속에서 빈 곳을 보았고, 결국 겁에 질려 집을 뛰쳐나가고 말았다.
밖은 어느덧 밤이었다. 온통 고요해 들리는 소리라곤 저 멀리에서 들리는 박 군의 사부작거리는 발소리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소리가 너무나 울려 어디서 들려오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하기에 여동생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구성원을 모두 잃은 집이 종내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해서 여동생은 아무래도 박 군을 찾거나 새로 살 집을 찾거나 할 수밖에 없는 듯싶었다.
여동생은 조금 전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무작정 걸으려 했다. 얼마 전부터 불안한 기색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워낙 의젓하고 활달한 박 군이었던지라 어떻게든 해 주겠지 하는 얕은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여동생은 곧 오빠의 발소리가 너무나 울려 들려오는 방향을 알 수 없었음을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기에, 길이라도 잃지 않도록 오빠―박 군이 집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기로 하였다.
한편 박 군은 무심코 무언가를 밟은 느낌이 나 발밑을 확인해 보았다. 발밑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혹시나 해서 발을 들어 신발 밑창을 보았을 때, 박 군의 눈에 강렬한 빨강이 비쳤다. 밑창이 온통 눈을 찌를 듯한 빨간색으로 물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박 군은 깜짝 놀라 뒤로 고꾸라졌다. 미상불 이 근처에는 빨강이 없을 터였다. 동물이라곤 곤충밖에 없는 이 언덕에 아빠와 같이 빨간 생명은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하기에 박 군은 우선 심호흡을 한 후, 혹여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어 신발 밑창을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빨강은 여전히 빨강인 채였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은 상관없었다. 어디로 가든 빨강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었다. 뜨거운 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신발 밑창에만 있었던 빨강은 그 세를 신발 전체로, 발목으로 불려 댔다. 박 군은 자기 발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꼈다. 그의 달음박질이 점점 느려져 갔고, 눈 발자국 사이의 거리가 점점 짧아져 갔다. 군에게 빨강은 너무도 무거운 것이었다.
이윽고 빨강이 그의 다리를, 그의 가슴을, 끝내는 그의 모든 것을 뒤덮었다. 그는 그 빨강의 무게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빨강에 온통 삼켜진 것이었다.
빨강의 뱃속은 어두컴컴했기에 박 군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디선가에서 이상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의 살냄새가 풍겨 왔다. 밤이 아뜩한 검은색을 온 세상에 흩뿌려 댔다. 검은빛 안개였다.
검은빛 안개 속에는 여동생이 있었다. 그녀가 제자리에 줄곧 있으려 한 건 사실이나 안개가 그녀를 잡아챈 것이었다.
평소 밖을 잘 나가지 않던 그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음 속에서 길을 헤매다가, 어렴풋이 어느 빨간 형체를 보았다. 그 빨간 형체는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듯싶기도, 어디론가로 계속 걷고 있는 듯싶기도 하였다. 여동생은 그런 애매모호한 거동을 보며, 안개가 너무 껴서 별것이 다 헷갈리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물론 안개가 없었어도 형체의 거동은 똑같이 도는 듯 나아가는 듯 애매모호하게 보였을 것이다. 형체, 즉 박 군을 먹은 빨강은 정말 도는 동시에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박 군―빨간 형체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묘한 불쾌감이 그녀를 마치 감싸 안는 듯했다. 여긴 우리 집이야, 우리의 집이야 하며 노래 부르는 빨강의 모습이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었고, 여간 볼 뽀뽀를 해 주고 싶은 게, 여간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것은 달콤했다.
빨강의 안은 검은색이었다. 자기가 회색인 줄 아는 검은색이었다. 박 군은 그런 검은색의 모습에 구역질이 났다. 그것은 최악의 위선이었다. 회색이라도 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의 위선적인 기만이었다. 그를 알기에 박 군은 결국 토를 하였다. 토사물이 검은 바닥에 내던져졌다.
아버지였다. 그리고 어머니였다. 모든 빨강과 검정은, 박 군으로서는.
모두가 눈 때문이었다.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눈 따위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영원히 회색이었을 텐데, 하고 박 군은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만일 흰색이 없었다면 밝기로써 줄지어지는 비극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고, 검은색은 회색의 일종으로 여겨졌을 것이며, 박 군 또한 회색의 일종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한순간 나타나는 새하얀 환영 하나 때문에 세상의 모든 비극이 초래된 것이다.
하기에 박 군은 골목길을 걷는다. 그녀는 이제 확고해졌다. 그의 안에 있자, 안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자, 하는 말이 머리를 빙빙 돌고 있다.
