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터씨 이야기
- 작성자 식빵연필
- 작성일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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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398
벡터씨는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다. 오직 직진만이 그의 유일한 방향인 것이다. 간혹 좌우의 풍경이 궁금해지면 눈동자만 힐끔힐끔 굴려대는게 그가 세상을 탐험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걸으면서 항상 까만 우산을 들고다녔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가와도 펼치는 일은 없었다.
벡터씨는 한없이 걸었다. 눈이 와도 걸었고 자면서도 걸었다. 심지어 거대한 뱀이 그를 삼켰을 때도 그는 뱀의 창자를 걸어나왔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그는 바다 한 가운데를 걷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늘은 이곳저곳 솜털을 모으더니 서로 부딪혀 먹구름을 울려버렸다. "나는 시련을 수없이 횡단한 사람이지. 이런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먹구름의 눈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가 중심에 다다르자 무거운 천둥 소리와 함께 눈앞에 순백의 깃털이 휘날렸다.
벡터씨가 정신을 차린 것은 외딴섬 모래밭이었다. 오른손에는 제멋대로 휘어진 우산창이 남아있었다. 벡터씨는 화가났다. "10년 동안 걸음을 멈춘 적은 없었는데!" 그는 앙상한 창살을 뜯더니 마구잡이로 던졌다. 창살은 제각기 하나의 점이 되어 모래밭에 박혔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는데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다 금방 쓰러져버리곤 했다. 30분이 지나자 그는 일어서기를 포기하고 모래밭에 누웠다. 하늘이 파랬다.
눈동자에 주황빛이 비쳐오자 그는 주름 가득 웃으며 일어섰다. 이제는 제대로 걸을 수 있었고 자유를 느끼며 곡선의 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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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상이 둥글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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