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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 작성일 2014-02-25
  • 조회수 3,281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으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 시_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이 있음.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 낭송_ 선정화 - 배우. 연극 <김영하의 흡혈귀>, <아 유 크레이지> 등에 출연.

배달하며

늘상 쉬지 않고 큰 파도가 출렁이는 동해 바닷가 모래밭에 가 앉아 있을 때가 있지요. 내가 나고 자란 서해 바다는 고양이 같은 물결이 속삭이지만 동해의 그것은 길들지 않은 야생 백마 무리의 울음과 그것의 뜀박질 같지요. 처음 보았을 때는 무섭기조차 했습지요. 허나 점차 나는 동해의 그 큰 파도 앞에 앉아야만 속이 후련한 시간이 많아졌지요.

내 안에도 ‘다락같은’ 말들이 숨어서 살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물을 첨벙거리며 내달리고싶은 심정. 속도가 쫓아오지 못할 ‘속도’로 달아나고 싶은, 마침내는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깨어나는 지경의 그것에 이르고 싶은 심정이 그곳에 가 앉게 하지요. 내 안의 억압된 성(性), 혹은 내 안의 야생기질……. 질서를 벗어나 혼돈에 이르고 싶은 욕망. 혼돈에서 나만의 질서로 조용히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

‘비좁은 몸으로’는 ‘돌아오지 마라’고 파도 속에서 휘몰아 달려오는 말을 달래 보내는 마음이 애달픕니다.

올해가 말띠 해라는데 말들 돌아오는 시간, 말에 노을 안장을 얹어 노래라도 태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학집배원 장석남

▶ 출전_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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