그녀의 골목은 여전히 회색이지만, 골목을 거닐고 있는 사람은 모두 빨간색이다. 빨간색이기에 검은색이고, 검은색이기에 흰색이다. 눈인 듯 새하얀 빛이다. 세상은 이 빛을 돌고, 이 빛으로 나아가는 듯싶지만, 박 군이 보기에 실상은 명백히 정반대다. 실은 이 새하얀 빛이 세상을 돌고,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며, 사실 많은 이들이 이를 알고 있기까지 하지만, 그들은 그저 두려워서 말을 않는 것뿐이다. 실제로 그렇게 박 군은 생각하며, 즉 이것이야말로 박 군의 생각인데, 여러분은 이것을 그저 검정에 지친 아무개의 한탄으로 봐도 무방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박 군은 이제 영원한 빨강―속에 회색을 지녔을 뿐인 위선적인 빨강이니까. 그래, 위선적인 빨강이니까……. (공산주의자가 들이닥쳐 빨갱이를 외친다.)
막간 - 광대 - 헤엄
물고기는 뭍에서 숨을 못 쉰다. 그래서 곡예를 하는 광대마냥 파닥거린다. 우리가 보기엔 퍽 안타까운 광경일 수도, 그저 평범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보기엔 아니다.
한번 상상해 보라, 평생을 물속에서만 살아 온 물고기가, 육지와 첫 대면을 하는 장면을. 그 물고기는 타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어올려져, 실명할 듯한 태양빛에 정신을 못 차린다. 의식이 흐려지고, 손끝 발끝에서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뒤늦은 후회가 마음속에 밀려든다. 밀려든 후회는 검은색이기에 자꾸만 무언가를 집어삼키려 든다. 배경색에 밀려 위축될지라도 자기 몸안에 있는 것들은 끝까지 뱉어내지 않는다. 후회도 마찬가지다. 묻힐지언정 사라지지도, 다른 무언가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이(爾) - 그러나
부모님이 형을 혼냈다. 혼이 난 이후로 형은 뭔가가 변해 버렸다. 나는 정확히 무엇이 바뀐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이.
한 달이 지고 형은 집을 나갔다.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났다는 게 남긴 종이의 내용이었다. 부모님은 물론 형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나도 누나도 마찬가지로 믿지 않았다.
언젠가 가족회의를 열어서 형에 대한 처분을 논의하기도 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망할 놈의 변태 새끼가 감히 우리 집안을, 우라질…….”
나는 이런 아빠의 말―이라기도 뭣한 내뱉어짐―을 듣고 한번 아빠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검은 이미지, 그래, 검은색뿐이었다. 무언가 어두침침하고, 갈피를 못 잡겠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굽은 검정뿐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짖음을 듣고,
“그러지 마세요…… 우리 애가 불쌍해요…….”
하며 이상한 목소리로 흐느끼는 것이었는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흐느낌이지만 전혀 흐느낌 같지 않았던 탓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흐느낌에 또,
“우라질…… 망할……”
하며 말도 제대로 못 잇고 있었다. 나는 이런 우리 부모님의 꼴이 퍽 우스웠다. 연신 흐느끼는 어머니, 백치같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버지, 줏대 없이 흔들리기만 해서 실컷 이용당하기만 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심하게 꾸짖으면서 실은 자신도 빌어먹을 놈이라고 자꾸만 자책하는 아버지, 거미줄 쳐진 집구석, 거미는 익충이라며 잡지 말라고 하는 아버지, 거미가 불쌍하다고 연신 흐느끼는 어머니, 이런 우라질, 망할, 새끼, 얼굴에 드리워진 검음, 잡음, 또다시 흐느낌, 있다는 것조차 잊어먹었는지 일절 무시당하는 우리, 속으로만 이를 바득바득 갈 뿐 저항할 생각은 또한 일절 안 하는 우리, 이 망할 집구석, 우라질…….
하는데 대뜸 누나가 손을 들곤,
“전 숙제해야 해요.”
하기에 아버지가,
“가족보다 숙제가 중요하더냐. 네 오빠가 집 나간 게 뭣 때문으로 보이냐. 집 나가서 개고생을 할 게 뭣 때문으로 보이냐!”
하며 소리를 지르기에 나는 귀를 막았다. 누나는 이 소리 지름에,
“내일까지 해야 한단 말예요.”
“모임 끝나고 하면 되지.”
어머니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시고들 있었다.
“오래 걸리는 거예요.”
“오래 걸려 봤자 한 시간이나 되냐? 한 시간이면 잠 좀 줄이면 할 수 있는 거지 않냐? 고작 한 시간 때문에 이런 소중한 시간을 버리려고 하는 거냐?”
