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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이인성의 7번국도

  • 작성일 2017-07-01
  • 조회수 1,737

기획의 말

2017년 커버스토리는 <그곳>입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인성의 7번국도

성기완

그는 돌아왔나? 가상공간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현실의 모퉁이를 답사해 온 그. 그 지도가 완성되면 그는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서-나-에게로. 지도가 완성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는 내가 된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는 나를 찾아야 하고, 그래서 그-나의 자기동일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나는 아직도 1974년 여름의 어느 지방 도시 허름한 여관방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는 어디 있나? 길, 한 20년이 한 50년이 되어 가도록,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이건 일종의 알리바이일 수도 있다고, 언젠가 그와 함께 7번 국도를 따라 여행하면서 느낀 적이 있다. ‘나’를 찾아가는 이 여행은 실은 ‘그’를 따돌리기 위한 여행이다. 그는 7번 국도에서 ‘그’의 추적을 종종 따돌린다. 공식적인 자아인 ‘그’는 ‘나’를 찾아 떠난 비공식적인 그를 형사처럼 따라붙는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눈에는 늘 긴장감이 돌았다. ‘그’의 추적이 그는 싫었다. 그는 돌아가야만 한다고 선언하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쳐버리고 싶어 하는 ‘나’를 돌보았다. 공식적인 ‘그’는 ‘나’를 들춰내고 공식화시키고 직업을 갖게 하고 정신 차리도록 한다. 그는 평생 정신 차리고 살아온 편에 속한다. 그는 미치지 않는다. ‘그’는 ‘나’를 샅샅이 검문하기 위해 따라나선 닥스프라크종 수색견일 수도 있다.

그는 평균 시속 120km쯤으로 승용차를 몬다. 국도는 조용하다. 홀수의 국도는 남북으로, 짝수의 국도는 동서로 뻗어 있다. 그뿐이다. 7번이라는 랜덤한 호명이 맘에 든다. 의미부여 되지 않은 채 날뛰는 생물 언어의 호흡을 느끼는 것이 그-나의 가상공간에서 꿈꿀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는 많은 양의 CD를 챙긴다. 운전하는 동안 음악을 듣는다. 보다 정확히는 음악이 들린다. 음악은 말을 잊게 한다. 동시에 여전히 1974년의 여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만든다. 음악은 직선로가 순환로가 되도록 한다. 시간을 구부려 다시 처음으로 되돌린다. 음악은 반복된다.

그-나는 한반도의 척추를 답사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로 탄생할 가상공간의 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끝없이 그려졌다가 다시 지워지고, 또다시 그려진다. 지워진 다음 오히려 존재는 확실해지고 그려지고 있을 때 가장 불확실하고 허망하다. 종이 위의 펜이 앞으로 나아가듯 하얀색 아반테는 7번 국도를 달린다. 그러나 이 하얀색 아반테는 지우개이다. 달리면 달릴수록 ‘그-나’의 흔적이 지워진다. 그래서 7번 국도에서는 주저함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종이는 구겨 던져지거나 가차 없이 찢겨진다.

그-나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어딘가에 도착한다. 그-나는 그 지역의 특산물을 맛보고 (예를 들면 영덕 게, 화산 불고기……), 만취 상태에 이르지 않을 만큼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허름한 여관을 잡아 양말을 벗고 등을 붙일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면 그는 여관 주인에게 바둑판이 있냐고 물어볼 것이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창백한 눈으로 그는 동행한 나와 바둑을 둘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나 사이의 일종의 게임이다. 그-나가 하나라면 혼자 하는 게임이고 그것이 둘이라면 둘이서 하는 게임이다. 그의 가상공간은 어쩌면 규칙만이 존재하는 게임의 공간일 수도 있다. 극도로 복잡하지만 규칙이 있는 구조가 있고 단순하지만 규칙이 없는 구조도 있다. 이를테면 브라운 운동을 하는 연기는 규칙 없이 움직인다. 그-나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규칙이 있다. 규칙을 혐오하는 ‘나’는 규칙에서 벗어나려 하고, 규칙 만들기가 장기인 ‘그’는 규칙을 만든다. ‘그’에 의해 규칙이 만들어지는 순간 ‘나’는 규칙을 지운다. 이것이 ‘그-나’가 꾸며내는 가상공간의 내러티브이다.

해가 솟을 만큼 솟으면 떠난다. 허름한 여관은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는 매우 큰 장점이 있다. 그는 이 짧은 순간의 냉정한 이별을 즐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단호함을 통쾌하게 맛보고 다음 장소로 향한다. 사실 다음 장소는, 정확하게 말하면, 없다. 다음 장소는 해질녘 검은 바다 위에 떠오르는 오징어잡이 배처럼 그냥 떠오른다. 7번 국도에서 장소들은 부유한다. 그는 이 부유를 즐긴다. 살짝 의심이 들기도 한다. 부유하는 장소들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그. 이 랜덤함을 얻기 위해 ‘그’가 사전에 많은 연습을 한 건 아닐까. 혹시 이 여행 자체를 ‘그’가 지시한 것은 아닐까? 그에게서 모든 것은 사전에 지시되고, 예고되고, 준비된다. ‘나’는 ‘그’의 그런 속성을 싫어하는 편이다. 나는 농담처럼 물어본다. 어떻게 이렇게 눈감고도 여관방을 찾으세요? 그는 피식 웃는다. 뭘 찾아 찾긴. 그리고 그제야, 아주 잠깐, ‘나-그’는 나그네가 된다.

본다. 경주 남산을 뒹구는 돌부처들을. 그리고 중얼거린다. 망각에 이를 수 있을까. 망각은 정확히 발음되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 단지 중얼거려야만 한다. 이 중얼거림의 세계, 뜻을 벗어던진 말들이 음악처럼 노는 세계, 다시 말해 ‘망각이라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7번 국도로 나섰는지도 모른다. 허망함 자체가 자랑거리인 감은사지 터에 이르면 눈물이 핑 돈다. 없음의 아름다움이여. 표현할 길이 없을 때 그는 티긑(ㅌ) 비슷한 의미 없는 발음을 먼저 내뱉는 버릇이 있다. 그때의 표정은 좀 허하긴 해도 자연스럽고 소년 같다. 마른 허리춤에 손을 대고 감탄하는 티긑의 탄성이 들리기가 무섭게, 이 티긑은 키읔이나 히읗 계열의 긴 가래 뱉는 소리로 변한다. 이내 그의 긴 손가락에는 담배가 들려 있다. 감은사지를 떠도는 안개 같은 담배연기가 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때 나는 시장기를 느낀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그는 나그네일까. 나그네가 되고 싶어 한다. 추적자인 ‘그’가 도망 다니는 ‘나’의 본질인 ‘나-그’네를 죽이려 한다. 그는 ‘나’의 광기가 ‘그’에 의해 발각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숨겨 주기 위한 여행이다. ‘그’는 ‘나’의 광기를 살해한 적이 있다. ‘그’는 ‘나’의 분신이자 아버지이다. ‘나’는 종종 ‘그-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했다. ‘나’는 ‘그’를 미워한다. 광기의 시체는 추억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나’는 이 시체를 트렁크에 처넣고 다닌다. 그러다가 7번국도 변의 어느 여관에 유기해 버린다.

‘그’였을까, ‘나’일까. 사건의 내용들은 시간 속에서 그저 탈색된다. 그-나는 무표정하게 서울로 돌아온다. ‘그’의 추적도, ‘나’의 도주도 성공하지 못한다. 도주와 추적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그-나’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7번 국도는 도주로이다.

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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