“다섯 시간은 걸려요.”
“이년이 거짓말을…….”
하고 아버지가 또 욱해서 화를 내려고 하니 어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우리 불쌍한 애들한테 그러지 좀 마요…….”
하며 아버지를 말리는데 이것 참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관이로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가 불쌍하다는 거야.”
“이런 늦은 시간까지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게 불쌍하잖아요?”
“학생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뭘. 애초에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잖아. 여덟 신데.”
“여덟 시면 늦은 시간이지 딴 시간이에요? 아아 우리 불쌍한 딸, 흑흑…….”
“이 여자가 또…….”
아버지는 그러며 어머니의 등을 토닥였다. 사랑이 그 토닥임에 포함돼 있을는지 나는 잘 짐작해낼 수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엄마도 이렇고 우리 정이도 나갔으니, 에잇, 어쩔 수 없지. 오늘은 그만 파하자꾸나.”
하고 내게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딘지 낯뜨거웠다.
실종 신고도 되지 않은 채 형은 우리 가족에서 빠르게 잊혀 갔고, 이윽고 완전히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형이 워낙 우리 가족에 맞지 않는 위인이기는 했다. 가족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서는 형을 잊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형은 ‘문제아’라는 말의 정의에 완벽히 부합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형이 집에서 내쫓길 만한―그래, 사실상 형은 우리들, 정확히는 우리 부모님에 의해 내쫒긴 것이었다―사람이었나 하면 그건 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만날 울고 화내기만 하는 우리 부모님이었다. 아니, 우리 부모님도 집에서 내쫓길 만하지는 않았다. 우리를 생활케 해 주는 분들이 아니던가. 누나와 나는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가족 중 집에서 내쫓길 만한 사람은 없다.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형에게서 편지가 온 건 그런 생각을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편지는 오직 나에게만 몰래 온 것이었다. 나는 이 편지를 적어도 누나에게는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그러기엔 내용이 너무도 피상적이었다. 괜히 보여줬다가는 내용이 멋대로 곡해되어 형에 대한 오해를 가증할 수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야’라는 개를 만났어.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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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되나
- 2024-04-28
〈바다〉 1“어디서 왔어?”으레 그런 것이었다.“저쪽.”나는 저곳을 가리킨다. 어렴풋이, 빛바랜 색으로 보이는 섬. 그곳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나의 친구가 있고, 내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 나는 없다. 나는 떠나가 버렸다. 물론, 별일은 아니다. 으레 있다.……“전학 온 지 한 달인데, 뭐 불편한 건 없니?”“딱히요.”“그렇구나. 선생님은 요즘 네가 너무 혼자서만 다니는 것 같아 걱정이란다.”“신경 쓰지 마요. 어련히 잘살고 있으니까.”“지후야, 나는 네 선생님이란다…….”다음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과거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듯한, 그래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는 듯한…….그러나 하늘은 푸른빛이었다. 아콰마린 따위는 보석이 아니었다. 나는 그만 그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만다. 눈앞에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눈부셨던 하늘이.하늘은 이제 회색이다.하늘은 내게로 고갤 돌리며 말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너무나 기가 찼다. 그러나 하늘은 맑게 개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날씨는 더 이상 비가 아니었다. 눈물이 흘러내리었다. 영롱한 보석들, 굴곡진 운율. 시적인 그의 말들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 곧 유희였다. 하나 나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유희로…….유희란 이름이었던 듯도 하다. 아무래도 예쁘다.엉망진창이다. 발이 끈적거린다.회색 하늘에서는 이제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제 회색도 아니다. 청색에, 맑다. 나는 맑게 갠 하늘을 치어다보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미소가 환했다. 2미소가 좋다. 은은한 것이 좋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웃음이 좋은가 하면 그것도 또 아니다. 나는 그저 미소만이 좋은 것이다.하늘은 무심치 않아 죽 내 곁에 있었다. 뭉친 문장들이 풀리지 않는다. 영화 필름처럼 말끔하지가 않다. 내 곁에 있어서, 그는 있었다. 있었는가? 글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계속하여,“딱히요.”딱따구리처럼. 이제 아무것도 없는 하늘의 속에는 나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글쎄. 생각해 본 적 없어.”“내가 보기에 너는……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어.”“왜?”“선생님 같으니까!”“하하하!”순수하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하지만 이 회상은 그저 회상일 뿐이다. 필름이 망가진 다큐멘터리 영화일 뿐이다. 나는 인식한다. 3띄엄띄엄. 그것이 나의 기억이다. 망가져 있다. 무대는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진다. 나는 웃지 않는다.하늘은 여직 푸르다. 4아니다. 안 된다. 나는 떠올려야 한다.섬과 육지 사이를 뒤덮은 바다는 아주 푸르고 또 창창하여서, 그리고 광활하여서― 나는 그만 그를 모르고 만다. 모른 채 그는 나를 깜짝 놀래키려고 아주 작정을 하는 것이다.“와!”바다가 널따랗다. 널따란 바다는 나를 감싸고 있었다. 섬의 아이다. 섬이 낳았다고도 할 수 있는 아이다. 나는 편안했다. 하기에 그의 놀래킴에는 당하지 않은 것이다.솨
- 이거되나
- 2023-11-30
《爾》〈三人之爾 三者面對〉 1 我너는 사랑하다. 너는 손을 뻗다. 너는 책을 읽다. 너는 그림을 그리다. 아무도 그림을 그리지 않다. 역시나 당신은 눈을 크게 뜨다. 당신은 나를 바라보다. 나의 눈에 감추어진 우주를 꿰뚫을 듯 바라보다. 우주 속에는 우주가 있다. 대우주와 소우주. 소우주는 인간이 부재하다. 우리를 감싸고 전체에 존재할 뿐. 계속, 끊임없이 존재할 뿐…… 2 余너흘 맞남ᄋᆞᆫ 계졀조차 긔억 아니날 까맣아득히 머ᇍ 과거일디니 내 저흘 긔억ᄒᆞ며 내 녚ᄋᆡ셔 구룸을 바라보오ᇝ 젼ᄎᆞ인이라. 하ᄂᆞᆶᄋᆞᆫ 흐르고 내[川]ᄂᆞᆫ 긔 거스ᇍ쪽ᄋᆞ로 가ᄂᆞ니 록빛 ᄉᆞ과ᄂᆞᆫ 내게로 다가와 먹히는이라. 나ᄂᆞᆫ ᄭᅬ죄죄ᄒᆞᆫ 하ᄂᆞᆶ 아래 새ᄅᆞᆯ 보고 워기는데 福이가 다가와 짓글히ᄃᆡ,“쥭어라, 쥭어. 먹혀라, 먹혀. 이히히.”3 吾삼삼오오 모여 짓걸이는 꼴이 역력하나 지금 뵈는 광경만치 역력하지는 않으니, 당신의 존재가 나와 맞닿은 까닭이라. 당신은 나보다 너른 존재이니 잘 아시리라. 내가 당신께 미치는 힘이 벼룩의 간만큼도 못함을. 그러니 나는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니,“죽여라, 죽여. 먹어라, 먹어. 이히히.” 1 我너는 푸르른 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는 하늘이 잿빛으로 변하자 서둘러 일어섰는데, 들판은 싸했고 강은 졸졸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렀다. 계단을 올라 근처 지붕 아래에 뛰어든 너는 웃었다. 하하 웃었다.이윽고 이슬비가 가득 내리기 시작했다. 가는 선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폭우였다. 너는 우산을 챙기지 않았기에 정자에 앉아 구경하던 내게로 와 말했다.“우산 좀 빌려줄 수 있어? 어차피 여기 계속 있을 거잖아. 비 그칠 때까지.”“안 돼.”너의 귀에 들어은 나의 대답이었다. 너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우산이 없었다.“왜?”“바로 갈 거니까.”“어디로?”“집으로.”그러나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 비가 계속 내린다.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어디로?”너는 다시 한번 묻는다. 하기에 나도 다시 한번,“집으로.”그러나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 너는 부러 못 들은 척을 하였다. 어차피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 계속 있을 것이었기에.“바로 갈 거니까.”하고 나는 말을 잇는다. 나는 부러 집으로 가지 않았다. 너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우산이 없었다. 비 그칠 때까지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 닿지 않았다. ‘비 그칠 때까지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라는 나의 대답은 너의 귀에…….“그럼 딴 사람 찾아봐야겠다.”너는 그냥 가 버린다. 2 余어느새 너는 내게 이시더니 너는 내게로 다가와 말ᄒᆞ되,“이셔 주외.”ᄒᆞ나 나는,“가요, 얼릉.”ᄒᆞ고 너를 내ᄶᅩᆾ옴이엿고 나는 ᄯᅩᄒᆞᆫ 너를 바다드리고자 ᄒᆞ얏지만 죵내,“이셔 주외.”ᄒᆞ나 너는,“가요, 얼릉.”(ᄯᆞ라자블수업슨ᄯᆞ라잡기、순라계속바ᄭᅱ는순라잡기) 3 吾하고 나는 너를 보앗스나 너는 나를 보지못하얏고 그러나 나는 네 안에 잇엇기에 이는 어긋
- 이거되나
-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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